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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정수 Nov 18. 2018

출입처가 똥볼 찰 때

장제원의 "쳐봐쳐봐"와 김용태의 가짜 뉴스

출입처에서 벌어지는 권력형 암투와 비리를 캐낸다면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주요 인물이 이도 저도 아닌 '똥볼'을 난데없이 찰 때에는, 그리고 그 기사를 내가 써야 할 때에는 갑자기 서글퍼진다. 최근 그런 일이 두 번이나 연달아 있었다. 하나는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의 종알종알 설전, 또 하나는 자유한국당 김용태 사무총장의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 가짜 뉴스 사건이었다.




억울한 장제원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869003.html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질의 첫날(5일) 벌어진 한국당 간사 장제원 의원과 민주당 박완주 의원의 설전은, 그날 다른 질의들을 제치고 가장 큰 관심을 모았다. 재미있으니까.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 같은 거다.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고 몸싸움이 사라진 뒤에는 가끔 벌어지는 이런 말싸움이 그나마 이목을 끈다.


장제원 의원은 다소간 억울해하고 있다. 실제로 먼저 도발한 것은 누가 뭐래도 박완주 의원인데, 모든 언론에서 자신을 이 유치한 싸움의 원인 제공자처럼 쓰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박="(장 의원 발언 중 뒤에서, 다 들리는 목소리로) 독해 능력도 없는 게 국회의원이라고..."
장="박완주 말조심해"
박="박완주?? 너 나와"
장="나가서 붙어"

장제원 의원이 온마이크로 발언하는 도중 뒤에서 박완주 의원이 심기를 살살 건드린 것은 사실이다. 밖으로 나오라고 한 것도 박완주 의원이다. 장제원 의원의 잘못은 그런 박완주 의원의 낚시질에 덥석 달려들었다는 것, 굳이 "쳐 봐 쳐 봐" 하며 안 그래도 유치한 상황을 더 유치하게 만들어냈다는 것, 회의장 문을 나서면서 동행한 보좌진에게 굳이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게..."라며 씩씩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장제원 의원이 '시원시원하다'는 점을 좋아한다. 핵심을 잘 간추려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도 갖췄다. 문제는 그 시원시원함이 '관심받기를 좋아하고 다혈질인' 그의 성격과 더해졌을 때 이 날 같은 사달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뉴스를 아주 좋아한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치지' 않았고, 이 사건이 예산심사에 영향을 별 미치지도 않았다. 일종의 황당한 '해프닝'에 불과했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나 관심이 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건도 단순하다. 숫자를 잔뜩 나열해놓은 예산 기사와 달리, 이건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저 "역시 한심한 놈들"이라는 반응이 아주 자연스럽고 빠르게 나올 수 있다.


기사가 하나둘씩 뜨는 즉시 장 의원은 온라인에서 각종 희화화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장 의원은 쏟아지는 전화를 다 받아가며, 기자들에게 재빠른 속도로 카톡을 돌리는 등 나름대로 억울함을 호소하며 해명에 애썼다. 심지어 조간신문의 지면 기사가 온라인 뉴스 홈페이지에 한 번에 출고되는 다음날 새벽 3시에도, 그는 자신의 기사를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사과는 한 번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박완주 의원의 부름에 응답하여 "쳐 봐 쳐 봐"라는 1차원적인 발언을 한 사실, 회의장 밖으로 나가는 길에 굳이 '한 주먹 거리'라는 원초적 멘트를 쳤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 말싸움의 최초 원인제공자인 한국당 송언석 의원과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뭐라고 했길래 장제원 박완주 의원이 이런 대리전(?)을 벌인 것인지는 다들 기억도 이해도 잘 하지 못한다.


내 출입처가 희화화되는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일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조롱거리가 하나씩 더 얹어지는 것은 사실 꽤나 괴롭다. 내가 내 출입처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내가 이런 것까지 써야 하나" 괴로워지는 기사들이 늘기 때문이다. (이러려고 한국당 출입하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작 중요한 다른 기사는 킬 되는데, 이런 의미 없고 소모적인 내용은 오히려 이렇게 크게 써야 한다니"다.


