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교가 기사가 되는 지점
관심의 한가운데에 서기를 죽을 만큼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이 있는 한편, 한 톨의 관심이라도 더 받으려 안달이 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연예계와 국민의 한 표에 목숨줄을 붙들어맨 정치판이 아마 그런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일 것이다.
정당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이겠지만, 내가 제일 자주 보는 야권에도 파워 관종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득시글댄다. 최근에는 샛별같이 나타난 김준교라는 슈퍼루키가 이 바닥의 관심을 저인망식으로 쓸어 담아가고 있다.
관종은 원래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문제는 관종을 기사화하는 방법이다. (내가 관종이라는 말을 쓰더라도 누군가가 지나치게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관종' 만큼 이들의 특성을 정확하게 담는 말은 사전을 깡그리 쓸어 모아 보아도 찾을 수 없고, 나 역시 기레기라는 이름 아래 도매로 매도당하는 집단의 일원이다.)
"반역적인 문재인 일당들을 박살 내겠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퍼부어대는 김준교에 대한 관심은 "알고 보니 남자 3호"라는 식으로 본격적으로 촉발됐다. 대중의 관심은 그의 별나라에서 온 듯한 억양, 그가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올리는 희한한 콘텐츠들, 피 토하듯 외쳐대는 자극적 주장들에 열대지방 스콜처럼 쏟아져내렸다.
관종을 향한 대중의 관심은 좀처럼 쿨다운이 되지 않는다. 김준교의 주장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대부분 합리성을 상당히 희생(?)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자신이 최고위원이 된다면 문재인을 탄핵시키겠다는 주장에는 (당연한 얘기지만) '어떻게'가 완전히 빠져있다.
댐 넘치기 직전까지 찰랑거렸던 TK에서의 발언("저 딴 게 무슨 대통령이냐. 대한민국을 배신한 반역자를 몰아내고 다시는 반역을 꿈꾸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응징해야 한다" 등)들은 그저 현실 부정이다. 그가 과거 선거에 출마했을 때 내걸었던 공약들은 눈길은 가지만, "그럴 듯한데?"의 눈길이 아닌 "뭐 하는 놈이야??"의 관심이다. 그래도 그는 그런 관심 속에 점점 더 과격하고 종잡을 수 없는 발언의 수위를 한여름 장마철 강 불어나듯 높여온 것이다.
허경영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수위의 관종들은 늘 존재해왔다. 멀쩡한 주장만 존재하는 세상은 너무 재미가 없어서, 상상만 해도 쉰내가 난다. 황당한 주장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안주거리 중 하나다. 하고많은 일들 중 단순 안줏거리에 큰 지면을 써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황당한 주장들이 단순한 관심을 넘어서 '지지'를 받는다면 거기에서부터는 문제다. 김준교가 서울과학고 출신의 남자 3호인 사실은 재미는 있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고, 그가 광진구 어린이들을 전부 서울대에 보내겠다고 목소리를 백날 높여본들 실현 가능성은 로또 당첨확률보다 낮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그가 토해낸 열변들도 마찬가지다. 아니, 마찬가지여야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대구 엑스코에서 열렸던 자유한국당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김준교가 받은 함성과 환호는 '관심'의 수준을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그가 문재인 탄핵을 외칠 때 장내는 머리가 아찔할 정도로 함성이 떠나갈 듯 공중을 가득 메웠다. 그가 "짐승만도 못한 저 종북주사파 정권과 문재인을 민족 반역자로 처단해야 한다"라고 목청이 터져라 외치자 당원들은 마치 대통령 후보라도 바라보는 것처럼 애타게 환호했다.
그 지점이 문제인 것이다.
정치판에 사실 김준교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해 애석하지만, 김정희라는 한국당 최고위원 후보 역시 그의 웅변가적 기질과 드라마틱한 표정, 근대의 변사 같은 몸짓과 목소리, 무엇보다 과격하기 짝이 없는 주장들을 보자면 김준교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다만 광기가 조금 부족하고 과거 이력이 비교적 화려하지 못해 스타성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뿐만 아니라 원외의 소위 '정당인', 나쁘게 말하면 '정치 낭인'들 중에는 이보다 더 희한한 사람들이 널렸다. SNS를 통해 마음껏 자신의 극우파적 기질을 뽐내거나 시대를 앞서가는(?) 주장들을 '표현의 자유'에 따라 거침없이 내지르며 '좋아요'를 호소한다.
왜 사람들은 그들을 모르는가. 주변에 관심 갖는 사람이 없어서,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지자가 많지 않고, 주장의 근거도 빈약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어떤 사람의 주장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힘을 받느냐로 평가된다. 김준교 역시 평시 같았으면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원 오브 뎀'으로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태극기 부대'라는 분들이 김준교에게 압도적인 환호를 몰아줬고, 우리는 "대체 뭐길래 그래??"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김준교라는 캐릭터를 '굳이 굳이' 요모조모 뜯어보며 감탄(?)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편승해 김준교로 조회수를 높이려는 언론들 역시 쎄고 쎘으니 완벽한 조합이었다. 어느덧 김준교는 제목에 넣는 것만으로도 조회수가 급등하는 '우주 대스타'가 되어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우리 신문은 지면에서 단 한 번도 김준교를 주의 깊게 다뤄본 적이 없다. 모두가 그를 때리거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유독 김준교를 외면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조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왜 우리가 타지를 따라가지 않느냐는 불만도 한 톨 갖지 않았다. 일종의 '공공성'을 갖춘 우리 지면을 관종들에게까지 할애해야 할 필요성을 그다지 크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세상에 중요한 일이 많고, 그보다 훨씬 더 영향력 있는 일들, 훨씬 알려져야 하는 일들이 많은데, 우리까지 나서서 관종의 생명력에 HP를 1 보태줘야겠는가.
관종들의 발언은 대개 과장되어있고, 그들의 관종력은 관심을 받을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물불도 가리지 않는 수준으로 치닫기도 한다. 그리고 그 흔치 않은 수위 때문에 그들의 영향력은 대개 실제보다 훨씬 더 과장되게 인식된다. 언론의 힘이 그 불에 기름을 끼얹으며 그 불길은 더욱 끈질기게 타오른다.
일부 매체들이 김준교의 자극적 발언들을 생중계해가며 그의 비중을 당대표보다 더한 비중으로 다루는 것에 신물이 난다. 비합리적 관종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다루지 않는 게 낫다. 비합리적 관종이 눈에 띄는 지지를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럼 우리는 관종 그 자체가 아니라 다수의 국민이 관종에 환호하는 그 기현상을 다루는 게 맞다. 한 때 계몽주의를 이끌어온 유구한 역사의 (즉, 이제는 한 물 간지 오래인) 기득권 종이신문사의 임직원인 나의 매우매우 주관적 입장이다.
"너 되게 잘났다"라고 욕을 한대도 난 할 말이 없다. 이보다 더한 '얘기되고 중요한' 발제들이 석연찮은 이유로 킬 되는 것을 벌써 몇 차례나 봤는지 모르겠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종이신문에서 한 줄 한 줄을 확보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귀중한 공간들을 단지 눈길이 간다는 이유만으로 '화젯거리'에 쉽사리 넘겨주는 일은 그러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