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선 진로소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다
제목이 ‘술자리 경제’니까 술 이야기로부터 시작할까 한다. 그것도 우리나라 주류의 대표 격인 소주 이야기를 먼저 꺼내 본다.
소주는 한자로 진하고 독한 술이란 뜻의 ‘燒酎’로 표기된다. 본래 소주는 서양의 위스키처럼 곡물을 발효시킨 후 다시 증류하여 제조했다. 증류하는 장치를 ‘소주고리’라 부른다. 두 번씩이나 걸러 만들어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기에 사를(태울) 燒(소)자에다 진한 술을 의미하는 酎(주)를 붙였다. 이와 같은 소주의 한자 표기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사용돼 왔다. 오늘날에도 안동소주나 화요처럼 증류식 소주가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소주라 하면 주정(에탄올)에 물을 타서 만든 희석식 소주를 먼저 떠올린다.
소주 외에 맥주, 탁주, 포도주 등의 술에는 술 주(酒)자를 쓴다. 이 글자를 물 수(⼎=水)와 닭 유(酉)자로 파자(破字)한다면 유시(酉時), 즉 오후 5∼7시 이후 마시는 물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낮에 마시는 이른바 낮술은 술이 아니라는 주당들의 주장도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우리 민족은 고래로부터 가무(歌舞)와 함께 음주(飮酒)를 즐겨 왔다. 국민주인 소주의 소비량만 해도 엄청나다. 2019년 국내 소주회사들이 국세청에 신고한 출고량이 91만5,596㎘. 360㎖ 들이 소주병으로 환산하면 25억4,333만병에 해당한다. 그 해 연앙(年央)의 19세 이상 인구수가 4,270만명이었으니까 성인 1인당 연간 60병씩 마셨던 셈이다. 2014년 세계무역기구(WTO)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연간 소비된 모든 종류의 술은 알코올 양으로 환산하여 1인당 12.3리터. 세계 순위 17위다.
2019년 우리나라 주류시장의 규모는 출고가격 기준으로 8조9,413억원으로 집계됐다. 2018년에 비해서는 1.1% 줄어들었고, 2016년 이후 감소 추세다. 물량 기준으로는 수입 술을 포함해서 337만6,714㎘. 이 또한 전년보다 2.5% 적은 수치다. 그렇지만 성인 한 사람에 평균 79.1리터씩 돌아가는 엄청난 양이다.
출고가격 기준 주종별 순위는 증류식 소주를 포함한 소주가 3조7,766억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이 3조6,883억원인 맥주고, 탁주가 4,430억원으로 3위였다. 2018년까지는 맥주가 줄곧 1위였으나 2019년에 와서 소주가 처음으로 맥주를 앞질렀다.
한국주류산업협회가 집계한 2020년도 우리나라의 주류 수입과 수출은 각각 7억7,730만달러와 2억6,184만달러였다. 주류별로는 수입의 경우 와인(3억3,019만달러), 맥주(2억2,641만달러), 위스키(1억3,155만달러) 순이었다. 수출 순위는 소주(8,605만달러) 및 맥주(6,853만달러)가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한때 5,000만달러를 상회했던 탁주 수출액은 2015년 이후 1,300만달러 미만으로 감소했다가 2020년 2,078만달러로 회복했다. 국내에서 생산된 술에 수입 주류를 포함한 주류 시장 규모는 10조원 수준으로 계산된다.
1965년 정부는 곡물 자급 대책의 일환으로 식량 이외 용도의 쌀 소비를 규제한다는 내용으로 「양곡관리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증류식 소주의 생산이 전면 금지됐다. 대신 알코올 함유량 95% 이상의 에탄올, 즉 곡물 알코올(grain alcohol)인 주정(酒精)에 물을 타고 향신료를 첨가한 희석식 소주를 공급하도록 했다. 주정은 고구마, 타피오카 등에서 추출한 전분을 발효시켜 만들어진다.
희석식 소주는 1899년 일본에서 개발되어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에도 생산・보급되었으나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주류였다. 당시 대표적인 술이 주류 시장의 80% 정도를 점유한 탁주(막걸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탁주 또한 1965년부터는 쌀로 빚을 수 없게 되자 주원료로 밀가루를 사용하게 됐다. 원료가 밀가루로 대체됨에 따라 탁주 맛이 달라졌다.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고급주였던 증류식 소주를 대신하여 등장한 저가의 희석식 소주가 점차 인기를 끌게 되고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대중주로서 부상했다.
희석식 소주는 주정 배정에 따라 생산이 결정되므로 생산량 집계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고 주세 징수도 용이하다. 처음에는 주정 제조사가 1개였으나 지금은 9개 업체에서 주정을 생산하고 있다. 이들이 생산한 주정은 대한주정판매란 회사에 전량 납품된 후 소주 제조업체에 배정된다. 우리나라의 최대 주정 생산업체인 창해에탄올은 희석식 소주를 생산하는 보해양조의 계열사다. 그렇지만 보해양조도 창해에탄올이 생산한 주정을 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대한주정판매로부터 주정을 받아 소주를 제조해야 하는 구조다.
