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침입으로 시작된 한국 소주 역사
학창 시절 국사시험에 자주 등장했던 실학 서적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었던 지봉유설(芝峯類說)이다. 광해군이 집권하던 조선 중기, 지봉 이수광이 청나라 등을 여행하면서 우주와 자연, 지리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하고 영국, 이탈리아 등 서양의 문물을 소개한 20여 권의 이 책은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탈피하며, 정약용 등 후대의 실학사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고서적 중 하나다. 재미있는 것이 이 지봉유설에는 우리나라에 소주 제조의 유래가 나와 있는데, 고려 시대 몽골 간섭기에서 왔다는 것이다.
몽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제주도
그렇다면 어느 지역이 당시 몽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을까? 소주 기술은 당시 몽골의 병참기지였던 안동, 개성 그리고 제주도로 왔다고 전해져 있으며, 당시 고려에 행정부를 설치한 곳은 평양의 동녕총관부, 함경남도 영흥의 쌍성총관부, 그리고 제주에 탐라총관부, 이 세 곳에 몽골의 행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옛 방식이 어떻게 현대화 시설로 바뀌었는지를 나타낸 제주샘주의 정원>
이 중 병참기지와 총관부 두 곳 다 해당되는 곳은 제주도이다. 몽골의 탐라 총관부는 향후 그 이름을 달리 하지만, 몽골에 조공으로 바칠 말을 직접 목호(牧胡)라는 몽골인이 와서 사육을 했고, 제주도에 토착화되면서 그 수는 1,700명에 달했다고 역사는 전한다. 공민왕의 반원 정책이 시행되고, 최영이 이들의 난을 평정하기 전인 약 100년간 실질적인 몽골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었던 것이 제주도이다. 그만큼 몽골의 언어가 많이 남아있는데, 제주도의 토속 술과 그 이름의 유래를 알아본다.
제주도의 식혜 겸 막걸리, 쉰다리의 어원은 슌타리?
제주도의 토속 식혜 겸 막걸리라 불리는 낮은 도수의 쉰다리란 술이 있다. 식혜 겸 막걸리란 것이 무척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몰라도 둘은 지극히 가까운 존재다. 둘 다 곡물의 전분이 엿기름이나 누룩을 통해 당화란 과정을 통해 당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효모가 당분을 먹으며 알코올 발효가 진행되면 막걸리가 되고, 온도를 4~50도로 높여 효모가 살지 못하는 과정에서 발효하면 단순히 단맛만 남는 식혜가 되기 때문이다.
<쉰다리 체험. 제주샘주. 쌀, 보리, 좁쌀을 넣었다>
제주도의 쉰다리란 술은 쌀밥이나 보리밥에 물과 함께 잘게 부순 누룩을 넣고 버무리면, 여름에는 2, 3일, 겨울에는 5, 6일이 지나면 그 특유의 맛이 나오는데, 최근에는 이것의 어원이 몽골어라는 발표가 나왔다. 그 이름은 슌타리(Shuntari). 몽골어로는 우유, 요구르트를 뜻하는 의미다. 살짝 쉰 밥도 이렇게 발효시켜 먹기에 또는 순해서 쉰다리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제주도의 물항아리 물허벅은 허버
제주도의 상징 중 하나인 물허벅은 아낙네들이 물을 운반할 때 쓰던 작은 항아리와 같은 도구이다. 부리가 좁고 배가 많이 나왔으며, 굽은 평평하여 운반하는 사람이 등에 지고 다녀도 흔들리지 않아 물이 잘 새지 않는다. 역시 이 물허벅도 최근에 그 유래가 발표되었는데, 그 어원이 바로 '허버'. 몽골어로 바가지란 뜻이다. 여기에 물이란 단어가 붙어서 물허벅이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 최근에는 이 허벅이란 이름을 활용한 술이 나왔다. 한라산 소주로 유명한 제주도 한라 소주에서 ‘허벅술’이란 증류식 소주를 출시한 것이다.
<물허벅. 저렇게 뚱뚱한 항아리를 짊어지고 다녔다>
몽골어는 아니지만, 제주도의 독특한 술 오메기술, 고소리술
제주도의 대표적인 토속 술이라면 역시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들 수 있다. 둘 다 제주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오메기란 좁쌀의 제주도 방언으로 오메기떡은 좁쌀떡, 오메기술은 오메기떡으로 빚은 술이라고 볼 수 있다.
<제주샘주 오메기술, 고소리술 벽화>
소주 증류기(소주고리)를 제주도 방언으로 고소리라고 하는데, 술독에 묻어둔 오메기술을 솥에 넣어 고소리로 내린 것을 고소리술이라 부르는 것이다. 오메기술은 발효주인만큼 알코올 도수가 10도~13도. 고소리술은 증류를 통한 알코올을 뽑는 만큼 40도가 넘는 고도주가 주류를 이룬다.
제주 술을 체험할 수 있는 애월읍 제주샘주, 그 지역에는 대몽항쟁의 역사가 그대로
예전에는 성산 일출봉과 가까운 성읍 민속마을에서 오메기술을, 올레길에서는 쉰다리를 만나보곤 했지만, 요즘에는 그리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그럴 때는 애월읍에 있는 제주샘주를 방문하면, 오메기떡부터 쉰다리, 오메기술, 고소리 술 등 제주만의 술과 떡, 그리고 고소리술을 이용한 칵테일까지 체험해 볼 수 있다.
애월읍은 주변에는 곽지 해수욕장, 더럭 분교가 있으며 가수 이효리 씨가 사는 마을로도 잘 알려졌지만, 아이너리하게도 대몽항쟁의 상징인 삼별초가 최후까지 항전한 곳이다. 그리고 100년의 세월을 지나 애월읍에서 최영 장군이 최후의 몽골 세력인 목호의 난을 제압함으로써, 제주는 완벽하게 고려에 귀속하게 한 역사의 현장이다. 애월읍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에는 당시 삼별초를 지휘했던 김통정 장군과 몽골 세력을 몰아낸 최영 장군의 석상이 서 있는 등 대몽항쟁의 역사에 관한 다양한 유적과 자료를 몸으로 느껴볼 수 있다.
우리나라 소주 기원을 찾아보는 여행, 그 시작은 제주도에서
가슴 저미는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우리 역사란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전쟁과 침략 속에서도 문화는 생겨나게 마련이다. 제주도의 몽골 문화로 쉰다리나 고소리술이 생겼다면, 삼별초의 제주도 이전 본거지였던 진도에는 진도홍주가 생겨났다. 병참기지였던 안동에는 주권을 회복한 후 안동소주가 사대부들 사이에 유행했으며, 동녕 총관부가 있던 평양에는 문배술, 감홍로 등 유명 전통 소주가 생겨났고, 이러한 모든 전통주를 무형문화재 분들이나 장인들이 현재도 이어가고 있다.
침략 속에서 전래된 문화인 것은 확실하나, 우리 것으로 만든 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소주의 기원을 찾아 전국을 여행해 보는 것을 어떨까? 단순히 술을 찾아 마시고 취하는 문화가 아닌 나라와 민족을 지키려고 한 우리의 역사와 그것을 통한 문화의 변모를 술이 가진 역사를 통해 몸소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더럭 분교. 파스텔톤의 이 학교는 언제나 포토그래퍼로 붐비는 곳이다. 제주샘주와 도보 5분 거리에 있다>
written by 명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