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욱 Feb 03. 2020

2억이 200억으로. 지평 막걸리는 어떻게 성장했나?

동네 막걸리, 전국구 막걸리 되다. 

도대체 지평 막걸리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양평군 지평리에는 작은 양조장 건물이 하나 있다. 1925년에 설립된 대한민국 최고(最古) 양조장 중 하나로 한국전쟁시에는 UN군 작전기지로도 활용되었으며, MBC 고전 드라마(?) 아들과 딸의 배경으로 나온 지평주조다. 10년 전 이 양조장의 매출은 겨우 2억.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무려 230억 원(2019년 추정치)이다. 10년 사이에 매출이 100배가 뛴 것이다.  더군다나 그 흔한 연예인 마케팅 한번 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 지평 주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한국전쟁 당시 UN군의 기지로 사용된 지평 주조장. 오른쪽 멀리 지평 주조장이 보인다. 이 지평리 전투로 중공군을 막아 당시 서울을 다시 수복할 수 있었다. 


일본 수출 하락으로 화제성 잃은 막걸리 산업

막걸리가 사회적으로 이슈를 가진 적이 있었다. 바로 2009년. 정부는 쌀 소비촉진을 위해 막걸리를 장려했던 시기였다. 때 마침 일본 내 한류 붐이 불며 막걸리 수출이 눈에 띄게 늘었는데, 2007년 300만 불이었던 막걸리 총수출량이 2011년에는 5,300만 불까지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일본 경제신문이 선정한 닛케이 트렌드 7위까지 막걸리가 오르는 등 일본 내 사회적 현상까지 불러일으킨다. 이때마다 한국의 언론은 사케를 물리친 막걸리 등 자극적인 기사로 도배를 했다. 마치 막걸리가 일본을 점령한 것처럼.


2011년 등장한 산토리 서울 막걸리. 하지만 거품은 곧 꺼지게 된다. 

 


하지만 막걸리가 잘 팔린 것은 한류 외에도 외부 요인도 작용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1년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 지진으로 인해 일본 동북 지역에 위치한 일본 맥주 공장은 가동을 멈췄고, 마트에 맥주 매대가 비게 되었다. 그 빈자리를 타고 들어간 것이 한국의 막걸리었다. 맛 또한 한국 내 판매되는 제품과 달랐다. 캔막걸리 형태의 밀봉 제품으로 생막걸리가 아닌 살균 처리한 제품이었으며, 무엇보다 현지화한다는 이유로 아스파탐 등 감미료를 한국보다 무려 2배다 더 넣었다.


단맛은 진입장벽은 낮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쉽게 물리고, 음식과의 매칭도 어렵다. 결국 1년여 만에 일본 맥주 공장은 다시 가동하게 되고, 생각만큼 많이 팔리지 못한 막걸리는 그 자리를 다시 일본맥주에 내줄 수밖에 없었다. 다음 해부터는 시장에 재고가 쌓여, 한번 형성되면 가치가 확 낮아지는 덤핑판매까지 진행되는 등 시장가격조차 유린되었다.


결국 고급화 시장을 꾀한 막걸리 업체까지도 손해를 입은 채, 일본 시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막걸리의 부가가치는 못 올리고 그저 수출액이라는 숫자의 실적에 급급하다가 실패한 케이스가 된 것이다. 한마디로 소탐대실이었고 한국 막걸리 산업 전체가 타격을 입는다. 지평 막걸리는 이러한 시장에서 혁신적인 매출 성장을 이뤄냈다. 시장이 지평주조를 더욱 신기하게 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내수에 집중했던 지평 막걸리

흥미롭게도 지평주조는 남들이 수출이 아닌, 내수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바닥을 튼실하게 다진 후에 해외진출을 한다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수출용 살균 막걸리는 기존의 생막걸리와 맛이 많이 달랐다. 페트병에 넣는 경우는 아예 탄산도 사라졌고, 한번 높은 온도로 멸균처리를 한 만큼 생막걸리 특유의 신선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일부 업체들은 이러한 것을 극복하고자 냉장으로 생막걸리를 수출하기도 했지만, 유통기한이 짧은 수출용 생막걸리는 맛의 변질이라는 리스크가 컸다. 짧게는 수익을 올릴 수 있으나 무리하게 진행했다가 오히려 후폭풍이 올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지평주조는 수출이라는 시장 대신, 주변에 가까운 시장부터 돌파구를 찾았다. 지평리 및 양평 군내는 물론 본사와 가까운 수도권의 동남부인 이천, 용인, 수원, 그리고 송파 쪽부터 마케팅을 진행했다.