장제원 의원은 꽤 오랫동안 뒤끝을 보였다. 다음날인 6일 예결위 종합질의에서는 여당 의원들이 유은혜 사회부총리를 감싸자 "야당에게는 독해도 못한다고 인격모독을 하면서 국무위원은 그렇게 보호하고 싶냐. 그게 여당의 책무냐"며 으르렁댔다. 열흘 뒤 당 원내대책회의에서는 예결위 소위 인원 구성 협상 상황을 한창 설명하던 와중 "(민주당 의원은) 독해가 안 되니 다시 말하겠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김성태와 김용태의 카더라

이 와중에 한국당은 엊그제 또 하나의 사고를 쳤다. 김상곤 전 교육부총리의 딸의 고등학교 시절 담임이 '숙명여고 쌍둥이'의 아빠라는 소문이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고 질러 버렸다. 국정감사 기간 내내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라는 건수 하나로 겨우 한국당의 존재감을 어필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김용태 사무총장이 난데없이 이번엔 '입시비리'를 들고 나온 것이었다.


사실 이 소문은 이미 네이버 검색창에 '김상곤'만 쳐도 '숙명여고'라는 연관검색어가 자동으로 따라붙을 정도로 온라인에 퍼져있긴 했다. 다만 공당의 지도부가 아침 공개회의에서 언급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사실 확인을 거쳤어야만 했다. 김성태 원내대표가 먼저 포문을 연 뒤, 공을 넘겨받은 김용태 사무총장이 발언을 이어갔다. 둘 다, MLB파크와 네이버 카페에 떠돌던 글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은 내용이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숙명여고 사태 당사자 김 모 교사가 얼마 전 사퇴한 김상곤 딸의 담임이었다고 SNS를 달구고 있다. 이 딸이 서울의 명문 사립대 치과대학에 합격했는데, 학종과 수시로만 뽑는 데다. 김상곤 딸이 학종과 수시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이길 바라지만 혹시 그런 게 아닌 게 있었는지 밝혀달라.(김용태)"


귀를 의심하다가 회의가 끝난 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총장님, 김상곤 부총리는 셋째 딸 말씀하시는 거죠?"

"서울대라는 얘기도 있고 연대라는 얘기도 있는데, 어디로 확인됐어요?"

"근데... 딸 나이가 몇 살이래요? 김상곤 나이가 칠순인데..."

"그때 학종 전형이 있긴 있었던 거 맞아요? 혹시 입학 서류 같은 건 확보하셨어요?"

그의 답변은 "네 그거 저희가 확인을 하고 있고 거의 됐습니다. 확인되는 대로 다시 말씀드릴게요. 전화드리겠습니다"의 반복이었다. 실제로 확인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시인이었다.


황당해하며 오전 시간을 보내다 점심을 먹으러 가던 중, 11시 55분에 당 공보실에서 문자가 왔다.

문자에 나오는 김모 교사는 김상곤 부총리의 딸의 실제 담임교사였던 분이다.


