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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우연했던 잠자리들

제주환상자전거길에서 묵었던 곳

by 홍정수

제주를 4분할해서 공항-서쪽-남쪽-동쪽-공항을 찍으며 돌기로 하고 대략적으로 숙소를 알아봐놓고 갔다. 어차피 잠만 잘 곳들이므로 저렴하고 조용하고 세탁이 가능한 곳으로만 리스트를 만들었다. 미리 예약을 다 해놓고 가면 그날그날 기분이나 컨디션과 상관없이 정해진 숙소로 가야하는 것이 싫어서, 당일 오후 정도 쯤에야 전화로 예약을 했다. 다행히 관광객이 적은 시점이었기 떄문에 "오늘 밤에 여자 한 명 가능할까요"라는 전화에 웬만하면 "가능하다"고들 했다. 중국의 사드제재 완화 전까지는 대체로 이런 분위기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묵었던 네 곳은 모두 조용하고 편안했고 모두 추천할만했다.



1. 제주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소(in&out-공항근처)

(※2021년 확인결과 문을 닫은 것 같습니다^_ㅠ)

=도미토리 룸 정가 2만원. 에어비앤비에서는 수수료 제외하고 18000원.

=공항에서 가까운 곳은 꽤 많지만 자전거대여점 거리와 아주 가까웠던 점이 주효했다. 피곤할 것 같은 두 밤에 조용한 게스트하우스를 찾다 예약했고 결과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우선 이름부터 예뻤다.


-장점

=거리: 제주사대부고 인근, 현대아파트4차 바로 앞. 제주공항에서 택시로 5000원이면 충분히 가고도 남는 거리에 있음. 걸어서는 30분 안 걸림. 용두암에서는 도보로 5분

=분위기: 밤에 파티같은 것 안하고 조용함. 적당히 화기애애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추천. 사장님이 늘 상주하는 게 아닌 것 같고 스탭들만 있어서 굳이굳이 다같이 모여모여 하는 분위기가 아님.

=기타: 고데기가 있다.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사장님이셨나... 호칭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캘리그래피100만장 프로젝트를 하시는 분이 방문객들에게 한 장씩 원하는 문구로 손글씨를 써주신다. 유료긴 하지만 캡슐커피도 마실 수 있다.


-단점

=화장실과 샤워실이 남녀공용으로 한 개씩 있어서 사람 많을 때에는 좀 기다려야한다.

=밤에 오면 찾기가 조금 어려울 수도...? 일반 주택가에 있는 상가건물처럼 생겼음. 문서방수산이라는 횟집 2층에 있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비행기 소리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를 비롯해서 같이 묵었던 사람들은 수면에 별로 방해 못 받은 것으로 보임.

=파티분위기 아닌 만큼 바비큐 등등은 안함.



2. 노을해안길게스트하우스(두 번째 밤-차귀도 근처)

(※2021년 확인결과...여기도 문을 닫은 것 같습니다ㅜ_ㅠ)

=도미토리룸 1인 2만5000원.

=차귀도 근처에는 예전에 게스트하우스가 꽤 많았다고 하는데 요즘엔 그렇지 않다. 차귀도에는 배낚시체험을 하러 오시는 분들이 꽤 묵으시나보다. 게스트하우스 특유의 허무함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던 곳이다. 내가 만약 제주도민이라면 이곳을 종종 찾아와서 2박3일정도 콕 박혀 머무르다 나가곤 하지 않을까 싶었다. 집에서 노을이 보이진 않지만 나오자마자 곧바로 서쪽바다의 예쁜 노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장점

=사장님이 참 마음 편하게 만들어주심. 도착하자마자 집에 놀러온 딸 친구 챙기듯 거의 나를 먹여 살리셨다. 덕분에 다른 손님들과도 화기애애하게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토박이셔서 궁금한 것 여쭤보면 다 알려주신다. 말만 잘 하면 초등학생 따님이 손수 자기가 기르는 햄스터를 만져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방이 깨끗하고 아늑하다. 아침에 창에 햇살이 잘 들어오고 화장실도 방마다 하나씩 넓게 있음. 편안하게 자서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다. 창이 탁트여있진 않지만 바로 뒤에 있는 산과 들풀의 뷰가 아기자기하다. 연두색 빛이 들어오는 아침햇살을 받으면 눈감고 있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옛날 판본 소설책이 많아서 그냥 꺼내읽기 좋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가 거의 처음 번역됐을 때 나왔던 판본으로 있길래 즐겁게 읽다가 잤다.

=세탁과 건조가 무료. 옥상에 빨래줄도 있어서 침대 대신 빨래줄에 널어 말릴 수도 있다. 다만 늦은 저녁에 세탁해 아침에 거둘 거라면 비추. 원래 밤에는 이슬이 내려서 빨래가 안 마른다.


