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내 객관적인 체력 및 자전거 기술(?)상태는
-스쿼트 한번에 35개 정도 하면 체력의 한계.
-달리기로는 시속 10km로 한 시간 정도 뛰는 수준. 더 뛰면 무릎 아프다.
-자전거 그동안 제일 오래 타본 것은 99분. 따릉이로 뚝섬부터 응암역까지 약 27.5km.
-자전거 '일어서서' 탈 줄 모름... 오르막에서 안장에 앉지 않고 페달을 밟질 못함.
-한 손으로 탈 수는 있으나 불안정. 그나마도 오른손 떼는 것만 가능.
-유턴 잘 못함. 꽤 넓은 공간에서나 원 그릴 수 있고, 좁은 도로에서는 두 발로 낑낑 가곤 함.
…정도였다. 한마디로 일반 자전거로 제주도 종주는 불가능한 몸이었는데도, 전기자전거로 아주 편안하고 무리없이 다녀왔다. 나보다 체력이 나쁜 사람이라도 자전거를 탈 줄만 알고, 두 다리만 달려있다면 얼마든지 국토일주라도 할 수 있을 거다. 내가 경험하고 느낀 선에서 자전거 빌린 곳과 비용, 조건, 이용방법 등을 간단히 정리해봤다.
제주공항에서 가까운 에코트립&벨로앤힐링에서 자전거를 대여했다. (※2021년 확인결과 폐업한 것 같습니다;;) 일주 시작지점인 용두암에서 걸어서 5~10분 거리라서 접근성이 좋았다. 타고 내리기 편한 U자형 몸체로 되어있는 CENTER DRIVE 350W 로 선택했다.
지점은 제주점과 서귀포점 두 곳이 있는데 한 쪽에서 빌려서 다른 쪽에 반납해도 된다고 한다. 중간에 문제가 생길 경우 서귀포점에서 수리를 받을 수도 있다.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면 사장님에게 전화드리면 가까운 곳에 있는 수리점 위치를 알려주거나 아예 사고(?)장소로 출동을 해주신다고도 한다. 후자의 경우 유료. 나는 어차피 한바퀴를 돌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서귀포점 위치를 따로 확인을 해보지 않고 출발했다.
#비용
일반형은 하루 대여비용은 3만~3만5000원이었다. 한라산 올라갈 게 아니라면 고급형까지 갈 것 없이, 일반형 스펙으로도 충분하다. 4일 빌릴 경우 모터 3~4단짜리는 12만원, 내가 빌린 5단짜리는 14만원이었다. 처음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14만 원짜리를 선택했는데, 12만 원짜리로도 충분했을 것 같다. 헬멧과 휴대폰거치대는 무료로 빌릴 수 있었다.
#낯설었던 부분들
페달을 처음 밟을 때, 일반 자전거보다 훨씬 더 뻑뻑하다. 관성이 엄청나서 누가 체인을 붙잡고 있는 듯 굳은 채로 안 움직인다는 느낌이 조금 더 정확하다. 그래서 오르막에선 출발하기가 쉽지 않았다. 밟으면 1~2초 안에 모터가 작동하며 페달 쪽에서 ‘우우웅’ 하고 시동거는 느낌이 들고, 이후에는 수월해진다. 모터를 끈다고 해도 보통 자전거처럼 시원하게 시작할 수는 없다는 점이 아쉽다.
#기어 관련
앞기어는 아예 빼놓고 뒷기어만 조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 낯설 수도 있다. 기어를 고단으로 놓았을 때에도 역시 일반 자전거보다 훨씬 부하가 많이 걸리는 느낌이다. 자기 다리 힘과 관련 없이, 자전거에 무리가 최대한 덜 가는 수준으로 기어를 넉넉하게 놓고 가는 것이 안전하다.
전기자전거는 페달을 밟는 만큼 모터가 작동하는 페달 어시스트 방식과 전동스쿠터 비슷한 느낌의 스로틀 방식의 두 가지가 있다. 내가 썼던 것은 전자(PAS)로, ‘무빙워크’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무빙워크 위에서도 사람들은 보통 걷지만, 일반 복도에서 걷는 것에 비하면 같은 힘을 들이고도 2배가량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 무빙워크에서 내리면 갑자기 확 중력이 강해지는 느낌이 들며 아무리 걸어도 ‘왜 이렇게 느리지?’하는 기분이 든다. 전기자전거에서 모터가 작동할 때와 작동하지 않을 때의 차이는 딱 그런 느낌이다.
내 자전거는 모터를 총 5단계까지 높일 수 있었다.
#0=전원만 대기상태
아무 동력도 가해지지 않는 그냥 무거운 자전거. 1~5 사이로 모터를 작동시켜놓더라도 내리막 등등에서 페달을 밟지 않는다면 사실상 0으로 해놓은 것과 같은 상태라고 봐도 된다. 나는 나흘이나 타며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내리막이나 평지가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0으로 해놓고 시속 10~12km로 천천히 가기도 했다.
다만 일단 전기자전거를 타는 이상 굳이 0상태로 해놓고 다니는 것이 좋을 것은 없다. 우선 차체 자체가 무겁다. 커다란 배터리와 충전기까지 싣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일반 자전거보다 페달 밟는데 훨씬 힘이 많이 들어간다. 또 해안을 달릴 경우에는 맞바람이 거세게 불기 때문에 생각처럼 속도를 내기가 힘들다.