 

지평 주조.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에 세워진 적산가옥 형태다. 


지평 막걸리가 가진 브랜드적 위치는?

현재 막걸리 시장은 4개의 카테고리로 구분되어 있다. 천 번째는 대규모 시설을 갖춘 막걸리 업체다. 수도권의 장수 막걸리, 인천의 소성주, 대구의 불로 막걸리, 부산의 생탁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업체는 가장 대중적인 시장에 맞춰 막걸리를 만드는 업체로 최선의 가성비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 한국 막걸리 시장의 9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두 번째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소규모 지역 막걸리다. 대표적으로 부산의 금정산성 막걸리, 당진의 신평 양조장, 고양시의 배다리 막걸리, 그리고 지평 주조다. 10년 전 막걸리의 다양성을 알리며 붐을 일으켰던 곳으로 지역의 맛과 멋, 무엇보다 다양한 스토리를 품은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국산 쌀로 술을 빚으며, 한식주점 등에서 일반 막걸리 2배 전후의 가격을 지급하고 마시는 막걸리다. 대규모 양조장의 경우 유통망이 촘촘하여 관리가 편하지만, 이러한 막걸리는 소량으로 유통이 안되고, 무엇보다 재고가 남는 경우 처리가 곤란했다. 서울에서 자사 막걸리가 몇 병 남았다고 부산에서 재고받으러 올라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따라서 희소성 및 지역의 가치를 인정, 트렌드 세터들은 다소 높은 가격에도 지불을 했다. 일반적인 막걸리가 1000원대라면, 이 막걸리의 소매가는 2000원이 넘는 경우가 많았으며, 외식업체에서는 주로 5000~9000원에 판매되었다.


 

다양한 크래프트 막걸리. . 산소 막걸리, 도깨비술, 나루 생막걸리, 술아 핸드메이드 막걸리


세 번째는 트렌드라는 옷을 입은 크래프트 막걸리 등이다. 젊은 감성으로 무장한 크래프트 막걸리는 기존의 막걸리가 가진 전통적 권위를 버리고 새로운 디자인에 맛과 멋으로 무장한 제품이다. 디자인만 보면 절대로 막걸리라고 생각 안 하는 제품이지만, 만드는 방식은 오히려 옛 방식인 수제품으로 막걸리 자체의 가치에 중점을 둔다.


대표적으로는 단양의 도깨비 술, 서울의 나루 생막걸리, 여주의 술아 핸드메이드 막걸리, 시뻘건 막걸리로 유명한 술 취한 원숭이, 복순도가 막걸리 등이다. 소비자 가격은 6천 원~1만 5천 원 이하로 외식업체에서는 1만 원~만천 원 등에 팔리고 있다.


네 번째는 문화적, 기술적 가치를 뽐내고 싶은 고가 프리미엄 막걸리 라인이다. 병당 1만 원~5만 원 대의 막걸리로 원료를 아낌없이 사용하며 숙성기간도 길게 가져간 제품이다. 지역의 햅쌀만을 고집하며 만드는 방식 조차 전통적 문헌에 근거한 제품들이 많다. 트럼프 만찬주로 유명한 풍정사계 춘,아세안 정상회의 건배주인 천비향, 아름다운 정원의 해창 막걸리, 송도의 삼양춘, 안동의 별바당 등이다. 제품 가격은 1만 5천 원이 넘으며 외식업체에서는 2만 원~ 7만 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 "이렇게 고급 막걸리가 시장이 있나"라는 의문이 있지만, 의외로 많이 팔린다. 와인은 와인바에서 5만 원 이면 저가의 와인이지만, 막걸리는 같은 가격이면 최상급을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판매하는 곳 조차도 와인바 이상의 좋은 인테리어를 갖춘 강남, 홍대 등의 핫 스폿에 있는 이유도 있다.