아침 9시 회의에서 발언한 뒤 고작 3시간도 걸리지 않는 시간 동안 확인할 수 있었던 내용을, 그동안 확인하지 않고 툭 던졌다니,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한국당이 이날 제기한 의혹 중에서 사실이었던 건 "김상곤 전 부총리에게 딸이 있고, 딸들이 대학을 갔다" 외에는 없었다. 결국 이날도 당 아침 회의 발언 중 실제 다음날 지면 기사로 쓰게 된 것은 이 하나의 해프닝뿐이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둘이 상의 없이 김용태 사무총장이 단독으로 한 일이라는 거냐고 직접 물어봐도 "당으로 오는 제보는 사무총장에게 간다. 그 일은 사무총장 주무다"라며 회피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사실 그는 이런 소문이 온라인에 떠돈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지난주 초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추가 확인을 않고 있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날 아침 회의 발언으로 갑작스럽게 집어넣게 된 것이고, 총대는 김용태 사무총장이 멘 것이다. 김 사무총장은 나중에 "제보가 워낙 구체적이어서 사실일 걸로 생각했지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한 것"이라며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내 출입처가 이렇게 큰 실수를 저지르면 속상하기를 넘어서 화가 난다. 김성태 김용태 둘 다 "이런 소문이 있다고 하니 언론에서 적극적으로 취재해달라"는 얘기를 수 차례나 했다. 이날뿐 아니라 당 지도부는 날마다 언론을 향해 "왜곡된 언론환경 때문에 제1야당의 목소리가 전혀 보도되지 않고 있다"며 언론의 협조를 호소했다. 그런데 이날은 마침내 자신들이 확인조차 하지 않은 유언비어를 "언론이 취재해달라"는 식으로 툭 던졌다가 된통 맞은 것이다.




메시지와 메신저

이런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시니컬하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기자들은 기삿거리 많아지니까 좋겠네?" 그런데 정말로, 정말로 별로 안 좋다. 이런 기사는 쓰고 나서 뿌듯하지도 않으며, 조회수가 높게 나온다고 해서 성취감이 들지도 않는다.  


출입처가 상식선 이하의 사고를 칠 때마다 속이 상하고 화가 나는 이유는 결국 같다. 여전히 탄핵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당은, 정말 아무리 잘해도 본전 찾기가 힘들다. 100번을 잘해도 한 번 실수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어쩔 수 없는 정권 초반 야당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한국당이 고래고래 외치면 생떼 수준의 떼쓰기가 되고, 여당은 늘 '야당의 무리한 발목 잡기'라고만 가볍게 퉁치면 그만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메시지를 보내더라도, 메신저 자체의 신뢰도가 바닥 수준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니들이 뭔데 그런 소리를 할 자격이 있냐"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이런 와중에 가끔 발생하는 대형 사고는 신문 지면에 한국당 발(發) 기사가 점점 잡히지 않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한국당이 하는 소리가 무슨 의미가 있냐. 얘기 안 되는 당에서 하는 주장 넣을 공간 없다"같은 이유에서다. 지도부는 꽤나 그럴듯하고 합리적인 비판을 일부 포함해, 매일 각종 메시지를 백과사전식으로 쏟아놓는다. 사람들은 "백 날 저렇게 떠들어봐야 결국 말뿐"이라고 평가절하하거나 "그래서 지들은 잘하고 있대냐"라는 조롱 섞인 반응을 보인다. 그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인 출입기자들은 이래도 저래도 괴롭다.


그런 의미에서 난 정말 내 출입처가 잘 됐으면 좋겠다. 신뢰도를 높였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십이나 안주거리가 아닌, 좀 더 의미 있는 사람들의 의미 있는 말들을 기사로 옮기고 싶다는 뜻이다. 예전엔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메신저가 더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 팬 분들이여, 대통령께서 하시는 원론적인 말씀들을 떠올려보고, 그 말을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그대로 한다고 생각해봐라. 신뢰받는 메신저가 한 말은, 설령 별 내용이 없더라도 사람들이 알아서 주의 깊게 듣고 해석한다. 신뢰받지 못하는 메신저가 내놓은 메시지는 좋은 말일 때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1g도 주지 않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아무렴 그렇지"라며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메신저들이 신뢰를 얻는 방법은 정말 그럴듯하고 합리적인 메시지를 '아주 꾸준히', 그리고 '중간에 헛발질 없이' 내놓아서 이미지를 차근차근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이런 똥볼들이 나노 단위로 미세하게나마 올라가던 대중의 신뢰와 지지를 "그럴 줄 알았어"라는 한 마디와 함께 추락시킨다. 없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이미 나빠져버린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것 100배는 힘들다고 누군가 말했었다. 그 말이 맞다.



#커버: V30. 항상 겉으로는 아름다운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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