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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주음식 아닌 제주음식

제주환상자전거길에서 먹었던 것.

by 홍정수

제주환상자전거길을 돌며 들렀던 식당과 카페들. 방문목적(점심, 저녁, 휴식 등등), 위치, 특징이나 재미있었던 점들, 주력메뉴에 대한 아주 주관적인 리뷰다.


제주 혼자 올 때마다 항상 그렇지만 이번에도 우연히 들어간 곳들이다. 소위 말하는 제주 향토음식같은 것은 먹지 않았다. 제주는 험한 땅이었고, 바람과 파도 때문에 어업이 발달하기도 힘든 곳이었다. 옛날 제주 분들은 바다에서 건져온 것에 대충 된장 비벼먹는 밥 먹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제주의 음식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관광지 식당에 붙는, 제주 역사를 외면한 '향토'라는 단어가 아쉽다는 것이다.


물론 식재료의 신선함은 비견할 수 없다. 하지만 혼자 와서 회 한 접시 먹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이번 휴가에는 딱히 땡기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제주’라는 것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끌리는 아무 곳으로나 들어갔고, 대체로 좋았거나 아주 좋았다.



1. 검정치마(점심 ※2021년 확인결과 폐업)

고등어+돼지고기 튀김과 맥주. 잔은 아사히인데 맥주는 맥스였던 것 같다.

=사장님이 검정치마 음악을 좋아해서 이름이 검정치마. 조휴일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조휴일이 언젠가 한번 방문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뷰가 좋아서 해질녘에 가면 맥주 마실 기분이 제대로 날 것 같다. 사장님은 검정치마 외에 신해철과 유재하 등을 좋아하셔서 원하는 대로 하루 종일 노래를 틀어놓았다. 아티스트적인 면모가 있으셔서 건물 내외부 공사와 인테리어를 몇 달 걸려서 직접 다 하셨다고 한다. 조만간 한 달에 한 번씩 싱글여성들 모아 파티하는 것을 구상 중이시라고.

=만약 무협분야 만화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이곳을 방문해 사장님께 자기 취향을 넌지시 말씀드려본다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90% 확신한다.

=주력메뉴: 고등어튀김, 돼지고기튀김. 검정떡볶이. 나는 손님이 아무도 없을 때 방문했는데, 사장님과 쇼부(?) 끝에 메뉴판에 없는 고등어-돼지고기 반반튀김을 주문했다. 단독 메뉴로 먹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맛이었지만 맥주 안주로는 둘 다 잘 훌륭했다. 고등어튀김은 뜨거울 때 먹으면 맛있지만 식은 뒤에는 특유의 비린내가 좀 나고, 돼지고기튀김은 약간 롤까스 느낌인데 양념이 꽤 세다. 두세 명이 와서 떡볶이에 튀김 조합으로 주문하는 게 제일 나을 것 같다.



2. 노을해안길게스트하우스(저녁 ※폐업함)

=게하 가는 길에 땡기는 곳이 딱히 안 나타났어서 저녁 안 먹고 그냥 들어갔는데, 가자마자 사장님이 "여기 놀러온 친구가 오일장에서 사왔다"며 자색감자 찐거 세 개 들어있는 봉다리를 건네주셨다. 꺼내먹으라고 해서 먹었더니 이번에는 바나나를 주면서 바나나도 먹을 생각 있냐고... 그 다음에는 "꼬맹이들 와서 주려고 싸고 있는데 손님도 먹겠냐"며 김밥 한 줄을 썰어주셨다. 맛살을 바삭바삭하게 구워서 마치 튀김을 넣은듯 독특한 맛이 났다. 다른 손님들이랑 떠들고 있자니 이번에는 전을 부쳤다며 전을 갖다 주셔서 정말 배터지는줄... 늘 이렇게 해주실 리는 당연히 없지만 암튼 감동스러웠다.... 음식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먹었던 음식 포스팅에 이곳 게하를 넣은 이유.

=주력메뉴: 김밥. 한 줄 다 먹어갈 때쯤이면 김치가 필요한 맛.



3. 청솔봉평메밀막국수(점심 ※폐업한듯)

KakaoTalk_20170521_212725008.jpg 음식사진을 잘 못 찍는다. 항상 한 입 먹고 나서 사진이 생각나는 나는 아직 프로가 되려면 멀었다... 위쪽에 보이는게 톳.