초기에는 병마개 공급량으로도 소주회사들의 출고량을 가늠할 수 있었다. 1965년에 설립된 삼화왕관이란 업체가 병마개를 독점 생산하여 소주회사들에게 공급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삼화왕관과 세왕금속공업 2개사가 주류용 병마개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희석식 소주를 생산하는 업체는 10개사다. 이들은 전국에 고루 산재돼 있다. 수도권에는 ‘참이슬’이란 브랜드로 희석식 소주를 생산하는 하이트진로가 소재한다. 강원도에는 경월소주를 사들인 롯데주류가 ‘처음처럼’을, 충북의 충북소주는 ‘시원한 청풍’을 각각 제조하고 있다. 대전충남의 경우는 더맥키스컴퍼니가 ‘O2린’을, 전북의 하이트진로는 ‘하이트’를 생산하고 있다. 더맥키스컴퍼니는 선양을 인수했고, 하이트진로는 서울의 진로와 전북의 보배를 사들인 소주회사다.
광주전남에는 보해양조가 ‘잎새주’를, 대구경북의 금복주는 ‘맛있는 참’을 공급한다. 부산에 소재한 대선주조에서는 ‘C1’을, 경남의 무학은 ‘화이트’와 ‘좋은데이’를 생산한다. 제주도에는 한라산과 제주소주 2개사가 각각 ‘한라산’과 ‘푸른밤’이란 상표의 소주를 제조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별로 대표 소주기업과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20년도 10개 희석식 소주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을 보면 ‘참이슬’과 ‘하이트’를 생산하는 하이트진로가 전체의 65.1%를 점한다. ‘처음처럼’의 롯데주류가 13.5%로 2위를, 그 다음으로는 지방 기업인 무학(6.5%), 대선주조(4.3%), 금복주(4.0%) 순이다.
소주회사별 시장점유율 (2020년)
1965년 희석식 소주가 본격적으로 출시될 시점에서 알코올 도수는 30도였으나 1980년대 후반 들어 25도로 낮아졌다. 이후에도 23도, 21도 등으로 더욱 순화돼 오다가 최근에 와서는 17도 이하로 청주나 와인의 알코올 도수에 근접해가는 추세다. 저도주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기호 변화와 여성층 등 소주 소비층이 확대된데 기인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도수가 낮아지면 그만큼 주정 투입량이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저도주는 소주 메이커들에게 원가 상승 압력을 상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증류식 소주 생산이 금지된 이후 희석식 소주를 제조하는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주정을 받아다가 향신료와 물만 타면 되는 단순한 생산 공정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반에는 전국의 소주 공장이 400여 개에 달했다. 그러자 주세를 징수하는 국세청이 지역경제 육성과 중소기업 보호를 명분으로 소주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에 나섰다. 품질관리를 통한 소비자 보호도 목적의 하나였다.
1976년 소주 생산업체들을 도별로 1사로 통폐합하는 1도 1주(一道一酒)와 함께 지방 소주회사들에게는 자사 소재 지역에서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 되도록 보장하는 ‘자도주(自道酒)구입제도’, 이른바 자도주법에 관한 훈령을 내렸다. 특히 수도권을 대표하는 소주인 진로의 경우는 타 지역에서의 시장점유율을 10% 이하로 제한했다. 지역을 구분함에 있어 서울・인천・경기와 대구・경북, 그리고 광주・전남은 각각 1도로 간주했다. 당시 대구, 인천, 광주 등 광역시는 경북과 경기, 전남에 각각 속해 있는 기초단체였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1981년부터 전국의 희석식 소주 생산업체는 10개사로 재편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도주법은 1991년 규제완화 차원에서 폐지됐으나 1995년에 「주세법」 개정을 통해 1996년 1월 1일부터 다시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자 관련 기업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이에 헌법재판소가 자도주법을 위헌으로 판결함에 따라 1996년 말에 폐지됐다. 헌법재판소는 위헌 결정 이유로 자도주법이 자유경쟁원칙에 위배되며, ‘1도1주’가 지역경제 육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중소기업 보호 측면에서도 실효성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자도주법은 시장을 분할하여 해당 시장에서 특정 생산자에게 독과점적 공급권을 부여하는 법률이다. 독과점 시장에서는 공급자가 초과이윤을 향유하는 대신 소비자 효용은 감소한다고 경제이론은 설명한다. 그래서 독과점은 규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미국의 「반독점법(Anti-trust Law)」이나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에는 독과점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에 자유경쟁원칙 위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독과점 금지 관련 사항이 자도주법의 위헌 결정 사유로 추가되었다면 금상첨화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