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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Dec 04. 2019

지금은 뉴트로가 된 80년대 술자리

지금의 4050대의 추억

80년대, 술자리의 추억


2019년 한국에는 새로운 복고라는 뉴트로(Newtro)가 메가 히트를 쳤다. 진로이즈백이라는 옛 디자인부터, 쌀집, 목욕탕 등 어릴 적 추억이 물씬 나오는 문화가 트렌드를 이끌었다. 그러면 언제적 문화가 2019년 뉴트로 문화를 이끌었을까? 개인적으로는 본다면 80년 대의 모습이 가장 많다는 느낌이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주택이 많이 지어졌는데, 대부분 30~50세대가 어릴 적 살던 공간이며, 칼라 TV의 보급과 서양식 문화가 들어오면서 식문화가 복합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등장한 커피, 맥주, 육류 등 고급 식품  라인이 보다 대중적으로 들어왔던 시기이기도 했다. 삼겹살 조차도 80년 대 들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고 말할 정도니 말이다.


80년대 대표적으로 등장한 것은 호프집이었다. 70년대 통기타와 생맥주를 마시는 문화는 있었지만 호프집이라고 불리진 않았다. 그냥 생맥주집이었다. 이렇게 호프집이라는 단어를 쓰게 된 이유는 , 1986년에 서울 대학로에  기록상 첫 호프집이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OB호프.  


80년대 오비맥주 광고. 박철순, 윤동균, 그리고 김우열로 보이는 선수들이 모델이었다. 출처 유튜브

당시 OB맥주 관계자가 독일을 방문한 후, 광장에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에 인상을 받아 만들었다. 두산 타워 지하에도 있던 OB호프는 2000년대까지 최고의 핫플로 인기를 끌었다. 인기 있는 안주 역시 독일 것을 따와 소시지 볶음. 어릴 적 호프집의 호프는 실은 희망을 상징하는 호프(Hope)라고 생각했다. 좀 크고 나니 맥주에 들어가는 홉(Hob)이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호프(Hof)로 독일어로 정원, 광장, 뜰이었다는 것. 넓은 야외에서 즐긴다는 맥주라는 의미 었다. 이러한 문화가 남아있는 것이 을지로 맥주 거리 등이라고 볼 수 있다.


폭탄주의 등장도 1980년대다. 이때가 국산 위스키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진로 VIP, 백화양조의 베리나인골드 킹, 썸씽 스페셜, 패스포트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면서 검찰에서 양맥이라는 위스키와 맥주를 섞어 마셨던 것이 유행을 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이렇게 폭탄주 문화는 백세주와 소주라는 오십세주, 그리고 소주와 맥주라는 소맥으로 발전(?)하게 된다.

백화양조의 베리나인 골드 킹 위스키 광고. 백화양조는 청주가 메인이였고,이후 롯데주류에 매각된다. 그래서 현재 청하를 롯데주류에서 만들고 있다.


또 1970년대 말에 한국 주류계에 획을 그은 술, 캡틴큐와 나폴레옹이 등장을 한다. 유사 양주라고 말한 이 술들은 기본적으로 주정에 인공적인 색과 향을 넣은 잡주(기타주류)였다. 가짜 양주의 원천이라는 이유로 2015년 전후로 사라졌지만, 이 술 하나면 그날 밤은 뭔가 있어 보이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캡틴큐는 사탕수수로 만든 럼(RUM)을 지향했고,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코냑을 지향, 각각에 맞는 인공향을 넣었다. 참고로 캡틴큐에는 유명한 별명이 하나 있었다. 숙취가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다음날이 아닌 다다음날에 술이 깼기 때문. 혹자에 따라서는 미래로 보내는 술이라고도 불렸다. 80년도 당시 가격은 3,000원. 지금 가격으로는 거의 5만 원이 넘는 고가의 술이었다.  