=느끼한 음식들을 먹다보니 개운한 것이 땡겨서 들어갔다. 기본 반찬으로 조그만 전복버터구이가 나온다. 쫄깃쫄깃한 전복 먹고있으면 금방 국수를 말아주신다. 다른 반찬은 없음.

=주력메뉴: 막국수. 보말칼국수. 꿩만두. 막국수는 메밀소바에 쓰이는 가쓰오부시장국을 활용해서 만드는 것 같았다. 제주 사람들이 대체로 장을 육지와 다르게 활용하는 편이라는데, 여기도 그런게 아닐까 생각된다. 먹다보니 의외로 메밀면과 깔끔하게 잘 어울렸다. 톳을 한 젓가락 넣어주는데 나름대로 또 어울렸다.



4. 벤치타임(저녁 ※폐업한듯)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 176-3

KakaoTalk_20170521_212724569.jpg 나올때 포장해온 녹차수플레 케익. 나무이야기 게하 앞에서 쭈그리고 매니저님이랑 수다떨며 먹었다. 사진은 이모양이지만 맛은 훌륭했다.

=신장개업. 얼굴이 뽀얀 ‘애기아빠’가 하시는 곳. 원래 서울 살았는데 결혼하면서 처가 쪽인 제주로 내려왔다고. 전에는 꽤 큰 호텔에서 일했는데 너무 바빠서 애기들 놀아줄 시간이 없어서 아쉬워서 그냥 때려치고 여기다가 가게 차렸다고 한다. 베이커리를 하셨던 부인 분이 빵을, 남편이 식사메뉴를 만든다고.

=주력메뉴: 녹차수플레케익. 마감시간 직전에 방문해서 식사메뉴는 못 주문했다. 아몬드롤과 레모네이드를 먹으면서 사장님이랑 떠들었는데, 자기 부인이 만든 케이크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주장에 녹차수플레도 먹었다. 원래는 사먹려고 했는데 마감시간이라 그런지 서비스로 주셔서 감동.... 이 가게 꼭 장사 잘됐으면 좋겠다. 진한 녹차 시트가 굉장히 꾸덕해서 특이하고 맛있었음. 특이하고 진한 치즈향이 나서 호불호 갈릴 수도.


5. 카페오름(점심)

KakaoTalk_20170521_212724214.jpg 문어전복토마토파스타. 버드와이저 앞에는 다채로운 기본 맥주안주

=김영갑갤러리 바로 앞. 카페가 기본적으로 예쁘고 특히 정원을 잘 꾸며놔서 이것저것 계속 들여다보게 만듦. 벽면이 통유리창이어서 채광이 좋다. 콘센트가 많아서 휴대폰 충전해야하는 사람들도 편할 듯.

=요리를 한 분이 다 만드셔서 주문이 겹치면 시간이 좀 걸림. 맥주 한잔과 믹스넛 집어먹으며 카페 구경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가고 안에 책도 있기 때문에 난 괜찮았다.

=주력메뉴: 문어전복토마토파스타, 그릴새우크림파스타. 문어파스타엔 부들부들한 문어다리 두 개와 전복 두 개가 들어있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숙회의 쫄깃함과 전혀 달리 아주 부드러운 느낌. 전복도 의외로 토마토소스와 나쁘지 않게 어울렸음.


6. 카페배알로(쉬러 ※펜션으로 업종변경한듯? 확인필요)

청귤차. 에이드로 시켰더니 톡 쏜다.


=돌벽으로 된 옛날집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듯. 제주 해안가에서 보기 드문 좌식카페. 정원에 파라솔이 있는 테이블과 등 인테리어가 훌륭하다. 건물의 안과 밖이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이 드는 곳. 안에 들어가도 굉장히 오픈된 느낌이고, 건물 밖에 있어도 내부와 단절되지 않았다는 느낌. 제주의 수많은 카페 중에 제주스러움을 현대적으로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드는 곳 중 하나.

=주력메뉴: 청귤차가 너무 달거나 시지 않고 청량하게 비타민 충전하는 느낌! 유기농 청귤이라 말린 청귤조각 씹어 먹어도 된다고 해서 먹어봤는데, 조금 떫었다. 디저트 종류도 간단하게 몇 가지 판매.


7. 성산59(저녁 ※폐업)

KakaoTalk_20170521_212723094.jpg 아침에 일출보고 돌아오는 길에 찍은 외관. 음식사진은 커버에...