#1=eco 모드
가장 부담스럽지 않은 속도가 났다. 일반적인 평지나 살짝 오르막에서 굉장히 유용하다. 발로 페달을 밟는 힘과 가해지는 동력이 1:1 정도라고 느껴졌다. 뒷기어가 총 8단이었는데, 4~5단 정도로 놨을 때 가장 효율이 좋은 것 같았다. 그보다 낮을 때에는 밟는 것보다 모터 힘이 약한 느낌이었고, 그보다 높을 때에는 기어 자체에 다소 무리가 가는 느낌이었다.
전반적으로 급출발 급정지하는 느낌 없이 자연스러웠다. 전기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고 유지할 때에 모터도 잠시 꺼지기때문에 조심해야 하는데, 1단계에서는 속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느낌이 덜하다.
#2=city 모드
완만한 오르막에서 속도내고 싶을 때 유용하다. '경사진 길을 이렇게 쉽게 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본격적으로 들기 시작하는 강도다. 덕분에 자전거길 중간에 빠져 내리막로 갈 때에도 돌아올 걱정없이 갔다올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건 자전거도 아니야 그냥 스쿠터지....’하는 느낌도 들기 시작한다. 페달을 밟는 쫄깃함이 거의 사라진다. 2단계로부턴 본격적으로 배터리 사용량도 늘어난다.
#3=tour 모드
그냥 자전거로 가기 어려운 가파른 오르막길도 편안(?)하게 다닐 수 있다. 외돌개 갔다오는 길 등등에 활용했다. 약 240km 구간 중 세 번 정도 쓴 것 같다.
#4, 5=?
...도 있긴 한데 작동을 안 시켜봐서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다. 만약 저걸 쓴다면 10분에 배터리가 한 칸씩(약 6~7칸 정도가 표시됐던 것 같다) 사라질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는, 정말 자전거의 본질을 훼손하는 모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어차피 이렇게 낮게 두고 갈 거면 하루에 3만 원짜리 모터 약한 자전거를 빌릴 걸 하고 더더욱 아쉬워하기도 했다.
#배터리
대부분 1단계로 놓고 달렸을 때 하루 배터리 사용량은 풀충전상태를 6~7칸이라고 했을 때 1칸 정도였다. 용두암에서부터 차귀도까지 갔던 첫째날은 1칸을 썼다. 거기에서부터 쇠소깍을 지나 남원에 도착했던 둘째날은 절반 조금 넘게 썼다. 송악산 쪽에 오르막길이 비교적 많았고, 중간에 외돌개와 강정마을, 화순금모래해변 등등 기분내키는 대로 가보고 싶은 곳은 다 ‘내려갔다 올라왔기’ 때문이다. 주행거리도 다른 날보다 많았다. 그날부터 마지막 날 다시 용두암에 도착할 때까지 이틀은 충전을 안했는데도 한 칸도 채 쓰지 않았다. 100km 넘는 구간이었지만 워낙 평탄한 구간이었던 데다 모터를 끄고 천천히 달린 곳도 많았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1단계로 길땐 페달을 밟는 것 자체로 충전이 되어서 사용량이 상쇄되는 것인가 싶을 정도였다. 사장님은 하루에 80km 정도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었는데, 아마 모터를 2~3단계정도로 놓았을 때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배터리를 다 쓴 뒤에 다시 완충하는 데에는 7시간정도 걸린다고 한다.
평점으로 매긴다면 별 5개 만점 중 4.5개. 나머지 0.5개는 너무 무거워서 옮기거나 할 때 좀 힘들었고, 정말정말 가오가 살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뺐다.
#장점
힘이 없어 자전거를 잘 못 타는 사람도 잘 타는 척을 할 수 있다. 내가 빌렸던 자전거의 경우 배터리를 파우치같은 것에 담은 뒤 뒷부분 짐칸(?)에 올려놓고 다니기 때문에 밖에서 보기에 잘 티가 나지 않았다. 모터도 매우 작다.
#단점
잃어버릴 걱정이 괜히 크다... 분실 시 변상해야하는 가격이 생각보다 높기 때문에, 평화의 땅 제주에서 도난당할 걱정을 자꾸 하고 살아야 했던 것이 조금 심적으로 불편했다. 하지만 깜빡하고 자물쇠를 걸어놓지 않고서도 결국 잃어버리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으니 기우였나 싶기도 하다.
#이런 분에게 추천합니다
=다리가 두 개 달리긴 했지만 도대체 뭐 하러 달려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물렁살 다리의 소유자
=자전거 탈 줄은 알고 타는 것 좋아하기도 하는데 다만 언덕길 올라갈 걱정 때문에 마음놓고 타지 못하는 사람들
=스쿠터로 제주 일주하고 싶은데 원동기면허 없는 사람
=일반자전거로도 종주할 체력은 되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아쉬운 분들
#이런 분에게는 비추천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고 싶은 분
=동력을 쓰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분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들에서 두 팔로 번쩍 자전거 들고 찍고 싶으신 분
=자전거 빌리는데 돈 많이 쓰고 싶지 않은 분
#커버: 제주공항 뒷편 어딘가의 보리밭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