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마음을 아는 일, 그 너머
마음이 자라는 집이라고 하면 훈육은 뒤로 미루고 아이 마음이 잘 자라도록 마음을 읽어주는 모습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아이가 화를 내면 이유를 묻고, 속상하다고 하면 감정을 먼저 받아주고, 불편해하는 상황에서는 가능하면 그 자리를 벗어나게 해 줍니다. 아이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부모의 마음 한편에 불편함이 남습니다.
"이렇게만 해도 괜찮은 걸까?"
아이가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게 돕는 일은 중요합니다.
“지금 어떤 기분이야?”
“뭐가 제일 불편했어?”
이 질문을 통해 아이는 자기 상태를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합니다.
이는 사회정서학습에서 말하는 자기 인식의 시작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그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함께 지내는 공간에서는
어떤 선택이 필요한지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이의 말은 점점 자기 안에만 머무르게 됩니다.
“나는 이게 싫어.”
“나는 지금 화났어.”
“그래서 나는 못 해.”
이 말들은 그 순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이 모든 상황을 멈추게 한다면, 아이의 마음은 세상을 살피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부모도 흔들립니다.
아이 마음이 상하면 누군가 잘못한 것 같고, 그 상황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의 감정이 판단의 기준이 되고, 함께 살아가는 상황과 약속은 자주 뒤로 밀리게 됩니다.
아이의 마음을 존중하는 것과 아이의 마음을 중심에 두는 것은 다릅니다.
존중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거기에만 머무르면 아이는 자기 마음을 지키는 법만 먼저 배우게 됩니다.
마음의 언어는 자기감정을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감정을 어디까지 표현해도 되는지, 어느 지점에서 멈춰야 하는지, 다른 사람의 상황과 어떻게 함께 놓아야 하는지까지 포함합니다.
이는 사회정서학습에서 말하는 자기 관리와 사회적 인식, 그리고 관계를 고려한 선택의 영역입니다.
집은 아이에게 처음 만나는 공동체입니다.
어른이 불편함을 어떻게 말하는지, 감정을 이유로 모든 것을 중단하는지, 아니면 상황을 함께 보자고 말하는지에 따라 아이의 배움은 달라집니다.
아이들은 그 장면을 통해 마음을 말로 다루는 방식을 배웁니다.
“그럴 수 있어.”
그리고 이어서
“그런데 이 상황에서는 우리가 이런 점을 같이 생각해봐야 해.”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는 자기 마음을 존중받으면서도 그 마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배웁니다.
이는 아이의 마음이 자기 안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과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마음이 자라는 집은 아이를 보호하기만 하는 집이 아닙니다.
아이를 세상으로 내보낼 준비를 하는 집입니다.
아이 마음을 살피고, 그 마음이 다른 사람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배우게 됩니다.
아이는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 마음을 다루고, 상황을 다시 보고, 관계를 망치지 않는 선택을 해보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이 경험들이 하루하루 겹치며 쌓입니다.
앞선 글에서 아이의 마음이 늘 같은 무게를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그 무게를 없애주는 일이 아니라 그 무게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경험입니다.
그 무게를 어떻게 다루는지가 아이의 하루를 만들고, 그 하루가 쌓여 아이의 마음을 키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