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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동쪽으로

위미-성산

by 홍정수
너무 눈부셔서 썬글라스를 렌즈에 씌워 찍은 바다

서쪽으로 향할 때와 달리 동쪽이나 남쪽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눈부신 아침해가 부서지는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오전 8시경 출발했다. 서귀포 남쪽 해안도로를 달리다보면 오른쪽에 이마트 바다농장이라는 특이한 양식장(?)을 수도 없이 만날 수 있다. 왼쪽에서는 수산업 버전 비닐하우스를, 오른쪽에는 빛이 일렁이는 남쪽바다를 끼고 한참을 달린다.



#환해장성(08:38)

의외로 꽤나 단단한 돌성. 어지간히 쳐서는 꿈쩍도 안한다.

제주해안을 돌다보면 인적이 드문 해안도로 밖으로 이런 돌성을 만날 때가 있다. 실제로 '환해장성'이라는 이름의 성이다. 지금은 중간중간 끊어져있지만 길이 자체가 상당히 길고, 실제로 굉장히 단단하다. 사진을 찍으면, 요새 '뜨는' 팬시한 카페거리들과 달리, 정말 제주스러운 느낌을 물씬 풍기는 풍광이 나온다. 성산쪽을 지날 때 안내 표지판에 있었던 환해장성 설명 안내판을 참고삼아 저~기 아래에 옮겨놨다.



#표선해수욕장(10:07)

정말 넓고, 정말 얕고, 정말 하얗다.

제주 동남쪽의 대표 해수욕장인 표선해변을 찾아갔다. 검은 돌, 깊고 푸른 물만 보다가 이곳을 만나면 '물 위를 걷는 신' 또는 '한없이 바다 위를 뛰는 아이들'이 생각난다. 모순된 이미지이지만 어쨌든 그렇다.

그리고 실제로 나도 계속 모래밭 위를 뛰게 된다. 썰물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물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정말 얕고 따뜻한 모래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있다. 자전거를 잠깐 대놓고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뛰었다가, 이쪽 물을 돌아 저쪽 물가까지 닿았다가를 계속했다. 근처에서 놀던 아이와 가족의 이상한 시선이 느껴졌다.

수심이 1센티미터가 될까말까한 바다가 한바닥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정말 한참 뛰었지만, 모래밭 달리기를 한참 하니 힘이 빠져서 곧 그만두었다..



#고타리못(11:00)

바닷가마을에서 찾기 쉽지 않은 맑은 연못이 있다.

김영갑갤러리를 가는 길에 오른편에서 발견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자전거를 돌려서 구경했던 고타리못. 오래 전부터 가축들에게 물을 먹이는 연못이었다고 한다. 내륙 한가운데에나 있는, 여름이면 연꽃이 한가득 필 것만 같은 느낌의 청량한 못이었다. 푸른 색에 지칠때 쯤 연두빛으로 잠시 힐링하기 좋은 곳.



#김영갑갤러리(13:47)


정원의 조각들

제주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한 갤러리 중 하나인 김영갑갤러리두모악. 사진도 사진이지만, 정원 하나만으로도 이곳에 들를만한 가치가 있다. 아담하고 푸른, 자연스러우면서도 다른 세계같은, 공간을 사랑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공간이다. 햇살이 들면 드는대로, 흐리면 흐린대로 색다른 분위기를 풍겨내는 곳. 그리고 이곳의 벽에 걸려있던 가장 큰 작품-붉은 석양을 담은 사진을 한참 보다가 눈물을 뚝뚝 떨구고 엽서집 중 그 작품이 들어있는 것을 하나 사왔다. 개인적으로는 김영갑갤러리에서 파는 엽서집은 제주에서 최고의 기념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집에 돌아와서 몇 장을 벽에 붙여놓았다.



#신산 환해장성(14:33)

성산읍 신산리 49-5번지외 일원 공유수면/도지정기념물 49-10호(1998.1.7)

제주도 해안선 300여리(약 120km)에 쌓은 석성. 1270년(고려 원종 11) 몽고와의 굴욕적인 강화에 반대하는 삼별초군이 진도에 들어가 용장성을 아 항거하다 함락되자 탐라로 들어가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조정에서 영암부사 김수와 고여림 장군을 보내 쌓은 것이 시초이다. 고려말까지 보수정비를 하면서 왜구의 침입을 방어했으며, 현재 양호하게 남아있는 곳은 10개소(온평 신산 곤흘 별도 삼양 북촌 동북 원 한동 애월) 등이다. 신산 환해장성의 전체 길이는 600여미터로서, 온평 환해장성 제 4지점과 연결되며 바닷가 자연석을 채취하여 축성했다. (이상, 안내판 내용)


#광치기해변(16:42)

위에 차와 자전거를 대놓을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

본격적으로 성산일출봉이 보이기 시작하면 갑자기 도로에 차가 늘어난다. 양쪽이 탁트이는 맛이 나면서 자전거 굴릴 맛도 난다. 온갖 것으로 유명한 섭지코지를 지나면, 봄마다 유명세를 치르는 유채꽃재배단지가 나온다. 하지만 이 곳에서 진짜 좋은 건 성산일출봉이 지척 너머에 보이는 광치기해변이다.


이끼 낀 바위들로 가득한 지형이 매우 신비로운 곳. 일출봉에서 보는 일출만큼, 이곳의 일출도 기가막히다고 한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봉우리에 올라갈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일출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층층이 다채로운 매력을 뽐내는 납작한 바위들을 구경하는 것만 해도 충분히 즐겁다.



자전거로 혼자 간 이번 여행에서는 주차도 애매하고 시간도 애매해서 오름을 가지 못한 점이 제일 아쉬웠다. 인근에 있는 다랑쉬오름과 김영갑이 평생이 평생 사랑한 용눈이오름을 갈까 싶었지만 곧 해가 질 것 같아, 성산리만 자전거로 한바퀴 휘휘 돌고 숙소로 들어갔다. 낭만과 서정보다는, '관광지'인 곳이었다. 시간여유만 넉넉하다면 자전거로도 멀지 않은 오름이니 가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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