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 맥주의 전략, 그리고 성공
25년 전에 시작한 나의 일본 유학 생활은 실은 아르바이트의 연속이었다. 높은 일본 물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든 간에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첫 아르바이트는 일본에 온 지 6개월째, 야키니꾸(焼肉)라는 일본식 고깃집에서 하게 된다.
매장에서 판매하는 맥주가 다 떨어지면, 가게 사장님은 나에게 맥주 심부름을 시켰다. 때마침 내가 구입한 맥주는 메탈릭 디자인의 <아사히 슈퍼 드라이>. 당시 가장 유명했던 <기린 맥주>는 너무 디자인이 예스러워서 괜히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사히 맥주를 가져간 나에게는 불호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린 맥주를 사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기린 맥주는 일본 점유율 1위였고, 아사히는 한때 망할 뻔했던 그런 이미지가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1980년대 OB맥주와 크라운 맥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기린맥주는 고풍적인 이미지와 결합된 세련된 이미지였고, 아사히는 여전히 만년 2위 업체인 촌스러운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일본 맥주 1위는 20년 넘게 아사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아사히 맥주의 역사
아사히 맥주는 1889년도에 오사카 맥주회사란 이름으로 설립된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삿포로 맥주, 에비스 맥주 등과 합병된 회사로 있지만, 1949년, 회사분할에 의해 정식으로 다시 아사히 맥주가 된다. 아사히 맥주란 의미는 뜨는 해, 아침의 해란 의미다. 다만 늘 2위를 유지한 아사히지만, 1980년대 들어와 시장점유율이 9.9%로 곤두박질, 4위 산토리 맥주(9%대)에 위협을 당할 정도였다.
때문에 <뜨는 해> 아사히 맥주(朝日ビール)의 별명은 <지는 해> 유히 맥주(夕日ビール)로 바뀐다. 하지만 이때쯤 우리에게 눈익은 제품이 등장한다. 바로 아사히 슈퍼 드라이. 아사히 맥주의 운명을 바꾼 제품이 1987년에 출시되는 것이다.
묵직한 맥주에 지루해했던 일본 맥주 소비층
1984년에 <소비자가 추구하는 상품을 제공한다>라는 경영방침을 세운 아사히 맥주는 다음 해에 비자 5,000명을 대상으로 맥주 트렌드 조사를 시작한다. 그때 얻은 내용이 맥주를 입에 머금었을 때, 깊은 맛(コク)와 깔끔함(キレ)이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전까지 무겁고 풍미가 가득한 정통파 독일 맥주의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획기적인 맛이었다. 당시 일본의 음식은 가벼운 음식에서 점점 육류 소비가 늘어나는 상태. 결국 맥주도 그렇게 변화를 해야만 했고, 드라이함(辛口)과 깔끔함(キレ)를 목표로 제품 개발을 하게 된다.
사과문이 더욱 성공한 마케팅으로 변신
아사히 맥주의 마케팅은 한편으로는 신선했는데, 일간지에 사과문을 게재한 것이었다. 이유는 생산이 판매를 따라가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 1987년도에 출시를 한 슈퍼 드라이의 경우, 너무 많이 팔려 소비자들에게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다.
회사는 사원들에게는 슈퍼 드라이를 마시지 못하게 하였고, 생산은 오직 슈퍼 드라이에만 집중했다. 결국 이러한 품절 사태와 사과문으로 슈퍼 드라이의 인지도는 더욱 올라가고, 기존의 점유율 13%는 21%로 증가, 기린 맥주에 이어 2위로 등극을 하게 된다. 드라이를 표방했지만, 실질적으로 성분을 보면 기린 맥주에 비해 눈에 띌 만큼 단맛이 적거나 하지 않았다. 결국은 이미지 전쟁의 승자이기도 한 셈이다.
결국, 아사히 맥주는 이 슈퍼드라이로 1996년도에 월간 1위, 1997년도에는 일본 맥주 전체 1위가 되었으며, 2016년에도 40%에 가까운 점유율로 현재도 그 아성을 계속 지켜나가고 있다.
(2위 기린 맥주는 35% 전후)
엔젤링은 마케팅 용어?
현재 아사히 맥주는 롯데주류와 아사히맥주의 합작법인인 롯데아사히에서 판매를 하고 있다. 유통이 강점인 롯데가 맡은 만큼 아사히 맥주는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수입맥주다. 참고로 아사히 슈퍼 드라이의 광고를 보면 늘 컵에 묻은 거품으로 엔젤링을 확인하라고 하는데,이는 일본에서 나온 조어이며, 맥주의 본고장 유럽에서는 쓰지 않는다. 굳이 쓴다면 레이싱(Racing)이란 단어로 쓰는데, 좋은 맥주의 기준과는 관계없다. 다만 일본 소비자는 다르다.
깨끗한 잔에 정성을 담아 따르면 보이는 좋은 맥주라는 증거로 인식하고 있고, 지금도 일본 소비자는 이 엔젤링을 상당히 믿고 있는 상황이다. 즉, 아사히는 시장의 변화에 순응하면서 소비자가 원하는 적절한 제품과 이미지 각인을 통해 1위를 지키고 있다는 개인적인 판단이다.
