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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Nov 22. 2018

이몽룡을 잡으려던 춘향이의 술, 감홍로

조선 3대 명주라고 불리는 감홍로를 찾아서

얼마 전, 제주도 특급 호텔 제주 켄싱턴에서 특별한 행사가 하나 진행되었다. 바로 ‘전통주 갈라쇼’이다. 돌미롱이라는 켄싱턴의 전통주 바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제주도의 토속술인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시작으로 제주의 쌀로 빚은 맑은 바당, 담양의 대통대잎술 등 자주 접하기 어려운 지역 술이 선보였다. 

그 중에서 참가자의 이목을 집중한 앙상블이 있었으니 ‘감홍로 아포가토’. 조선 3대 명주라 일컬어지는 전통주에 아이스크림을 뿌려 먹는 이 앙상블은 참가자들로 하여금 전통에 트랜디를 얹어 신세계를 열음과 동시에 전통주의 다양한 활용 방법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였다. 그렇다면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잘 어울렸던 감홍로는 도대체 어떤 술일까?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매서운 한파 속에서 감홍로를 빚고 있는 파주로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감홍로 아포가토. 출처 제주 캔신텅호텔 돌미롱 감홍로 아포가토. 출처 제주 캔신텅호텔 돌미롱


육당 최남선이 언급한 조선의 소주, 감홍로(甘紅露)

감홍로는 전통주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유명한 평양의 술이다. 이유는 육당 최남선이 조선상식문답이라는 책에 조선 3대 명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1946년 문답형식의 글로 발행된 이 책에는 조선 칭호의 유래부터 세시풍속, 신앙과 유학, 종교까지 망라한 456항목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는데, 술에 대하여는 죽력고, 이강고와 함께 감홍로가 유명하다고 언급되어 있다. 다만 육당 최남선이 언급한 감홍로는 ‘관서 감홍로’로 지초의 함량이 높아 붉은 색을 띄는데, 파주의 감홍로는 조선시대 국가의 약재를 담당하던 내국(內局)에서 빚던 감홍로로 붉은 색 보다는 황금빛을 내는 것이 특징이며, 문헌에는 은으로 증류하거나 받아 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존하는 감홍로는 1924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기록된 내국 감홍로를 복원해 냈는데, 결국 지초를 사용한 달콤한 전통소주란 뿌리는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몽룡을 잡으려는 춘향이의 이별주, 감홍로 찾으러 용궁으로 간 토끼의 별주부전

감홍로는 우리에게 친근한 고전 소설에도 등장한다. 바로 춘향전. 이몽룡을 위한 춘향이의 주안상에는 국화주, 송엽주, 백화주, 이강고 등 다양한 전통주가 등장하는데, 특히 이몽룡이 한양으로 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잡으려는 이별주에 등장하는 것이 감홍로이다. 가장 좋은 술을 마심으로써 최대한 늦게 가게 하려는 춘향이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별주부전에서는 거북이가 토끼를 회유하기 위해 용궁에 가면 감홍로가 있다고 말하는 장면을 볼 수 있고, 그 외 시와 그림에 능했던 조선 최고의 기생인 황진이는 그가 그리워했던 남자 서화담을 빛이 붉고 맛이 강한 감홍로에 빗대서 이야기하는 등 그 맛과 품위가 남달랐단 것은 틀림이 없다.

감홍로의 다양한 술병. 집에서도 활용되기를 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레이블 작업은 안 한다고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문배주와 뿌리를 같이 하는 파주 감홍로 양조장
감홍로가 만들어 지는 곳은 현재 경기도 파주시 부곡리에 위치한 ‘감홍로농업회사법인’. 2005년부터 감홍로를 복원하기 시작한 농식품부 식품명인 이기숙 명인과, 남편인 이민형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감홍로를 시작하게 된 배경은 중요무형문화재 문배주의 기능보유자였던 고 이경찬 옹이 이기숙 명인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평양 최대의 양조장을 하던 이 집안은 한국전생 시 1.4 후퇴 때 내려오게 되었고, 늘 평양의 전통주를 복원하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하지만 1964년도부터 쌀로 술을 빚으면 안 된다는 양곡관리법이 적용이 되어 제대로 된 복원을 하지 못하였던 중, 1986년 문배주의 이경찬 옹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면서, 감홍로에 대한 복원도 본격적으로 검토에 들어가게 되고, 2005년 허가를 받으며 정식으로 감홍로를 만들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이 인정되어, 감홍로를 빚는 이기숙 명인은 2012년 농림축산식품부 식품명인 제 43호로 등재를 하게 된다. 