니치 시장이 리치 시장이 되다.


앞서 설명한대로 지평막걸리는 두 번째 카테고리인 역사와 전통의 지역의 소규모 양조장이었다. 그리고 이 시장은 원래 전체 막걸리 시장의 1% 정도의 아주 틈새시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업계 1위를 위협할 정도의 기세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뜻은 막걸리 시장 자체가 더이상은 가성비가 아닌, 가치를 따지는 프리미엄으로 시프트하고 있다는 뜻이며, 니치(nich)가 리치(rich)해지는 역파레토 법칙(롱테일 법칙)과도 이어진다. 


술은 버려야 팔린다 - 철저한 품질관리

소규모 막걸리 양조장의 가장 큰 과제는 대량생산을 했을 때, 균질한 맛을 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경험치가 부족해 서고, 두 번째는 설비도 받쳐주질 않는다. 무엇보다 '어차피 저렴한 막걸리'라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위생상의 문제가 있는 양조장이 많았다. 지평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 적극적인 품질관리에 들어갔다. 일단 날씨 및 발효 컨디션이 안 좋아 맛이 조금이라도 변한 막걸리 원액 그리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은 모두 버렸다. 한마디로 술은 버려야 팔린다는 철학이었다. 물론 덤핑으로 팔 수 있었지만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평은 시장에서 하나씩 신뢰를 쌓아간다.


 

지평 막걸리. 사진 아야코 오노


바꾼다, 하지만 안 바꾼다. - 막걸리 도수

지평 막걸리의 가장 큰 변화는 막걸리의 도수를 낮춘 것이다. 기존의 6%인 막걸리의 도수를 5%로 낮췄다. 단순히 저도수가 대세란 것은 아니었다. 맛을 위한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연구진도 총동원되었다. 알코올 도수를 5%로 낮춘 것으로 일단 막걸리의 누룩취가 확연히 적어졌다. 그리고 쌀 자체의 단맛을 살렸다. 단순히 물을 넣어 도수를 낮춘 것이 아닌, 발효공학을 통해 원료 비율을 그대로 가면서 맛에만 변화를 준 것이었다. 이렇게 낮은 도수의 막걸리는 맥주에 익숙한 2030 세대의 입맛을 맞출 수 있었다. 맥주의 알코올 도수가 4~5%이기 때문이다. 저도주로 바꾼 부분은 생각지 못한 홍보 효과로도 맞아떨어진다. 소주 등의 도수가 계속 낮아지면서 '저도수'의 키워드가 지속적인 노출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지평 막걸리도 같이 언급이 되었다.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홍보가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바꾼다, 하지만 안 바꾼다. -밀입국

하지만 지평 막걸리가 절대적으로 고수하는 것은 있었다. 바로 밀로 만든 누룩이었다. 밀누룩(밀입국)은 1960년대부터 양조장에서 본격적으로 쓰였던 막걸리 발효제. 특히 1965년 양곡관리법으로 인해 쌀로 더 이상 술을 못 빚게 되면서 당시 모든 양조장이 이 밀누룩(밀입국)을 사용하여 술을 빚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와서 쌀 막걸리가 허용되면서 이 밀누룩으로 술을 빚는 양조장은 상당수 사라졌다. 많은 양조장이 쌀누룩(쌀 입국)을 사용하여 술을 빚게 된 것이다. 도수는 낮아졌지만 본질이라고 판단한 옛 막걸리의 중요한 맛은 고수했다. 결과적으로 막걸리에 향수를 가진 5060 소비자층과 새롭게 신규로 진입한 2030 세대 두 마리의 토끼 모두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지평 주조의 모토는 이것 하나로 귀결된다. '바꾼다, 하지만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발전은 추구하지만, 결국 그 근본은 지켜나간다라는 의미다.

