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주에 대한 표기를 고민하며
술 앞에 유일하게 '약'이라는 단어를 붙여 사용하는 나라가 있다. 손위 어른에게 술을 권할 때 사용하는 말, '약주(藥酒)'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대한민국의 이야기다. 외국에서도 술 앞에 약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만, 대부분 약용으로 사용할 때만 붙인다. 하지만 우리는 일생생활의 술에도 약이라는 단어를 꽤나 붙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힌트는 약과와 약밥에서 찾을 수 있다. 단순히 약이 되는 것이 아닌 약이 될 만큼 귀하다는 의미다. 한식에서 약이 가진 의미를 볼 때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바로 양념이다. 이 양념의 어원은 바로 '약념(藥念)'. 약이 될 만큼 고민해서 맛을 만들었다는 의미다. 그만큼 약이라는 것은 귀하다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두 번째는 지금의 약현성당이 있는 중림동에서 나온 술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 중림동의 옛 이름은 약고개, 한자로는 약현(藥峴)이 된다. 여기에 서성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술 빚는 것이 빼어나서 약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는 조선시대의 금주령이다. 조선은 흉년이 들 때마다 계속 금주령을 내리면서 절제와 절약을 추구했는데, 금주령에서 면제되는 항목이 관혼상제, 생계를 위해 술을 파는 행위, 그리고 약용으로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결국 술을 마시기 위해서는 무조건 술을 약으로 마셔야 했고, 약으로 마시지 않더라도 약으로 마신다고 말을 해야 화를 면했다. 결국 어떤 의미에서는 상황을 모면하고자 약주라고도 불렸던 셈. 그래서 막걸리도, 청주도, 소주까 지도 모두 약주로 불렸고, 약재를 적극적으로 넣어 약용술이 발달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법률상의 약주는 이러한 의미와는 달리 굉장히 좁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전분질 원료에 누룩, 식물성 원료, 물을 넣어 술덧을 여과한 술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과했다'는 부분과 '증류'에 대한 부분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발효주, 그리고 여과한 맑은술 청주의 계열에 들어간다. 즉, 약재를 전혀 넣치않고, 순수하게 쌀로만 만든 맑은 술도 약주가 된다. 그리고 한국의 토종 누룩을 무조건 1% 이상 넣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그렇다면 청주는 무엇일까? 청주는 말 그대로 맑은술이다. 하지만 주세법상으로 들어가면 역시 좁아진다. 오직 쌀로만 빚어야 하며, 약주와 가장 다른 점은 토종 누룩을 1% 미만으로 넣어야 한다는 부분이다. 즉, 우리 누룩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이 부분이 청주가 최근에 만찬주 등으로 사용되지 않는 부분이다. 한국의 전통주라고 부를 수도 없고, 반대로 우리 술이 아니라고 말 하기도 애매한 부분이다.
이렇게 주세법상의 약주는 청주와 같은 맑은술의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맑게 만들어도 청주라는 표기를 하지 못한다. 이렇게 된 계기는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의 술은 청주, 한국의 술은 탁주와 약주로 나눠놨기 때문이다.
약주는 정말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약이 될 만큼 귀하다는 뜻이며, 금주령을 벗어나기 위한 해학적인 스토리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술에 대해 격을 올리는 중요한 단어다. 하지만, 법률상의 약주, 나아가 청주는 소비자들의 인식과 거리가 멀다. 약주는 너무 좁은 의미로 기술되어 있으며, 청주는 우리 전통 누룩을 사용하면 청주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한다. 이러한 간극이 한국 전통주에 대한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의 한류가 이렇게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 못했다. 앞으로 10년, 또는 20년 후에 한국의 귀한 술 문화가 전 세계로 퍼질 수 있는 날도 멀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가장 기본인 법령부터 재검토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