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솔직히 네이버 뉴스가 좋다
네이버 뉴스 서비스를 욕하는 기사를 최근에 많이 썼다. 회사의 이해관계가 조금 영향을 미쳤다. 회사는 네이버 뉴스가 인링크 방식이 아닌 아웃링크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드높인다. 일견 합당한 주장이다. 언론사들의 성화에 네이버도 결국 입장을 굽혔다. 하지만 그냥 독자 입장에서 봤을 때, 난 사실 네이버 뉴스가 편하다.
2000년 네이버가 뉴스 서비스를 처음 출범시켰을 당시, 언론사들은 미래를 내다볼 줄을 몰랐다. 많은 선배들이 지금도 땅을 치고 한탄하는 부분이다. 네이버가 거대 포털로 성장한 것은 상당 부분 네이버 뉴스 서비스를 찾는 이용자들의 유입 덕분일 것으로 본다.
정확한 내용은 취재를 더 취재해봐야 알겠지만, 네이버 뉴스의 역사에 관해 회사 내부에서 공유되고 있는 인식은 아주 간략하게 하면 이런 식이다. 2000년대 초반에 네이버가 수십 곳의 언론사들과 뉴스 제공 계약을 할 당시, 많은 언론사들은 자신이 결국 네이버에 종속될 것이라는 예측을 전혀 하지 못했다. 각자 온라인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뉴스를 그대로 복사-붙여넣기하는 아웃링크 방식으로 네이버에 넘기는 것이 각 사의 트래픽을 현저히 감소시킬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한 것이다. 당시 업계 1위는 조선닷컴이었다. 한 논문을 인용하면
"2001년 12월 기준으로 언론사닷컴 사이트와 포털사이트 뉴스 서비스 순이용자 규모를 비교해 보면, 조선닷컴은 731만 명, 한국아이닷컴은 643만 명으로 야후 뉴스의 512만 명, 다음 뉴스의 260만 명, 네이버 뉴스의 260만 명보다 큰 규모를 보이고 있어 당시 포털사이트 뉴스 서비스는 언론사 및 언론사닷컴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김기태, 2006)
많은 언론사는 조선이 움직이는대로 따랐고, 네이버 뉴스 서비스와의 계약도 비슷한 식으로 진행됐다고, 많은 선배들은 당시 분위기를 전한다. 일종의 핑계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2000년대 초반의 그 결정이 현재 모든 유력 언론사들을 네이버 뉴스의 '하청업체'로 만든 결정적 계기였던 것은 분명하다. 조선을 비롯한 적잖은 언론사들이 네이버에 제공하지 않는 프리미엄 기사들을 자사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등의 유료 모델을 시도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원인은 뻔하다. 굳이 돈을 내고 그 기사를 볼 만큼 인터넷 친화적이면서도 충성심 있는 독자들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 드루킹 사건에 언론사들이 '달려든' 것은 드루킹이 온라인 민심을 왜곡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에서만 오는 건 아니다. 그런 종류의 분노는 사실 그 여론에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정치권 아니면 나올 곳이 없다. 언론사들은 정말 네이버 뉴스 서비스의 '직접 이해관계자'다. 20년 가까이 네이버에 다양한 방식으로 매여왔다는 피해의식에 잠겨있었는데, 이번이야말로 네이버를 물어뜯을 아주 좋은 기회다. 말하자면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자세다.
"댓글을 없애라" "랭킹 뉴스를 없애라" "니들이 뭔데 우리 기사를 입맛대로 골라서 노출시키냐" "그냥 인링크를 폐지해라. 구글도 모두 아웃링크로 뉴스를 제공한다" 보수진보 할 것 없이 한 마음으로 씹고 뜯어대는 기성 유력 언론사들에게 질린 네이버가 결국 타개책을 내놨다. 언론사들은 거의 "옛다 먹어라"에 가까운 미봉책이라고 또다시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원하는 언론사에 한해서 아웃링크 방식을 적용하겠다는 부분이 문제였다. 인링크와 아웃링크를 각 언론사들이 선택하도록 한다면 사실 개별 언론사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인링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왜냐고? 독자 입장에서는 아웃링크가 '불편함'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아직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았다. 현재까지 나온 개편안은 네이버는 검색 서비스에만 집중하고, 뉴스는 일괄적으로 아웃링크 방식으로 제공하는 방식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연 각 언론사 트래픽이 증가할까? 나라면 그냥 예전만큼 뉴스를 안 찾아보고 말겠다. 느려 터진 각 언론사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시간을 기다려, 기사보다 먼저 뜨는 광고들을 환영하고 싶은 마음이 1도 없다. 하지만 언론사 입장에서 그 광고를 모두 '클리어' 시킬 수 있을지 묻는다면, 답은 never에 가까울 것이다. 지금도 부족하다고 난리인 전재료가 모두 끊기는 마당에 유일한 수익인 광고를 늘리면 늘렸지, 어떻게 없앨 수 있겠는가.
그나마 유리한 것은 대형 통신사들이다. 옛날에야 통신사들이 각 언론사들이랑 계약해서 그쪽에만 뉴스를 공급했다. (놀랍게도, 옛날에는 연합통신에서 쏟아내는 속보들을 일반 독자들은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상황이 다르다. 통신사들이 뉴스를 대중에게 무료로 풀고, 사람들은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뉴스를 본다. 저녁시간 메인뉴스에만 집중하는 지상파와 아침 새벽 조간에만 집중하는 신문사들은 나가 죽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중간 시나리오들을 제외하면 결국 현행 체제 유지 + 언론사에게 돌아가는 광고 수익 분배 비율을 높이는 방식이 그나마 현실적일 것 같다. 하지만 이 결론이 지금 같은 '호재'에서 각종 실험을 시도해서 나온 결과라면... 사실상 거의 반영구적인 네이버 종속 체제를 선언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본다. 네이버에는 좋은 일, 언론사에는 좋을 거 없는 일, 이 되는 셈이다.
