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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정수 Mar 10. 2019

조금 더 잘, 우리말로 쓰는 방법

'해석되다'보다 '풀이되다'

예전 부서에 있었을 때, 내 담당 데스크는 정말 책을 많이 읽으시는 분이었다. 문장이 참 좋은 그는 우리 팀이 쓴 기사를 끈질기게 자신의 스타일로 고치시곤 했다. 그때 나는 문장에 '해석된다'라는 표현을 종종 썼다. 그는 이걸 끈질기게도 '풀이된다'로 고쳤다. 이를테면 그날 발표는 과거 내놨던 ㅇㅇ사업을 뒷받침하려는 의도로 '해석되는'게 아니라 '풀이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내 데스크는 끈질기게 서술어에 손을 대곤 했는데, 한 번 그렇게 손이 닿은 문장은 마법처럼 한결 더 자연스러운 느낌을 풍겨냈다.



덜 어색한 우리말 문장

앞뒤가 맞지 않는 번역투 문장이나 외계어에 가까운 보그체보다 우리말 문장이 훨씬 간결하고 편안하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인터넷에 "우리말 문장 잘 쓰기" "글 잘 쓰는 방법"을 검색해보면 흔히 나오는 결과물들은 이렇다.

-'~의', '~적'이라는 표현을 덜 써라
-문장에서 '나'라는 주어를 생략해라.
-수동태보다 능동태로 글을 써라.
-한자나 외래어보다는 우리말 표현을 많이 활용하라.
....


그렇다고 '네티즌'을 '누리꾼'으로 바꿔 쓴다거나, 문장에서 '~에 대해'를 전부 빼버린다고 글이 반드시 더 자연스러워지진 않는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헷갈리고, 결국 글을 쓰다가 중간에 흐름이 막히면 펜을 놓게 된다.


그런데 내게는 의외로 용언(서술어=동사와 형용사)부터 살펴보는 게 가장 효과적이고 쉬우며, 덜 어색한 방법 중 하나였다. 내 데스크가 내 문장을 끈질기게 고쳐 만든 문장처럼, 참신하고 담백하며 말간 느낌을 주는 방법이다.



'눈썹' 같은 서술어

말처럼 글도 습관이어서, 내가 늘 쓰는 표현들은 정해져 있다. 보고서나 기사 같은 공식적인 문서가 아니라 일기나 에세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쓰는 글들의 서술어를 잘 살펴보고 우리말로 바꿔보면 크게 어색하지 않으면서도 굉장히 인상이 달라진다. 내게 서술어는 얼굴의 눈썹 같은 느낌이다.  눈썹이 조금만 달라지면 인상 전체가 달라지고, 서술어 역시 그렇다. 눈썹 화장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은데도 말이다.


기사의 문장은 대체로 짧기 때문에 서술어의 비중이 더 크기도 하다. 기사를 쓸 때 갈아 끼우기 좋은 서술어들은 이런 것들이 있다.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고민스러울 때에는 늘 국어사전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은 낱말 뜻을 같이 붙여두었다.


60세 이상 유권자의 표심이 이번 선거의 주요 변수로 '부상했다'->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해당 법안이 처리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내다봤다'.


경찰은 김 씨가 직접 건물 안에 들어갔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 '들었다'.


감독의 교체 지시를 거부하고 본인이 계속 뛰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뜻을 밝혔다'


문제가 없으면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풀이된다'


이밖에도 방문하다-찾다, 소원하다-멀다, 희망하다-바라다, 교체하다-바꾸다(갈다), 복귀시키다-돌려보내다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런 단어들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으면, 마치 지저분한 장식으로 가득한 수납장에서 물건들을 하나하나 덜어나간다거나 유리 덮개의 먼지를 닦아나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큰 생각 없이 빨리빨리 써 제끼는 글에는 무의식적인 습관들이, 천천히 곱씹어가며 쓰는 문장에는 내가 좋아하는 정확한 단어들이 들어간다. 이편이든 저편이든, 결국 모든 길고 짧은 글에는 내 습관이 반영된다. 물론 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형식보다 내용물이겠지만, 그 내용물을 더 명확하고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공붓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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