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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Jun 17. 2023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모순된 나를 마주하기

예술가로서의 고뇌에 대한 소설.


대체 나는 왜 이렇게 이상하게 생겨먹어서 모든 사람과 충돌하는 것일까? 왜 선생님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고, 다른 소년들 사이에 있으면 왜 서먹서먹하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저 선량한 학생들과 건전한 평범성을 갖춘 학생들을 좀 봐라! 그들은 선생님을 우스꽝스럽다고 여기지도 않고, 시를 쓰지도 않으며,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것만을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이 정말 정상적이라고 느낄 것이고, 모든 세상사, 모든 세상 사람들과 진정으로 일체감을 느낄 것이 틀림없어! 그건 정말 기분 좋은 느낌일 테지! 그러나 나라는 인간은 어떻게 된 것이지?

- <토니오 크뢰거> -


세상에 섞이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면, 이 구절이 공감될지도 모르겠다. 공감이 되든 안되든, 어쨌거나 지난 책리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도대체 왜 이렇지?'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도대체 나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하지 못하는 거지?


<토니오 크뢰거>는 토니오 크뢰거라는 인물의 내적 갈등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의 내적 갈등"이라는 소재. 예전의 나는 이 소재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아마도 '속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 그로부터 오는 안정감 따위를 너무 간과했던 것 같다.


<토니오 크뢰거>를 처음 읽었을 때도 '사회적으로 사교를 하면서 예술도 하면 안 되는 거야? 도대체 뭐가 고민인 거지?'라는 의문부터 들었다.


어머니의 보헤미안적인 예술성과 아버지의 시민성을 모두 갖고 태어난 토니오는 어릴 적에 사교 행위로 여겨지는 '말 타기'보다는 책과 글을 좋아하고, 춤을 추다가 실수로 하기도 하는 내향적인 소년이었다.



예술가가 인간이 되어 뭔가를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 그는 예술가로는 끝장입니다.

- <토니오 크뢰거> -



이 책에는 토니오의 예술가로서의 고뇌가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예술가는 '인간적인 것'을 멀리하고 비인간적인 존재가 되어, 느낀다기보다는 관찰하고 묘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를 중시하면서도 늘 자신의 내면에 내재된 시민성을 떠올리며 갈등하곤 한다.



나는 두 세계 사이에 서 있어서, 어느 세계에서도 안주할 수 없습니다.

- <토니오 크뢰거> -



토니오는 금발의 푸른 눈을 한 외향적인 이들과 어울릴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공유하고 싶고, '나는 왜 저들이 좋아하는 춤 같은 건 잘하지 못하는 걸까?'라는 걱정과 그들을 향한 동경을 동시에 가지며 고뇌한다. 반면 예술을 할 때는 삶을 느끼며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은 어쩔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욕구를 가지면서 괴로워한다.



인간적인 것을 담아서 글을 쓰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두 부분을 모두 인정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인가?

이게 내가 <토니오 크뢰거>를 읽는 내내 가진 의문이었다.



토니오는 이러한 고민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아무래도 이러한 갈등은 예술가를 지향하면서도 사람으로서 살고자 하는 그에게 당연한 성장의 과정이었으며, 예술가로서도 성숙해지는 단계가 아니었나 싶다. 등장인물 중 라자베타는 토니오를 "길 잃은 시민"이라고 부르고, 토니오 크뢰거는 결과적으로 두 세계에서 고뇌하지만 예술가이면서 삶을 사랑하는 자신, 모순된 자신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나는 눈을 감습니다. 그러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림자처럼 어른거리고 있는 한 세계가 들여다보입니다. 그 세계는 나한테서 질서와 형상을 부여받고 싶어서 안달입니다. 또한, 나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허깨비들이 두근거리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들은 부디 마법을 걸어 자기들을 풀어달라고 나에게 손짓하고 있습니다. 비극적인 허깨비들과 우스꽝스러운 허깨비들, 그리고 비극적인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허깨비들인데, 나는 이들에게 큰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아무도 모르는 나 혼자만의 사랑은 금발의 푸른 눈을 하고 있는 사람들, 생동하는 밝은 사람들,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일상적인 사람들에게 바쳐진 것입니다.

라자베타, 이 사랑을 욕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선량하고 생산적인 사랑이랍니다. 동경이 그 속에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또, 우울한 질투와 아주 조금의 경멸과 완전하고도 순결한 천상적 행복감이 그 속에 들어있습니다.

- <토니오 크뢰거> -



토니오의 내적 갈등, 그가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모두 잘 드러나 있는 책이다.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고 걸쳐 있는 경우, 우리는 갈등하고 고뇌하고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는 없다. 그러나 결국은 자신의 모든 부분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고뇌의 끝이자 새로운 성장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모순을 갖고 있다. 중요한 건 자신의 모순을 마주했을 때,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왜 이렇지?'가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을 수용하고, 나는 완전하지 않은 존재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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