지평 막걸리의 밀입국 만드는 모습. 물론 이렇게 수제로 만드는 것은 일부 제품에만 사용된다. 
클래식과 트렌디를 모두 품은 디자인

지평 막걸리의 디자인에서도 연관된 기업철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바로 옛 방식인 세로 쓰기인 종서(縱書)로 디자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왼쪽으로 행갈이를 하는 우종서(右縱書) 형태로 되어 있다. 고전적인 디자인 형태를 그대로 가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디자인은 지평 주조 자체 내에서 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생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작품이다. 즉, 고전적인 디자인이었지만, 2030 세대의 감성도 품은 디자인이 되었다.

디자인은 소비자에게는 첫인상이다. 첫인상이 좋아야 다음이 진전이 된다. 결국, 클래식과 트렌디를 품은 디자인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거부감 없이 다가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매출로 이어졌다.


시대의 트렌드와 딱 맞는 지평 막걸리

최근 3년간 무수히 많은 소비 트렌드가 선을 보였다. 의미를 찾는 미닝 아웃(meaning out) 소비자에 소확행, 그리고 취향 존중이라는 개인의 입맛을 존중해주는 시대에 옛것을 새롭게 해석하는 뉴트로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익숙한 새로움을 찾는 뉴밀리어(New + Familiar), 가벼운 취향 위주의 관계라는 가취관, 다양한 삶을  만나고 추구하는 세대라는 다만추 등도 신조어로 등장했다. 주류업계에서는 하나의 주종으로 "부어라" "마셔라"라는 문화는 계속 사라지고 있다. 이 뜻은 보수적인 주류업계에서도 다양성이 주요한 포인트로 부각되고 있으며, 단순한 가성비가 아닌 소확행, 다만추, 취향존중등으로 스타가 나올 수 있는 시장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트렌디 속에 지평 막걸리는 남들과 다르면서도 익숙한 맛으로, 해당 키워드에 모두 적용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가격대가 딱 접근 가능한 수준이었다는 것. 가격에 너무 괴리가 있으면 바라만 보고 소비는 안 했겠지만, 이 정도의 가치에 몇백 원, 몇천 원 정도의 수준이라면 기꺼이 소비자는 지갑을 여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압도적인 헤시 태그 '지평 막걸리'

지평 막걸리는 SNS를 즐기는 트렌디 세터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막걸리였다. 한마디로 '나 막걸리도 골라 마실 줄 알아'란 느낌이다. 이러한 증거는 인스타그램의 헤시 태그 수에서도 알 수 있다. 현재 지평 막걸리는 36,700건, 지평 막걸리보다 매출 규모가 10배 가까이 큰 장수 막걸리(2018년 1800억 원 추정)의 경우도 지평 막걸리보다 적은 33,800건 수준이다. 이것은 업계 최고 수준으로 그 어떤 막걸리도 지평 막걸리만큼 많치않다.

이것은 얼마나 지평 막걸리가 트렌디 세트들에게 회자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이며  '나만의 인싸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8년 SBS 인기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 막걸리 편에서 지평 막걸리가 등장을 했다. 패널로 등장한 젊은 남녀들이 10종의 지역 막걸리 중에서 가장 맛있는 막걸리로 지평 막걸리를 선정한 것이다. 지평의 성장에 날개까지 달려졌다. 물론 이 부분에 PPL(간접광고)는 100% 없었다는 것이 지평 주조의 설명이다.


 

밀로 술을 빚느 지평 주조장. 출처 지평 주조장


마케팅 베이스가 든든한 지평 막걸리

지평 막걸리가 꼭 실천하는 것이 있다. 아무리 매출이 커지더라도 지역 행사에는 무조건 참여하는 것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판매망이 튼튼해야 확장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그래서 판매 영역을 넓히는 것도 본사인 양평에서 가까운 이천, 수원, 그리고 서울 지역은 강동과 송파로 점진적으로 진출을 했다. 현재는 단순히 수도권뿐만이 아닌 경북, 전라, 충청지역까지 대리점이 생겼다. 참고로 지평 주조는 판매 대리점에게 마케팅 및 영업전략도 믿고 맡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여, 수익금을 다시 대리점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매출 할당량 등이 없었다. 매출을 어느 정도 올리지 못하면 대리점 권한을 빼앗기는 악행을 없앤 것이다. 윈윈(win-win)과 상생의 두 가지가 파트너십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외연수도 함께 간다. '자신이 부자가 되고 싶으면 남을 부자가 되게 하라'라는 철학이기도 하다.


