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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흘의 바람과 바퀴

5월, 전기자전거로 휘돌아온 제주

by 홍정수

해안을 따라 달리는 제주환상자전거길은 고리 환(環)을 사용해 '제주를 한 바퀴 돈다'는 의미도 있지만 '환상적'이라는 중의적 의미도 가지고 있다. 234km를 서쪽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 제주바다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만 먹으면 지칠 때까지 볼 수 있는 멋진 길이다. 갓 길어 올린 푸른색의 맑은 바다 빛깔을 눈에 담은 만큼 보인다면 눈동자가 이미 새파랗게 물들었을 만큼.


JH_bottom02.jpg 출처: 행정자치부의 자전거행복나눔 홈페이지


5월 16일 화요일부터 19일 금요일까지 휴가를 내고 밀린 봄 휴가를 떠났다. 제주를 한 바퀴 돌겠다는 마음이었고, 수단은 전기자전거였다.


5월을 선택한 데 큰 이유는 없었다. 원래는 4월에 제주에 다녀올 예정이었지만, 대통령 선거기간에 엉뚱한 부서에 있던 내가 파견근무를 가게 되면서 본래 계획된 휴가가 잘렸다. 대선이 끝나면서 가장 가깝고 가능한 일자로 휴가를 낸 것이 5월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날씨였다. 한 달이라도 일찍 갔으면 아마 제주의 아직은 차디찬 봄바람과 변덕스러운 구름에 아쉬움만 뚝뚝 떨어뜨리고 나왔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전기자전거를 선택한 데에도 별 이유는 정말 없었다. 나는 우선 자전거를 '잘' 못 탔고, 일반 자전거로 다닐 만큼의 체력 준비는 안 되어있었고, 한 바퀴를 돌고는 싶었는데 나에겐 그 어떤 종류의 면허도 없었다. 원동기 면허라도 있었으면 스쿠터를 탔겠지만 뭣도 없었기 때문에 아직은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전기자전거를 떠올리게 됐다. 생각보다 비용도 크게 비싸지 않아서 낙점. 가오는 영 안 살았지만 결론적으로는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다.




월요일인 5월 15일 퇴근길 곧바로 제주로 내려가 토요일인 20일 아침 비행기로 서울에 돌아왔다. 5박 6일, 그중 가운데의 온전한 나흘을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데 사용했다. 총 234km. 이곳저곳 내키는 대로 더 찍고 다녔으니 평균으로 내면 하루에 60여 km를 달린 셈이다. 자전거를 잘 타시는 분들은 이틀에서 사흘 만에도 훅훅훅 다닌다. 하지만 나는 체력의 한계에 도전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데다 빨리 도는 것은 더더욱 목적이 아니었다. 전기자전거를 타고서도 '슬슬슬' 다닌 나흘이었다.


밥 먹을 곳은 따로 안 찾아보고 다녔다. 숙소의 경우 첫날과 마지막날 묵을 곳만 미리 예약했고, 나머지는 에어비앤비에서 눈으로 찜(?)만 해놓고 출발했다. 그날그날 가까운데서 자는 게 편할 것 같아서였다. 실제로는 5박 중 남은 3박은 (에어비앤비에서 봤던 곳 1)+(급한 대로 네이버에서 찾아서 아무 데나 들어간 곳 1)+(사촌에게 추천받은 곳 1)로 구성됐다.



여자 혼자 다닌 5박6일, 준비물과 경비


총 경비 약 50만원 이내

왕복 항공권 약 8만 원.

숙박비 총 10만 원가량.

자전거 대여료 4일 동안 14만 원.

식비는 하루에 4만 원 정도. 총 16만 원

기타 비용은 무시할 수준


준비물

매일 지고 다녀야 하는 짐이었기 때문에 간소하게 꾸렸다. 모든 짐은 얇고 가벼운 톱텐 배낭 하나에 넉넉하게 들어갔다.


1. 옷 (속건성 운동복만 챙겨갔다. 매일 저녁 손세탁해서 다음날 아침 다시 입었다)

-유니클로 에어리즘 레깅스, 레이서 백 민소매, 여벌 스포츠브라.

-얇은 운동용 후드와 바람막이.

-잠옷용 반팔과 긴치마.

2. 신발: 다 떨어져 가는, 낡고 얇은 운동화 하나

3. 속옷과 양말은 각 두 개씩. 이틀에 한번 빨래하면 충분했다.

4. 책: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미니북 하나,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하드커버 하나.

5. 기타 용품(?): 선크림, 선글라스, 동생에게 빌린 버프, 아빠한테 빌린 장갑.

6. 기타: 충전기, 수첩과 펜, 미니 지갑에 약간의 현금, 세면도구와 로션 샘플들. 이어폰


종주 수첩은 따로 챙기지 않았다. 스마트폰에 자전거행복나눔 어플을 미리 깔아 회원가입을 하고 가면 편하다. 인증소에 가면 자동으로 인증이 완료된다. 지도는 첫날 방문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나 얻어서 다녔다.


KakaoTalk_20170521_190524623.jpg 매일매일 똑같이 하고 다녔던 차림



#사진: 첫날 동쪽 해안 어디에선가. 한림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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