인사동에 위치한 전통주 갤러리를 방문한 이기숙 명인과 이민형 대표. 출처 나오미의 길을 걷다

이름 그대로 달콤한 맛 감홍로. 이유는 열대과일 용안육

감홍로는 그 이름 그대로 단술이다. 알코올 도수 40도를 넘는 약용 소주지만 단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 이유는 바로 열대과일인 용안육이 들어가기 때문. 용안육은 무환자나무과라는 용안의 열매로 주로 베트남, 광동 지방의 열매이다. 조선시대에는 신경과민, 불안 초초, 우울증을 해소하는 약재로 효능이 좋아 당시부터 수입해서 사용했던 약재로, 1924년 발행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이 용안육을 사용한 감홍로 제법이 기록되어 있다. 감홍로가 아포가트 형식으로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잘 어울렸던 이유는 이러한 열대과실에서 오는 달콤함과 그리고 진한 알코올 도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열대과일인 용안육. 조선시대에는 일부러 수입까지 하는 귀한 약재였다. 식감은 곶감과 같은 느낌

몸을 따뜻하게 하는 감홍로, 감기를 예방하는 다양한 약재
대한민국의 전통 소주는 보통, 2,3번 증류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증류의 횟수가 많아지면 알코올 도수가 높아지고 보다 깨끗한 맛이 나오기도 하는데, 감홍로가 여기에 해당된다. 메조와 쌀로 술(술덧)을 빚고, 이후 이 술을 2번의 증류를 통해 감홍로 원주를 얻는다. 여기에 용안육, 진피, 계피, 정향, 감귤, 지초 등을 넣고 1년 이상 숙성을 시키면 황금빛의 감홍로가 완성이 된다. 평양의 술인 만큼, 추운 지방의 특징을 살려 몸을 따뜻하게 하는 약재가 많이 들어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계피, 생강, 정향, 감귤, 진피 등이다. 어렵게 찾은 영월의 메조, 올해부터는 100% 우리 농산물로

감홍로의 이기숙 명인, 이민형 대표가 감홍로를 빚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모든 재료를 국내산으로 조달할 수 없었던 것. 특히 감홍로에 들어가는 메조는 국내에서 거의 생산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수입산을 사다 감홍로를 빚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메조 생산 농가를 계속 찾던 중, 강원도 영월의 농가를 발견, 올해 첫 계약재배를 맺었고, 올해부터 만들어지는 감홍로는 영월의 메조로 빚기로 했다. 감홍로 제조자 입장에서는 원가는 높아졌지만 마음은 더 뿌듯하다고 이기숙 명인은 전한다. 내년 여름이면 새로운 재료로 빚는 감홍로가 출시 될 예정이다. 

문헌에 기록된 농산물은 모두 복원시켜야
감홍로의 이민형 대표는 문헌에 근거하는 모든 농산물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재배돼야 한다고 말했다. 획일적인 식문화로 다양한 곡물이 사라지고, 수입농산물에 의존한다면, 전통주를 떠나 진정한 한식문화를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 농산물은 제값을 주고 사야 한다는 말도 같이 덧붙였다. 제 값을 줘야 농산물도 더욱 좋아지고, 그럼 그런 농산물을 사용한 우리술도 더욱 좋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학 덕분일까, 감홍로는 이탈리아 브라에 본부를 두고 있는 비영리 국제기구 국제슬로푸드의 전통음식과 문화보전 프로젝트인 ‘맛의 방주’에 등록되어, 보호해야 할 한국의 슬로푸드로 인정받게 된다.

감홍로(왼쪽)와 디저트, 그리고 아이스크림. 출처 제주켄싱턴호텔 돌미롱 감홍로(왼쪽)와 디저트, 그리고 아이스크림. 출처 제주켄싱턴호텔 돌미롱


요구르트하고도 잘 어울리는 감홍로, 꼭 전통적인 음식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어
감홍로는 오래된 문헌에도 나올 정도의 우리 고유의 전통주지만 그 맛과 풍미를 즐김에 있어서 꼭 전통음식만 즐길 필요는 없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바닐라 아이스크림, 또는 호두 아이스크림하고도 잘 어울린다고 전문가는 전한다. 최근에는 일부 마니아를 중심으로 요구르트에 뿌려 먹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겉모습은 전통이지만 알고 보면 그 속살은 트랜디로 똘똘 뭉쳐져 있는 것이 이 감홍로 일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고향, 명절 선물은 귀한 고향의 전통주로
우리는 늘 명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귀한 분을 생각하며 드리는 선물을 빼 놓을 수 없다. 선물이라는 것은 주는 사람의 감사와 받는 사람과의 소통과 공감이 중요하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번 설날을 통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마 고향이라 생각된다. 내가 살던 터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모든 인류가 가진 본능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설날만큼은 내 고향의 전통주나 농산물로 마음을 전하면 어떨까? 모두가 고향을 생각하는 이 시기야 말로 고향의 술 한잔을 통해 그 동안 못 나눴던 귀한 분과의 소통과 교류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감홍로 명인 이기숙 명인과 남편이자 대표인 이민형 씨

written by 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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