제값 주고 팔 수 있었던 지평 막걸리

원래 막걸리는 유통업계에서 병당 100원, 50원 떼기의 초저가 이윤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오직 막걸리는 가격으로만 평가받는 등 막걸리가 가진 부가가치는 절대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시장이었다. 낮은 가격이 가장 중요했던 요소였던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막걸리의 질적 성장을 계속 하락시킨 채, 원재료의 차별화, 소비자와의 소통 등 모든 부가가치 있는 활동을 저해했다. 하지만 오래된 역사와 지역의 문화를 품은 지평 막걸리는 다소 높은 가격이라도 소비자가 지불할 의사가 있었다. 따라서 지평막걸리를 취급하는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다른 막걸리에 비해 활용할 수 있는 마케팅적 룸이 생긴 것이다.


 


유사품이 오히려 브랜드 끌어올려

이렇게 지평 막걸리가 인기가 끌다 보니 유사품까지 등장했다. 같은 지평리에 있는 A양조장에서 '생지평'이라는 이름으로 상표등록을 출원한 것이다. 하지만 특허청에서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이 보인다"며 상표 등록을 허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A업체는 포기하지 않고 다음에는 '지평 생'으로 해당 표장을 등록했다. 법원은 이번에도 지평주조의 편을 들어줬다. A사는 이번에는 2017년 3월에는 '원지평'표장을 등록하고,  "해당 표장은 '지평' 표장의 권리에 속하지 않는다"며 소극적 권리범위 확인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특허심판원은 해당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A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원지평 생막걸리'등을 경기 양평군과 서울 노원지역 식당에 판매했다. 결국 지평주조는 법원에 "'지평'이 적힌 표장을 사용하지 말라"며 소송을 냈다. 결국 지평주조는 A사를 상대로 낸 상표 등 사용금지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지평'은 광복 전부터 사용된 표장이며 막걸리와 관련돼 일반 수요자에게 강하게 인식된다"면서 "A사가 막걸리를 만들기 전까지는 유일하게 지평주조만이 지평면에서 막걸리를 제조했다"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A사의 '원지평' '생지평'과 같은 상표는 지평주조가 만드는 막걸리의 상표권을 침해할 상당한 우려가 있다"며 제품 및 관련 포장지 등을 모두 폐기하라고 판시했다.


지평주조 입장에서는 소송까지 가는 번거로운 일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지평 막걸리의 위상을 확인시켜준 이야기로 회자가 되었다. 유사품은 아무 제품이나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SNS가 발달한 지금의 상황에서는 진품과 유사품의 구분은 너무도 쉬웠다. 덕분에 지평의 매출은 쑥쑥 커져나갔다.


춘천공장으로 확장 이전한 지평 막걸리. 맛을 의해 옛 양조장 기둥의 효모균 채취.

2018년 6월 지평주조는 양평에 있는 본사 양조장을 놔두고, 동춘천 산업단지에 제2공장을 설립하고 첫 생산에 돌입했다. 대지 2600평, 건물 1000평의 최첨단 자동화 설비와 고도화된 품질관리 설비를 갖춘 신축 공장이다. 월 500만 병을 제조할 수 있는 구조다. 기존 양평의 공장 대비 3배 정도 많아진 수준이다. 하지만 걱정이 많았다. 술을 빚는 환경이 달라지면, 술맛 역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지평주조에서는 가장 중요한 두 개를 지키자고 했다. 바로 물과 효모균이었다.