=성산일출봉 근처에 밤에 한 잔 할 만한 곳은 딱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좀 시끌시끌한, 친구들끼리 놀러가서 떠들기 좋을 것 같은 주점부리. 그리고 여기. 혼자 가서 손님들이랑 사장님이랑 얘기도 하고 여차하면 책도 좀 읽어도 좋을만한 곳. 맛이 엄청 좋다기보다는 만난 사람들이 매력이 있었다. 어쩌면, 이번 제주 방문의 목적 같은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장님은 옛날에 중학교 국어선생님을 오랫동안 하던 분이다. 본인 스스로 말하기에 “안 믿으시겠지만 선생님이었다”고 하시는 비주얼인데 약간 아트 할 것 같은 느낌이셔서 그런 것 같다. 단골들에게는 그날그날 있는 재료들로 음식을 해주시기도 하는 것 같다.

=책이 많다. 가볍게 읽을 만한 것도, 오래도록 묵직하게 읽을 만한 것도. 바 자리 구석탱이에서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다가 결국 시 다섯 편정도 웅얼웅얼 읊조리다가 취하고 말았는데 입으로 읽을 맛이 나는 오랜만의 시였다.

=주력메뉴: 그날 먹었던 두 가지의 음식이 다 원래 메뉴에 없었던 음식들이라서 앞으로 다시 팔 것 같지 않다. 주문이 너무 많지 않아서 여력이 있을 때에는 사장님과 대화하면서 술과 음식을 할 수 있는 곳 같았다. 나는 약간 매콤한, 새우가 들어간 인도카레(징가 마살라..였나)같은 걸 먹었고, 나중에 다른 손님들이랑 조인했을 때에는 닭가슴살과 소시지 볶음요리를 해주셨다. 좀 재밌다 좀 취했다 싶으면 진짜 이것저것 다해주시는데, 결론적으론 매우 과음하고 들어간 하루.


8. 피노앤키오(쉬러)

=게스트하우스랑 같이 하는 카페 자전거 타고 지나가다가 쉬어가기 좋은 곳. 넓고 쾌적하고 커피마시기 좋은 야외 자리가 있고 화장실은 외부에 있음. 앞뜰에는 그네도 있다.

=음식은 이것저것 판다고 돼있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식사메뉴 주문시간이 아니어서 실패.


9. 토니버거 함덕해수욕장점(점심)

너무 대충찍었나.... 허니갈릭투빅버거?였던 것 같다.


=체인점이라 자세한 설명은 그냥 패스. 요약하자면 맘스터치의 좀 변형된 버전? 가격대비 먹을 만했다. 갓 데뷔한 이름모를 걸그룹 보이그룹들의 노래를 포함해서 무엇인지 모를 KPOP을 너무 크게 틀어놓는다는 생각이 좀 들었다. 요새는 홍석천 얼굴 내걸고 미국식 멕시칸 음식도 파는 듯.


10. 바람이분다당신이좋다(넷째날 저녁 ※피자가게로 바뀜)

KakaoTalk_20170521_212722293.jpg 공항에서 멀지 않았던 제바당 2층 테라스의 뷰. 불가능한 바다경치의 식사였다.

=뷰가 엄청나게 좋다. 별 5개 중 4.5개. 0.5개는 바로 앞에 가로등 때문에 아쉬운 마음에... 3층으로 되어있는데 가장 좋은 자리는 2층 테라스자리. 와인병을 활용한 조명도 느낌 좋을 뿐더러 석양 속에 비행기가 지나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바 느낌으로 의자 네 개가 있는데 심지어 푹신푹신하고 테라스 자체가 아주 아담한 사이즈라 기분이 좋았다.

=주력메뉴: 추천메뉴가 매일 바뀐다. 전체적으로 일식 느낌을 가미한 안주거리도 많이 판다. 식사용 단품요리로는 라면/볶음밥/돈까스 세 개가 있다. 칵테일과 맥주 와인도 팔아서 저녁에 석양보며 술 한 잔 하기에 좋음. 보드카 칵테일과 카시스 오렌지 두 잔, 볶음밥을 주문했다. 그릴드 소세지와 새싹, 방울토마토 하나, 반숙 계란후라이, 그리고 치즈가 얹어졌는데 양이 꽤 많아서 든든했다. 기본안주는 팝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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