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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정수 Jul 02. 2021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 말의 폭력성

매는 안 맞는 것이 맞다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이만큼 예민해졌다면 이제는 안 쓰일 것이라 생각한 말들이, 어쩐지 생명력이 너무 길다. 이만큼 적확한 비유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 혹은 이 말에서는 폭력의 냄새가 매우 희미하게 풍겨나기 때문인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직도 사람이 매 맞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이왕 겪을 일이라면 먼저 겪는 것이 분명 나을 때가 있긴 하다. 그렇다고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라고 말하다니 너무한 말이다. 매는 어차피 맞게 되어 있고, 매질을 피할 수는 없다는 걸 전제로 하니까. 미루든 피하든 우리는 결국 맞아야 하니까, 늦게 맞든 지금 맞든 어차피 아프긴 매한가지이니 빨리 매 맞고 빨리 끝내는 것이 좋다는 논리다. 왜 맞아야 하는데요?라는 질문은 끼어들 틈이 없는, 그러한 논리.


심지어 이 속담을 써놓은 뒤에 "두려워말고 도전하라, 정면 승부하라" 따위의 해석을 곁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스스로 택하는 도전을, 누군가 내게 가하는 물리적 폭력에 순응하는 것에 빗대다니... 거부감을 느껴야 할 비유를 예민하게 걸러내는 것 또한 피곤한 일의 연속이다.


네이버에 이 속담을 검색하면 나오는 삽화. <창의력 쏙쏙 지혜 톡톡 속담,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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