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최초로 배고픔을 모르던, 경제적 풍요로움 속에서 자라났다는 세대가 있다. 가정용 컴퓨터가 보급되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옮겨가던 시대, 경제적으로는 호황기에 있었으나 취업준비생 시절에 IMF 외환위기가 찾아와 큰 피해를 입던 X세대다. 민주화 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만큼 정치문제보다는 취미나 자기 계발, 그리고 토익점수에 더 신경을 썼던 세대로 해외 어학연수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70년대 막걸리, 80년대 학사주점, 생맥주로 이어지는 주점문화도 이때에 X세대의 자유로움을 맞이하여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게 된다. 지금은 상당수 사라졌지만, 70년대, 또는 80년대 생까지 기억하고 즐겼던 술 문화, 술자리 이야기를 간단하게 엮어보았다.
일본 정통 로바다야키. 이렇게 화로란 의미가 로바타다.
일본식 선술집, 로바다야키의 시작
90년대 초 홍대를 중심으로 가장 핫 한 주점이라면 역시 일본식 선술집 로바다야키(炉端焼き)였다. 로바다(炉端)는 일본식 화로. 야키(焼き)는 구웠다는 뜻으로 일본식 화로가 있는 선술집을 뜻했지만, 실은 화로가 있는 집은 거의 없었다. 그저 일본 가정 요리인 삼치구이, 시샤모, 팽이버섯구이에 어묵탕 정도 먹기만 해도 충분히 멋져 보였다. 일본의 사케가 처음 들어오던 시기도 이때부터였지만 대부분 한국 술을 마셨다. 하나를 주문하면 여러 음식을 갔다 주었다. 마치 횟집의 스키다시(곁들이찬)과 같은 느낌. 들어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고급스러움을 느끼는 곳으로 잘나가던 형과 누나들이 가던 장소였다.나는 형들이 사주면 따라갔다.누나들은 잘 안사줬다.
X세대의 미팅 장소, 소주방
90년대 초에 엄청나게 유행했던 커피숍이 있다. 거대한 소파에 각 테이블마다 전화기가 놓여있던 카페. 방배동 카페거리에서 시작한 전화 카페다. 주로 삐삐를 사용하던 X세대에게 굳이 공중전화로 가지 않더라도 연락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이러한 카페 분위기를 그대로 옮긴 곳이 바로 소주방. 전화기는 잘 없었지만 기존의 소주 주점과는 다른 팬시한 형태를 가진 최초의 트렌디 주점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인기 있던 술은 바로 칵테일 소주. 레몬소주, 수박 소주, 체리 소주 그리고 오이 소주 등이 인기 었다. 당시 소주는 귀여운 스테인리스 주전자에 딸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강남역, 신천, 종로, 신촌 등에서 흥했다(제가 놀던 곳). 또 당시 소주가 부담스럽던 여대생들이 청하의 맛이 이끌린 시대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첫 소개팅은 바로 이 소주방에서 이뤄졌다. 물론 실패했다. 청하로만 밀어서 그랬나보다.
또 청하의 경우, 당시 이 술을 마시고 실신한 동기 여학생을 집까지 데려다 준 적이 있어서 기억이 특별하다. 물론 이뤄지진 않았다.
90년대 초반 최고의 맥주 안주 중 하나였던 소시지야채볶음
OB맥주를 누른 하이트
90년대 주류업계의 획기적인 일이라면 아마도 늘 1등을 달리던 OB맥주가 1위 자리를 하이트에 준 것일 것이다. 80년대만 하더라도 수도권에서 9대 1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OB맥주는 승승장구했었다. 하지만 91년 OB맥주의 계열사인 두산전자에서 낙동강으로 페놀을 유출했다는 기사가 나면서 직접 생산과 상관없는 OB맥주가 엄청난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이에 1993년 당시 조선맥주(지금의 하이트진로)는 150미터 지하 암반수로 빚는 하이트맥주를 출시하면서 OB맥주에 일격을 날린다. 이후 1996년도에 하이트 맥주는 1위를 달성, 이후 16년간 한국 맥주 1위라는 타이틀을 가져간다. 이때 90년도에 생겨난 것이 바로 하이트 광장. 하이트 맥주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으로 80년대 생긴 OB호프과는 다른 신세대 이미지를 어필했던 곳이다. 참고로 호프란 희망이나 맥주의 원료인 홉이 아닌 HOF, 독일어로 광장이었다. 하이트 광장은 당시 알고 지내던 여학생(이정도로만 오픈한다) 정말 좋아하던 곳이었다. 지하 150m 암반수가 좋다나 하면서.
출시 당시의 하이트 맥주
1000CC 생맥주의 추억, 피쳐 잔의 등장
이때만 하더라도 생맥주잔은 500cc와 1000cc로 나눠졌다. 90년대 전후로 등장한 것이 바로 피쳐 잔. 2000cc의 큰 잔에 각자 따라 마시는 것이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누가 더 맥주 많이 마시나 내기도 했던 시기다. 물론 나도 했었고 당시의 주량은 맥주 5000cc는 된 듯 했다.