사실 네이버 뉴스가 이렇게까지 많은 이용자를 끌어모은 것은 너무나 편리하고 너무나 독자 친화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이버 뉴스가 끌어모은 이용자는 한국의 뉴스 이용자 시장 자체를 엄청나게 키워놨다. 이 말인즉슨, 수많은 뉴스를 한 페이지에 편집해서 보여주는 네이버 뉴스 서비스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나라의 뉴스 소비자의 규모가 확 줄어들 것이란 얘기다.
우리는 뉴스를 습관적으로 본다. 네이버 뉴스 덕분에 우리는 모두 취미가 뉴스 읽기가 됐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믿을만한지 모르겠는 현실에서 네이버 뉴스는 꽤나 믿을만해 보인다. 100% 신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핫한 뉴스가 무엇인지, 그 핫한 주제의 주요 기사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나름대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광고도 적고 접속 속도도 빠르다.
이건 연합뉴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정신없이 쏟아지는 속보를 보는 것보다 편리하고, 조선일보나 프레시안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그쪽이 제공하는 뉴스만 보는 것보다는 객관적이다.(양쪽 다 보는 건 귀찮고 노력도 많이 들고 생각보다 큰 의미도 없기 때문에.) 댓글이 문제라고 하지만, 댓글은 진짜 핵심은 아니다. 핵심은 네이버의 뉴스 편집권과, 인링크로 간편하게 몰아오는 유저들이다.
네이버 뉴스는 파이 껍질처럼 집중력은 얇으면서도 오지랖은 오지게 넓은 독자들을 사로잡는 서비스다. 인터넷 창 열면(아니면 스마트폰에서 네이버 어플 켜면) 가장 먼저 보이는 뉴스 제목만 읽어도 흘러가는 거 놓치지는 않는다. 우린 모두 집중력이 극도로 낮아진 환자 아닌가. 제목 슥 보고, 스크롤 슥슥 내리면서 눈에 들어오는 글자만 읽고, 그 이상은 어렵다.
언론사들이 독자 친화적인 서비스를 이제부터 제공하려고 노력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막대한 유저와 그로 인한 광고수익을 든든하게 갖고 있는 네이버와 달리, 개별 언론사들은 그게 쉽지 않다. 게다가 언론사는 의외로, 가장 보수적인 집단 중 하나다. 이 기업 문화와 이 느리고 답답한 조직을 굳이 뜯어고치지 않더라도, 개별 기자들 빨리빨리 굴리면 일단 그날의 기사 자체는 트렌디하게 나온다. 비싼 돈 들여 낡아 터진 온라인 홈페이지 서버 갈아치우지 않더라도 올만한 독자들은 오고, 안 올 독자들은 네이버에서만 머물 거라 생각한다.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당장 현재,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서만 버둥버둥 거리는 것이 오늘내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상상력을 펼쳐서, 이들이 하나의 공동 플랫폼을 만들면 어떨까? 하지만 언론사들이 하나의 집단으로 묶이는 일은 불가능하다. 조중동-한경오가 다르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같은 부류다. 실제로는 기업 입장에서 봐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다르듯, 큰 언론사 다르고 작은 언론사 다르다. 또한 방송사 다르고 신문사 다르고 통신사 다르다. 아웃링크 방식으로 갈 경우 그나마 인지도와 신뢰도가 있고, 기존 이용자 층이 어느 정도는 있는 대규모 언론사들은 꽤 큰 타격을 입을지언정 망하진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군소 매체들은 그야말로 황천길이다.
왜 이렇게 결론 없이 글이 끝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정말 이 문제는 결론을 낼 수가 없다. 내가 입사한 직후, 우리 사장이 신입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한 질문도 이거였다. 신문산업이 사양산업이라고 하는데, 미래에 어떻게 하면 먹고살 수 있을지 젊은이들의 좋은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딱히 답을 못 냈다. 그게 5년 전이다.
지금도 사내망에 가끔 올라오는 세계 미디어 트렌드 관련 글들은 대부분 생존에 관련된 것이다. 방향은 두 가지다.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을 높여 유료 서비스화하거나, 콘텐츠로 돈 벌기는 포기하는 대신 콘텐츠로 얻은 신뢰도를 바탕으로 다른 수익사업을 하거나.
이미 "뉴스=공짜"라는 인식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이상, 전자는 실패한 실험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네이버와 '인링크 vs아웃링크' 싸움을 해서 이기더라도, 그게 진짜 이기는 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2000년대 초반의 잘못된 선택이 지금의 오늘을 만든 것처럼, 2018년의 잘못된 선택이 결국 더 강화된 레드오션만 초래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후자를 선택하는 건 개별 기자들을 결국 영업사원으로 만드는 결정이기에 적극적으로 선택하기 쉽지 않다.
사람들은 언론사에 <공정, 정확, 신속>을 간편하게 요구하며 욕한다. 엉덩이 무거운 영리 기업의 입장에서는 저 3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면서도 돈까지 벌려면 어디에 무엇을 어떻게 투자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시간이 앞으로도 꽤나 길어질 거다.
#커버: 2018.5.12 V30. 네이버의 연두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