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크렁 Jun 09. 2022

대화하기 불편한 사람들의 특징

너랑 말 안할래

"나, 술 좀 더 줘봐."


그는 잔을 테이블에 툭툭치며 나를 보고 말했다. 순간 표정관리가 안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지만 어떻게 할 도리도 의지도 없었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모임에서는 소액의 참가비를 받아 안주와 공간을 제공하고, 와인과 위스키 각 1잔씩을 제공한다. 혹시 본인 주량에 모자라는 분들은 각자 마실 술을 가져오라는 문구를 공지와 안내 문자로 재차 발송하고 있다. 술 먹는 속도가 빠른 그는 다른 사람들이 술을 다 마시기도 전에 제공된 양을 다 마신 상태였다. "여기 주량 맞춰서 술 계속 주는 곳 아니야."라고 찌뿌리며 말하니 컵을 다시 가져가며 멋쩍게 웃는다. 


"나는 새로운 사람이랑 대화를 잘 못해"


그녀는 모임 세 시간동안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질문을 해도 끄덕이기만 할 뿐 먼저 말을 걸거나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신경이 쓰여서 계속 대화를 시도하고 여러가지 질문을 해봤으나 돌아온건 저 대답이었다. 


얘기하다보면 정말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단 세 시간조차도 버겁다. 

이들의 문제는 무엇일까? 대화의 적정선이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걸까?





| MBTI는 바보같아. 왜 그런걸 믿는지 모르겠어. 


우리는 한참 또 서로의 MBTI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던 참이었다. 그녀의 MBTI를 물어보자 자신은 테스트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거기까지만 했어도 좋았을텐데, 그녀는 MBTI가 얼마나 바보같은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멈추었다. 


나는 MBTI를 꽤나 신뢰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의 성격이 딱 16개로 나누어진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당연한것이, 문항에 답변할 때 내가 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도 많고, 보통 한 가지의 성격유형 이외에도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략적인 나의 모습 한 단락 정도는 나오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즐겁다. 


그것을 믿느냐 안믿느냐, 얼마나 믿느냐, 테스트의 정확도와 신뢰에 대한 문제는 또 다른 주제이다. 우리는 MBTI안에 내포된 각자의 성격과 특징들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는 단순히 "MBTI 테스트를 안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성격이야"라고 말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화의 주제에서 갑자기 혼자 벗어나는 사람들은, 불편하다. 




| 둘이 운명이네. 


한 플랫폼에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보니, 같은 플랫폼의 다른 모임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내 모임에서 다시 만나는 경우가 꽤 자주 있는 편이다. 호스트 입장에서는 대화의 물꼬를 트기 딱 좋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 자연스럽게 그 두 사람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편이다. 


그날 모임에 왔던 두 명은 보자마자 서로를 알아보았다. 서로 막 반가워하는 눈치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어떤 모임에서 만났는지 정도 물어보고 말았는데, 앞에서 그가 갑자기 둘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한달에 두 번이나 만났으면 둘이 운명 아니야?" 둘다 대답이 없었고, 나는 그런거 하지말라며 맥을 서둘러 끊었다. 


술이 더 들어가고 텐션이 조금 더 올랐을 무렵, 각자의 이상형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녀가 "나는 성실하고 다정한 사람이 좋아."라고 말했고, 그는 또 끼어들어 "이거 완전 넌데?"라며 옆에 앉은 그를 툭툭 쳤다. "얘 어떤거 같아? 성실하고 다정한 스타일인데, 둘이 잘 어울린다" 그녀는 대답하기 난감한 눈치였고, 나는 또 끼어들어 맥을 끊어야 했다.   


혼성 모임을 꾸려가다보면 성별을 불문하고 마치 나는solo에 출연한 듯 행동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모임에 참여한 이성들을 잠재적 연애상대로 올려놓고 대화를 이어가시는 분들. 그런 모임이 아니라고 누차 말씀드렸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타나는 것을 보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희망이나 야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 같긴 하다. 


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참여하든 간에, 모든 상황에서 남녀를 이성적으로 엮어가는 언행을 보이시는 분들은 너무 불편하다. 처음 만나는 사이에, 데이팅 모임도 아닌 곳에서 그러한 언행은 상대방에게 꽤 실례다. 술자리에서 원하지 않는 이성과 엮이는 분위기가 불쾌했던 경험은 꽤 많은 분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본인이 나서서 먼저 어필하지 않는 이상, 굳이 주변에서 나서지는 말자. 




| 취미도 없고, 넷플릭스도 안봐. 