당시 호프집에서 가장 인기 많았던 안주는 바로 소시지 야채볶음. 어릴 적 추억이 있는 햄소시지에 양파 등을 넣고 볶은 요리다. 당시만 하더라도 치킨과 맥주라기보다는 오히려 노가리나 소시지 요리가 인기였다. 치킨과 맥주가 잘 어울린다는 공식은 90년대만 하더라도 본격적이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93년도부터 맥시칸 치킨에서 치킨과 맥주를 즐겨 먹었다. 물론 야밤에도 한마리 배달시켜서 후다닥 먹곤 했다. 물론 난 맥주는 빼고 치킨만 먹었다.
또 하나 인기 있는 안주는 '아무거나'였다. 돈가스, 포테이토, 햄, 과일을 모두 넣은 한마디로 모듬 안주였다. 회식 때 서로 의견을 맞추기 어렵거나, 결정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딱 맞는 안주로 불렸다.
맥주는 하이트와 OB , 그리고 94년도에 처음으로 카스가 등장을 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수입맥주의 공세가 시작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버드와이저, 밀러, 카프리 등이었다. 모두 작은 유리병 속에 있었는데, 굳이 병따개가 필요 없는 손으로 딸 수 있는 구조였다. 그래서 늘, 이러한 맥주를 시키면 병따개 위에 냅킨이 돌돌 말려 있었다. 병을 따다가 손을 다칠 수 있기에 술집 주인이 해줄 수 있는 나름의 배려였다. 이러한 것이 발전되어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세계 맥주 전문점' 등이 등장을 했다.
다양해지는 술집 문화 속에서 편의점에서 술집과 같은 공간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름도 편의점과 비슷한 편의방. 술과 안주를 사다가 전자레인지 등에서 데워먹으면 되었다. 하지만 자릿세를 받는 경우도 있었고, 집에서 먹는 듯한 편안함도 없어 곧 사라지게 된다.
칵테일쇼 '플레어 바(flair bar)'의 본격 등장
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엄청 유행했던 바는 또 칵테일바다. 영어로 기교, 기술을 나타내는 플레어(flair)라는 단어를 붙인 플레어바(flair bar)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칵테일 쇼를 즐길 수 있는 바가 강남, 홍대를 중심으로 흥했다. 바 형태를 인테리러를 가지고 있던 당시 X세대의 최고의 핫플레이스인 'TGI프라이데이' 등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도 바텐더들이 칵테일 쇼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렇게 필레이어 바가 흥한 이유는 톰 쿠르즈 주연의 영화 칵테일(88년도 작품)이 히트를 쳤기 때문. 그 때문에 대한민국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칵테일 붐이 불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멋지게 칵테일 만들던 바텐더들이 너무 멋있어서 한때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또 썸타던 그녀들과 무수히 실패했던 장소라고도 한다(내 이야기 아닌 남의 이야기다 ㅋ)
경월의 그린소주, 지금 처음처럼의 원조다
94년 최초의 초록색 병 소주 등장
소주는 94년도에 처음으로 초록색병 소주가 등장을 한다. 당시의 소주는 대부분 하늘색병 디자인.
그린소주의 히트로 소주병은 하나씩 초록색으로 바꿔가더니 2000년대에는 대부분의 소주가 초록색으로 바꿔있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녹차를 넣은 산 소주도 있었고 곰바우라는 소주도 잠시 유행을 했다. 2003년부터는 소주에 공용병 제도가 생기면서 거의 디자인이 같은 소주가 출시되었다.
90년 대 관광소주
백세주의 등장과 쇠퇴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가장 유행했던 술을 꼽으라면 여김 없이 백세주를 꼽을 것이다. 몸에 좋은 술이라는 슬로건으로 약주 문화를 꽃피운 이 술은 곧이어 소주와 함께 타서 마시는 50세주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소주의 맥주의 폭탄주인 소맥의 등장으로 백세주는 서서히 그 수요를 줄여간다. 백세주의 수요가 줄어진 이유를 여러 가지로 들 수 있겠지만, 당시 소주와 맥주를 반반 섞으면 알코올 도수 13도 정도가 되었다. 이 도수가 바로 백세주의 도수. 취하는 정도가 비슷하다 보니 굳이 가격이 높은 백세주를 마실 필요가 없었다. 또 '술이 건강에 좋은가'라는 부분도 의문점이 들기 시작한 시점이다.
2010년도에 들어와서
한때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 막걸리의 등장과 크래프트 맥주의 대두, 위스키 시장의 쇄퇴 및 증류식 소주라고 불리는 고급 소주, 연태 고량주와 같은 고급 백주의 대두가 2010년도에 이뤄진 주류 시장이 아닌가 본다.
기존에 없었던 고급 한식과 전통주를 즐기는 한식주점이 많아졌고, 위스키는 맛을 즐기는 일반 위스키 시장에서 싱글 몰트 시장이, 맥주는 여러 종류를 비교해 맛을 즐기는 수입맥주와 크래프트 맥주가, 증국집에서 팔던 홍성 이과두주가 중심이 되던 저렴한 중국 백주 시장에 연태 고량주가 불러온 프리미엄 중국 술 시장. 한국의 술 시장은 이렇게 계속 변화하면서 다양성을 쫒아 찾아가고 있다. 결국, 술의 발전은 양을 쫒는 것이 아닌 차별화된 다양성을 찾는 시장. X세대에서 시작한 술의 다양성이 이제 겨우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모습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