그래서 춘천에서 사용하는 물을 지평리의 물과 99.9% 같은 형태로 조정했으며, 양조장에 서식한다는 효모균은 옛 양조장 기둥 등에서 채취할 계획이다. 초기에 실패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신공장에서 만든 지평 막걸리 맛은 예전 것과 다름이 없다는 시장의 평가를 받게 된다.

술을 빚는 공간만 다를 뿐, 본질이 지닌 가치, 그리고 그 가치는 물과 효모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모든 것을 진두지휘한 30대 대표이사

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한 것은 지평주조의 4대 대표인 김기환 대표. 마케팅, 홍보기업에 다니던 그는 2009년 대표이사로 취임, 지평주조를 맡게 된다. 초기에 신혼자금 모두를 투자하여 결국 신혼방을 차릴 곳이 없어졌다. 결국 김기환 대표가 선택한 것은 양조장. 한마디로 공장 내 신혼집을 차린 것이다. 그것도 겨우 3평 자리 쪽방이었다. 전국의 유명 전통주 교육기관을 섬렵하고 양조장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새벽과 한밤중에는 밀입국 온도를 맞췄고, 낮에는 양평과 여주로 배달일에 매진했다. 김기환 대표가 부임했던 2009년도에는 술맛이 고르지 않았다. 어떤 날은 너무 맛있었지만, 반대로 마음에 안 드는 날도 많았다. 결국 맛의 균질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사업을 확장하기란 절대적으로 무리였다. 이에 김기환 대표는 밤낮으로 공정을 모두 기록하면서 균질(均質)한 제품 생산에 매달렸다. 이렇게 품질관리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면서 매출이 쑥쑥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 - 소비자와의 소통창구를 더욱 확산

이제까지 지평주조가 생산 및 관리에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소비자와의 소통영역을 더욱 넓힐 예정이다. 첫 번째 사업으로 현재 지평리의 양조장을 갤러리로 변경, 100년 역사의 지평 주조의 역사와 문화를 전파할 예정이다. 더불어 이 양조장에서 기존에 없었던 프리미엄 제품을 제조 및 판매할 예정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통해 소비자가에 막걸리가 가진 다양성과 부가가치를 보여줄 예정이다. 이러한 갤러리가 완공되면 주변의 양평의 관광지와 연결하여 관광문화상품으로써의 부가가치를 키워나갈 예정이다. 더불어 지역경제발전에도 이바지하고자 다양한 사회시설을 세워 지역에 밀착한 문화산업을 만들어 갈 예정이다. 단순히 막걸리만 있는 것이 아닌, 클래식 음악 및 미술 작품과의 콜라보를 통해 막걸리의 숨겨진 가치를 알려나갈 계획도 있다. 지평주조가 추구하는 모델은 아일랜드의 기네스 마을. 기네스는 아일랜드 최초의 일요학교의 창설 및 지역 사회의 빈곤 삭감사업 등 지역에 대한 사회사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결국 지역사회에 공헌하며,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다.


change it, But do not change it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인 포르셰의 디자인 철학은 단순하다. "change it, But do not change it". 즉 "바꿔라, 하지만 바꾸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본질에 집중하며 진화해 나간다는 의미다. 결국 지평 막걸리가 추구했던 것도 같은 맥락. 가장 기본인 품질관리에 열정을 쏟았으며, 수출보다는 내수에 집중했다. 맛은 바꿨지만 옛맛은 살렸으며, 판매 대리점들과의 협업 및 상생으로 두터운 파트너십을 쌓을 수 있었으며, 이로인해 개인의 취향을 찾는 섬세한 소비자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여기에 소확행, 뉴트로 등 시대를 아우르는 키워드 속에 늘 지평 막걸리도 함께 등장했다. 


지평 밀 막걸리. 1970년대의 맛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오래된 기업을 보면 주류회사들이 많다. 기네스 맥주도 250년의 역사가 있으며, 유럽의 와이너리도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곳이 수두룩하다. 일본의 사케 양조장도 100년 역사는 기본이다. 주류시장은 착실하게 신뢰를 쌓아 놓으면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 이제까지 100년을 달려온 지평주조의 향후 100년이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것에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0년 한국 맥주 시장 전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