내가 운영하고 있는 모임에서는 자기소개에서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좋다. 선입견이나 신상이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세운 모임의 정책인데, 이게 가끔 아주 난감할 때가 있다. 너무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물어볼 것이 없는 것이다. 


그날은 모두가 이름을 제외한 정보를 노출하기 거부했다. 나이도, 직업도, 심지어 사는 곳까지 말하지 않겠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이런 적은 처음이었는데, 꽤나 당황스러웠다. 대화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이럴 때 유용한게 MBTI, 취미, 그리고 다른 모임이다. 그런데 누가 MBTI는 말하지 말고 있다가 한 시간 뒤에 서로 맞춰보자고 한다. 이런, 나는 이어서 각자의 취미를 물어보았다. 애석하게도 단 한명의 취미도 겹치지 않았다. 등산, 수영, 산책, 독서, 영화.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 참담했다. 


다른 모임에 참여해본 경험담으로 서둘러 대화주제를 바꾸었고, 드디어 한 명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엔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하나 속으로 고민하느라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각자의 경험담을 소소하게 나누고 있는데 가장 멀리 앉아있는 그가 조용하다. 먼저 말을 하는 편이 아닌가 싶어서 그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이번이 첫 모임 이라고 한다. 보통 일하고 집에만 있는다고. 그 다음에 이어진 대화는 대략 이렇다. 


"그럼 퇴근하고 집에서는 보통 뭐 하면서 시간을 보내?"

"딱히 뭐 안해"

"넷플릭스나 유튜브 보나? 요즘 뭐 보는거 있어?"

"아니 컨텐츠 보는 걸 별로 안좋아해서"

"아 그럼 보통 놀 때는 나가서 친구들이랑 술먹거나 여행가는거야?" 

"아니 술도 잘 안먹고 여행도 안가. 해외도 안가봤어."

"술을 별로 안좋아하는 편이야? 여기 술모임인데 괜찮아?"

"그냥 한 잔 정도 먹는 건 좋아해."

"주량은 얼마나 되는데?"

"글쎄, 많이 안마셔서 잘 모르겠어."


나는 금새 진이 빠졌다. 도대체가 대화를 이어나갈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무슨 인터뷰 자리도 아닌데, 내가 물음표살인마가 된 기분이었다. 대화의 틈을 주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도 나의 인터뷰를 보고만 있을 뿐 아무도 끼어들지 못했다. 


그는 본인은 묻는 것에 대답을 꼬박꼬박 잘 했으니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는 눈치였다. 이 대화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대화하기 어려운 타입일지도. 


기본적으로 본인이 다른사람과 이야기를 하게 된 상황이라면 일단은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뭐 노력까지 하기 싫은데, 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나는 당신과 대화하기 싫으니 가만히 있자고 하면 된다. 어차피 상대방도 당신과의 대화를 간절히 원해서 하고있을 확률은 매우 낮다. 그냥 눈앞에 있는 당신을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느라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 거창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뭐 사소하게 상대방에게 질문을 한다던가, 공통점을 찾아보기만 한다던가 그것으로 충분하다. 


TMI지만 나를 물음표살인마로 만든 그는 다음 모임에도 참여신청을 했다. 그날 꽤 즐거웠던 모양이다.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배려 덕분이다. 나는 그와의 대화가 기다려지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화법을 마주하다보면 

나는 과연 대화하기 편한 사람인가, 고민을 가끔 하게 된다. 


문제는 내 문제를 알아도 고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모임에서 말실수를 한 것 같아 다음 모임에서는 이러지 말아야지 해도, 모임 끝난 날의 이불속에서는 매번 발차기를 하게 된다. 


그래서 가끔은 다음주에 또 다른 모임을 열 수 있는 것에 너무 감사하다.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달까. 

그런데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 3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닌가. 그 시간 동안의 모습이 그들의 전부는 아니니까, 내가 모르는 모습이 훨씬 많을 테지, 하며 나름 그들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당신을 무슨 마음으로 맞이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