80년대 초 캡틴큐 광고


80년대에는 칵테일이 본격적으로 등장을 한다. 주로 여대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싱가포르 슬링, 피나 콜라다 등의 칵테일이 이때에 본격적으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주로 Coctail&Beer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걸었고, 경양식 레스토랑에서 많이 팔았다. 당시 가장 인기있었던 메뉴는 바로 돈가스. 스푸와 더불어 코스요리로 나오던 때이다. 나비넥타이를 한 웨이터가 "빵으로 하시겠습니까?" "밥으로 하시겠습니까? "란 질문을 하면 우아한 척하며 빵으로 먹겠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경양식 레스토랑의 이름은 장밋빛 인생, 로마의 휴일, 겨울 나그네 등 감성적인 이름이 많았다. 이러한 곳은 90년대와 2000년대 패밀리 레스토랑이 생기면서 사라지게 된다. 개인적으로 기억이 남아있는 음식은 함박 스테이크. 함박이라는 것은 독일은 함부르크(Hambrug)에서 온 말로, 독일 북부에서 다진 고기음식 중 하나였다. 또 하나 인기 있는 것은 비후 까쓰. 소고기로 만든 돈까스란 의미다. 가격이 돈가스보다 500원에서 천원 정도가 비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응답하라 1988에서 나온 경양식 레스토랑


1970년대부터 슬슬 등장하던 국산 와인도 80년대 본격적으로 보급된다. 대표적인 것이 OB에서 만들던 마주앙이다. 마주 앉아 마신다는 이 와인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순방 후, 한국에도 포도(리슬링 등 와인용 포도)를 심어 와인을 만들자는 데에서 출발했다. 비옥한 땅에는 벼를 심고, 척박한 땅에 포도를 심어 술을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당시 크리스마스 때 이 와인을 마시는 가정도 있었는데, 나름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주앙 인은 90년대 수입자유화의 물결로 서서히 사라지며, 와인용 포도는 지금 일부 농가를 제외하고는 만들지 않는다. 지금 판매되는 마주앙은 해외에서 벌크로 수입한 와인으로 당시 만들어진 와인은 지금은 없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국산 와인은 대기업 위주보다는 지역의 소규모 와이너리들이 자체 포도로 다양한 와인을 만들고 있다.


신발에 막걸리를 넣어 마시는 신발주 문화도 70~80년대까지 성행했던 문화다. 자신의 상사 및 사장에게 충성을 보이는 술로 '충성주' 등의 이름으로도 불렸다. 카리스마를 어필하고 싶은 선배나 회사 상사는 막걸리를 신발에 따른 후 자신이 가장 먼저 마셨으며, 반대로 인성이 나쁜 사람은 후배나 부하직원을 먼저 마시게 했다. 처음에 마실 수록 역겨운 냄새가 많았기 때문이고, 나중에 마실 수록 냄새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돌려마시기를 하면서 상사나 회사 사장이 마지막에 마신다면, 그 자리에 술이 올 때까지 한 방울로 남기지 않게 하는 것이 부하직원의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즉, 보스까지 그 술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 무리하게 마시는 퍼포먼스를 취하는 것도 충성을 보이는 모습이었다. 군대의 상명하복 문화가 민간에서 적응된 무리한 문화였다다고 본다.


80, 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도 소주 등을 사발에 넣어 갖은 안주(?)를 넣어 마신 술도 유행을 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술은 절대 마시지 못했다. 소주만 마시기에도 힘든데, 안주까지 들어간 술은 입속에 껴서 계속 술냄새를 나게 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는 독재정권을 물리치고, 민중의 투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이뤄냈던 시기다. 암울했던 역사를 이겨냈던 시기다. 그리고 술은 그러한 민중의 속을 달래주었다. 알고 보면 술의 역사는 민중의 역사로 이어지는 듯하다.


PS: 이 글은 페이스북 및 주변분들이 많은 정보를 주셔서 정리가 가능했습니다. 감사 말씀드립니다.


김준수, 임경애, 구시연, 김희정


문정훈, 이한보름, 임성환, 이우석, 차주형, 김원호, 이경완, 김욱성, 김봉수, 최재석, 백웅재, 윤재호, 김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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