-단점

=아침에 꿩이 문 쪼아댈 수 있음. 꿩이 돌아다니는 것을 그렇게 가끼이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근처에 슈퍼고 뭐고 없다. 식당 하나 있긴 한데 갔다와본 다른 아저씨 손님 말로는 별로란다. 생각해보니 분식집이 하나 있기는 한데 안 가봤다.



3. 나무이야기게스트하우스(세 번째 밤-남원)

=도미토리 6인실 13000원. 방마다 시기마다 유동적인 듯?

=사실 이 곳을 올 생각은 없었다. 원래 가려던 곳을 실수로 너무 많이 지나쳐서 들른 곳. 저녁 8시 반 후미등, 전조등도 없이 가로등도 없는 컴컴한 도로에서, 원래 예약했던 곳에 전화를 걸어 취소한 뒤, 급한대로 근처에 있는 아무곳이나 찾아 전화를 걸기 시작했지만 족족 실패했다. '이러다 결국 4인용 펜션에서 묵는 건가...' 한숨을 쉬며 한번 더 걸어본 곳에서 지금 들어오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목적지가 생기는 순간 발 밑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둔 길 위에 갑자기 희미한 빛이 나타나는 기분이었다. 하늘을 보니 북두칠성의 일곱 별이 모두 반짝반짝 했다. 서울에서는 북극성 하나 찾는 것도 쉽지 않은데 말이다.


-장점

=모든 게 나무: 깔끔하고 현대적이진 않다. 집안이 의자고 테이블이고 전부 사장님이 다 만드셨다고 한다. 침대까지 편백나무로 짰다는 말을 듣고 입을 떡 벌렸다.

=사장님과 매니저님 모두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시는 분이라, 별일 없으실 때에는 저녁마다 다들 친해지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고 사장님도 외출하셔서 조용히 잤다. 바비큐 장소도 상당히 넓고 심지어 뒤에 수족관도 최근(?)에 들여놓았다고 한다. 사장님이 회도 뜨실 줄 아는 실력자.

=매니저님 주장에 따르면 이곳의 매력에 빠진 장기수가 많다고 한다. '장기수'라는 표현은 제주에서는 흔히 쓰이는 표현이라고 한다. '반어적'이라는 말을 오랜만에 머릿속에 떠올렸다.

=도미토리 방인데도 넓다. 방만 넓은 게 아니라 침대도 넓은 기분이다. 안정적이고 편안하고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손톱깎이도 많다.


-단점

=‘관광지’와는 좀 거리가 있다. 하지만 여기 오신 분들은 어차피 유명 관광지 찾으실 분들은 아닌 것 같다.

=화장실에 바디워시나 린스는 없다. 샴푸는 좋은 것으로 비치해뒀다.

=조식제공 따로 안 되는 듯. 무인카페에서 음료는 현금으로 알아서 내고 꺼내마실 수 있다.



4. 롱아일랜드게스트하우스(네 번째 밤-성산일출봉 근처)

=가격: 도미토리방 20000원. 가족 룸도 있는 듯.

=지인에게 추천을 받아 예약했다. 성산일출봉 근처에서도 꽤 높은 지대에 있어선지, 해가 그렇게 잘 들 수가 없다. 조금만 나가면 제대로 된 낙조는 아닐지라도, 물 위로 떨어지는 해를 볼 수 있는 곳도 나온다. 의자만 끌어당기면 계속 해를 지는 것을 볼 수 있는 어린왕자의 행성과 아주 조금 비슷하다는 느낌이 어쩐지 들었다.


-장점

=커다란 검은 개 '롱'과 5개월 된 웰시코기 ‘봉자’. 엄청나게 활발하고 순하다. 조식시간부터 소등시간까지는 휴게실에 두 마리 다 넣어두시는데 둘이 물고 뜯는 축구공 꼴을 보면 성격을 알 수 있다ㅎㅎ 휴게실의 문을 잘못 열어놓으면 자꾸 도망가서 스텝들이 잡느라 애먹는다고도 한다.

=사장 부부께서 서글서글하시다. 내가 갔을 때에는 남자 분은 서울 가셨다고 해서 못 뵀다. 여자 분은 처음 보는 손님들한테 엔간하면 다 반말을 쓰시기 때문에 ‘나한테만 그러는 건가?’하고 당황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조식으로 토스트와 계란 후라이를 직접 해주신다.

=창이 동향이라 전망이 좋고, 발코니엔 빨래 건조대도 있다. 화장실이 넓어서 씻기 편하다. 2층 침대에 모두 커튼과 미니스탠드가 있다. 도미토리방에서도 왠지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느낌이다.


-단점

=숙소는 씻고 잠만 자는 곳. 물 한 잔만 마시려고 해도 공용 휴게실로 내려가야 함.

=근처에 딱히 맛집이 많지 않음. 게하 사장님도, 저녁에 갔던 바 사장님도 '관광지 음식밖에 없는 곳'이라고 평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만한데 없냐고 해도 추천을 안 해줄 정도.




#커버: 아침해가 뜬 노을해안길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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