병맥주는 중국 생산, 캔맥주는 일본 생산
현재 한국에 수입되는 캔맥주는 일본산, 병맥주는 중국이다. 이미 아사히 맥주는 작년 말까지만 해도 칭타오 맥주의 2대 주주였으며, 중국 현지에 공장을 두고 있다. 기본적으로 수입 및 수출은 병맥주보다 캔맥주가 편하다고 알려져 있다. 일단 병 자체가 국산 제품과 달리 재활용이 어렵고, 무게도 캔에 비해 무거우며, 깨지거나 파손되면 흉기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결론은 내지 못하지만, 한국에서도 수입맥주는 병맥주가 캔맥주보다 비싼 경우가 많다. 현재 아사히가 가진 칭다오 맥주의 지분은 칭다오시와 홍콩의 연합펀드로 구성된 펀드로 매각이 된 상태며, 아사히 맥주는 2016년부터 가지고 있던 체코 맥주 필스너 우르켈 지분 등을 활용, 유럽시장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흥미롭게도 한국에서 마시는 체코 맥주 필스너 우르켈은 주인이 아사히인 셈이다.
아사히 맥주는 우익 기업?
얼마 전 아사히 맥주에서 새로 출시한 제품에 욱일기(旭日旗)가 그려져 있어서 전범기업이라는 기사나 나오게 되었다. 전범기업이고 아닌 것을 떠나 아사히(朝日)란 이름 자체가 아침의 태양이란 의미도 있고, 해가 승천하다는 욱일(旭日)이라는 발음을 훈독으로 읽으면 아사히가 된다. 일본에서는 좌익 미디어로 보이는 아사히 신문(朝日新聞) 도 비슷하다. 따라서, 회사 이름 자체가 해가 뜨거나, 퍼져나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태양을 상징하는 일본의 국기와도 연결된다. 다만, 이러한 제품이 최근 일본의 우경화에 편승한 것이라는 해석에는 변함이 없다.
아사히 맥주가 우익 기업으로 생각되는 이유는 나카죠 다카노리 명예고문의 영향이 가장 크다. 1988년 동사의 대표이사도 역임하며 회사의 부활을 이끈 그는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야스쿠니신사(靖国神社) 유족회의 회장도 맡고 있어 하루도 빠짐없이 참배하러 갔던 인물이다. 따라서 우익 성향이 강했으며, 회사에 대한 영향력도 엄청났기 때문에 아사히 맥주가 더욱 우익 성향으로 갔었을 수도 있다.
아사히 맥주는 하이트 맥주의 전신?
아사히 맥주는 실은 한국에도 공장이 있었다. 1933년 당시 아사히,에비스, 삿포로 맥주가 통합된 기업 대일본맥주는 영등포에 조선 맥주라는 이름으로 공장을 세운다. 해방 이후 이 공장은 크라운 맥주공장이 되고, 지금의 하이트가 된다. 참고로 기린 맥주도 1933년 12월에 쇼와 기린맥주공장을 같은 영등포에 세우는데 해방 이후 Oriental Brewery, OB맥주의 전신이 된다.
공장에서 3일 내 배송하는 <공장 직송>프리미엄 시스템
일본에서는 오봉(お盆)이라고 불리는 명절과 새해에는 많은 선물을 주고받는데, 그때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이 이 맥주 선물세트다. 아사히 맥주는 2010년 들어와서 이 선물세트에 프리미엄을 더하고자 공장에서 3일 내 배송이라는 타이틀을 건다. 맥주의 생명은 신선도는 슬로건과 함께 하며 말이다. 단순히 제품을 빨리 배송하는 것이 아닌 최상의 상태로 보내려고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고, 그것이 결국 가격이 높다는 고부가가치로 연결이 된다.
아사히 맥주는 방사능에 자유로운가?
아사히 맥주는 총 9곳에 공장을 두고 있는데, 그중 한 곳이 후쿠시마다. 현재 후쿠시마산 맥주는 한국에 수입되고 있지 않다. 아사히 맥주의 아랫면을 보면 공장의 이니셜을 적어놨다. 후쿠시마산은 H가 적혀있다. 따라서, 이것은 정식 수입제품은 아니다.
각각 생산 공장별로 후쿠시마(H), 이바라키(B), 가나가와(Y), 홋카이도(E), 스키 타(U), 시코쿠(R) △나고야(S), 하카타 (D) 등으로 표기된다. 또한 아사히 맥주의 생산 이력은 일본 '아사히' 홈페이지(http://www.asahibeer.co.jp/quality/quality_access)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다고 해서 방사능에서 무조건 안전하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이바라키 지역만 해도 후쿠시마 지역과 멀지 않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다.
호불호가 갈리는 아사히 슈퍼 드라이
아사히 슈퍼 드라이가 가장 많이 팔리는 수입맥주이긴 하지만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면 언제나 최고의 점수는 얻지 못한다. 이유는 유럽의 에일 맥주처럼 홉이 강하지도 않으며, 한국의 맥주처럼 탄산이 강하지도 않다. 결국은 특별한 개성은 부족한 편. 다만 부드러움과 담백함, 그리고 계속 마셔도 괜찮은 잔잔한 드라이함은 있다. 덕분에 여러 음식과 무난하게 어울린다. 개성 충만의 스타일보다는 두루두루 친한 정체성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잔속에 남은 엔젤링이 아사히 맥주임을 알려준다. 그것만으로 소비자들은 만족하기도 한다.
현재 아사히 맥주는 현재 점유율 40% 전후로 35% 전후의 기린맥주와 호각지세를 벌이고 있다. 확실한 것은 점유율 차이는 크지 않지만 그들이 20년 넘게 지속적인 1등(순수 맥주 부분)을 지켜오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지루한 틈을 타서 새롭게 만든 제품, 진정성 있는 사과문, 엔젤링이라는 소비자 각인의 성공, 공장 직송이라는 같은 제품 속에서의 차별화는 다양성과 고급화를 추구해야 하는 우리의 주류산업과 전통주 시장에도 참고할 만한 사항이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Written by 주류문화칼럼니스트 명욱
이 내용은 SBS 팟캐스트 말술남녀에서 소개한 내용을 가지고 정리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