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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Jun 15. 2023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 자기혐오를 고백하다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혐오는 불편하고 찜찜한 소재다.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으면서도 마주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나는 왜 이렇지?'라고 한탄하고, 자신을 비난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경쟁사회를 살아가면서 그렇게 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 실격>의 주인공인 오바 요조와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삶은 닮아있다. 그렇기에 오바 요조의 자기혐오와 치부, 복잡한 생각들은 다자이 자신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기혐오라는 감정을 돌아보는 책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라는 책을 골랐다.


요조는 하녀와 머슴들로부터 어릴 적 끔찍한 짓을 당하고도 말하지 못하는 소년이다. 그는 인간을 두려워하면서도 단념하지 못해 광대짓을 자처하며 일종의 연극을 하며 살아간다. 단체생활, 우정, 사랑 따위는 그에게 이해하기 어렵고 항상 의문스러운 분야다.


요조만큼 자주 그러지는 않더라도 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상대방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따금씩 연기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직장에서, 친구관계에서, 학교에서. 때로는 남들과 섞이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적당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그러기도 한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다. 요조는 여자와 동반자살을 시도한 후 혼자 살아남아 죄인이 되고, 두 번째로 만난 여자에게서는 그들의 행복과 대비되는 자기혐오에 못 이겨 도망치고, 다음으로 요시코를 만난다. 그리고 요시코의 순수한 신뢰가 타인에 의해 더럽혀지자 고뇌에 빠지고 더욱이 우울해진다.


이때 그는 묻는다.



“신께 묻겠습니다. 신뢰는 죄가 됩니까?”



호리키의 태도 변화와 더불어 요시코의 신뢰가 좌절이란 결과를 낳았을 때 요조의 심리묘사가 인상적이다. 이 부분은 독자로 하여금 사유하게 한다. 신뢰, 인간의 가치,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그리고 내 내면에 있는 감정에 대하여.


이후 요조는 미치광이로 인식되어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고, 자신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님을 선언한다. 그가 한적한 시골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인간 실격. 이 단어들의 조합을 보고 생각해 본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서 실격시키나?



요조는 분명 어떤 부분에서는 한심하고 구제불능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가 이러한 결과를 낳았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마지막에 마담이 요조를 착한 아이였다고 회상하는 것을 보며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본다. 사실 요조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고, 따라서 그의 내면도 우리 모두에게 있는 지극히 평범한 감정의 과장이라는.


작품 내내 묘사된 요조의 자기혐오적 면모, 나약함, 추한 모습들은 사실 어느 정도 우리 모두 조금씩은 갖고 있다. 몇몇 요조의 생각들은 이해한다는 수준을 넘어 나와 비슷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그는 사실 호리키, 넙치와 다름없는 여느 인간이었지만 그저 주위의 부정적인 평가와 정신병원에 갇혔다는 사실 때문에 인간 실격이란 판정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고, 인간이 아니게 만드는지. 그것이 나인지 사회인지. 그건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렵다는 걸 알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가끔 내 내면의 뿌리 깊은 모순과 나약함을 인지한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모습이 나에게도 있다는 걸 깨닫는다. 내가 비판하던 이들과 나 자신이 사실 다를 바 없다는 걸 알아버린다. 이때 나는 깊은 불안과 실망을 느끼곤 한다.


그러므로 인간실격은 누구나 이러한 자기혐오를 갖고 있으며, 다자이 자신도 부끄러운 생애를 살았음을 고백하면서 나 같은 평범한 인간에게 위로를 선사한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간다.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까지도.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갑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 살이 됩니다. 흰머리가 엄청 늘어서 사람들은 대개 마흔 살이 넘은 나이로들 봅니다. "

- <인간 실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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