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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시 북쪽으로

성산-용두암

by 홍정수
오전 5시 11분. 성산일출봉 오르는 길에 바라본 우도

제주에 숱하게 왔어도 정작 일출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이번엔 제대로 보려고 알람을 4시 15분에 맞춰놨지만, 전날의 과음으로 난 결국 허둥지둥 달려 오전 5시는 되어서야 성산일출봉 주차장에 닿을 수 있었다.


#성산일출봉(05;39)

쉬지도 않고 계단을 뛰듯 올랐다. 다행히 해보다 늦지 않게 정상에 도착해서 5분쯤 숨을 돌릴 틈이 있었다. 날씨가 맑아 평평하고 예쁜 상면부(?)로 떠오르는 아침해를 볼 수 있었다.


#내려오는 길(06:22)

떠오른 아침해를 받으니 크레이프같은 단면이 에쁘게도 드러났다.

힘들게 올라온게 아까워 공들여 내려오며 공들여 구경했다. 내려오는 길에는 휘파람새들이 예술적으로 지저귀고 있었다. 가수나 성악가의 노래를 공연장의 앰프 없이 생목소리로 들어본 적 있는가? 휘파람새의 노래들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휘적휘적 내려오는 재빠른 관광객들을 피해, 계단 구석에 20분쯤 서서 멍하니 그 울음소리만 들었다.

엉겅퀴꽃!



#숙소에서 나와 다시 출발(09:32)

동쪽에서 다시 올라가는 길에는 이런 밋밋한 길들이 많았다. 나무도, 양식장도, 농촌도 잘 보이지 않는... 이따금씩 풍력발전기들이 눈에 띄었다. 날씨가 꽤나 더웠고, 해를 마주보며 가다보니 체감온도는 더 높았다. 선글라스 필수!



#김녕해수욕장(11:15)

제주의 가장 아름다운 석양이 애월이라면 제주의 가장 아름다룬 푸른색은 김녕이다. 들어가 물놀이하기에는 입구가 다소 좁지만, 눈으로 구경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 한 바다에 어찌나 다층적인 푸른색들이 존재하는지, 한나절을 보아도 지겹지 않다.

검은 돌 위에 앉아 한참을 물구경하는데, 사진에 있는 두 청년이 나름 댄디한 차림으로 차려입고와 서로의 '감성사진'같은 것을 계속 찍어주고 있었다. 말을 걸어서 둘을 같이 세워놓고 다리 길어보이는 각도로 찍어줬다. 그들이 떠난 뒤에는 부모님과 딸로 구성된 가족이 놀러왔다. 사진찍기 싫어하는 아버지를 채근하는 어머니와 딸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를 설득한 뒤 셋을 같이 세워놓고 바다색이 잘 보이는 각도에서 가족사진을 찍어드렸다.



#함덕해수욕장(13:10)

바다는 예뻤지만 사람 손을 많이 탔다. 조잡스러운 상업성이 느껴져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아쉬운 곳.


#조천읍 어딘가 정자(14:27)

제주 바다 보는 것도 마지막이라는 아쉬운 생각에 아무 정자에나 안착했다. 자전거를 매어두고 푸른 물이 보이는 각도로 기댓다. 배터리가방에 계속 넣어두었던 책을 꺼내 읽다 졸다 한참을 했다. 두시간쯤 지나니 눈을 감아도 바다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졸았는데도 누구도 자전거를 훔쳐가지 않았다.



#원당봉 뒤쪽?(16:36)

조천부터 삼양해수욕장까지는 약간 내륙으로 돌아간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이곳은 원당봉 뒤쪽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제주의 시골스러움 골목스러움을 정말 맘껏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정말, 정말 예쁘다. 이 구간은 자전거보다는 올레길이 좀 더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화각에서ㅎㅎ



#화북방파제(16;49)

좀 더 가면 화북바다라는 곳이 있다. 자전거를 대놓고 방파제를 꼭 한 번 걸어갈볼만 하다. 이 지역의 학생들이 '화북바다'를 주제로 쓴 시들이 동판에 새겨져있다. 적당한 촌스러움과 적당한 유치함, 적당한 현장느낌과 순수함이 어우러진 귀여운 시들이 각기 다른 손글씨로 새겨져 하나하나 읽어보게 만드는 매력을 뿜어낸다. 낚시하시는 분들도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좋다

방파제 끝에는 빨간 등대도 있다


#산지등대(17:33)

사라봉중턱에 있다. "이곳이 자전거길이 맞나"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사라봉공원의 격한 오르막을 정말 힘겹게 올라간 뒤 신나게 내려오는 길에 들를 수 있는 곳. 제주항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정말 들러볼만 하다. 이렇게 탁 트인 전망을 무료로 볼 수 있는 곳은 제주에 많지 않다.

1916년 10월에 무인등대로 만들어졌다가 다음에 유인등대로 바뀌었다고 한다. 지금은 등대로서 제기능은 못하고 있지만 전망대로서 훨씬 가치있는 기능을 하고있는듯ㅎ



#제주항가는길(17:44)

자전거길의 공식 시작지점으로 가는 길목이다. 사라봉을 다 내려오면 바닥에 저런 표지를 볼 수 있는데, 놀랍게도 계단이다. 힘들게 들고 가장자리 경사면으로 질질 끌고 내려오면 성공이다.



제주항뒤편의 한창 공사중인 길을 털레털레 돌아왔다. 첫날 못 찍은 용두암 인증센터의 도장을 찍은 뒤 대여소에 반납했다. 말로나마 '다친데 없이 멀쩡히 돌아온 것'을 축하해주셔서 감사했다. 나흘간 슬렁슬렁 굴려서 구경한 제주는 이렇게 끝. 다음번에는 반대편으로도 한 번 돌아볼까 생각중인데, 그것이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는 모르겠다. 제주를 바다바다한 제주와 숲숲한 제주 둘로 나눈다면, 그리고 물놀이 시즌이 아니고 한겨울도 아니라면. 바다바다한 제주를 즐기기 가장 훌륭한 방법 중 하나가 자전거라는데 감히 한 표를 던지며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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