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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Nov 22. 2018

한국의 예거마이스터(?), 이강주

전통의 과실 소주, 조선 3대 명주 이강주
수년 전, 대한민국에는 특이한 주류 열풍이 불었다. 바로 과실 소주. 일반적인 소주병에 과실을 넣어 소주 맛을 어려워하는 층에 강력하게 어필했던 제품들이다. 과실이 들어가 기존의 알코올 맛을 잡았고, 이름까지 특이해 폭발적인 매출 성장을 이루었다. 그렇다면 이런 과실 소주는 선조들이 빚은 전통주에는 없었을까? 당연히 있었다. 사시사철 술 재료를 달리하며 계절을 느끼고 원료의 풍미를 느꼈던 우리의 전통주 문화에 이러한 술이 없을 리가 없다. 하지만 1909년 일제 강점기 시절과 해방 이후 압축성장은 본래 가지고 있었던 풍미를 즐기던 술 문화를 바꿔버렸다. 맛을 즐기기보다는 쉽게 취하는 술로, 그리고 원료의 가치를 생각하기보다는 가격으로만 판단하는 저렴한 가격의 술만 만들게 되었다.


이러다 보니 지역의 문화를 가지고 있던 전통주는 설 자리가 사라지고, 명맥만 유지하기에도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만들어가는 곳이 있다. 육당 최남선이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의 대표 술 중 하나로 언급한 고급 약소주, 배(梨)와 생강()의 풍미가 그대로 살아 있는 전통소주, 이강주(梨薑酒)이다. 현재 이 술이 만들어 지고 있는 곳은 한식의 고향이라는 전주. 이 술이 빚어지는 과정을 느끼기 위해 직접 전주 이강주 양조장을 다녀왔다. 

이강주에 쓰이는 배 과수원. 꽃이 떨어진 꽃봉오리 아래 배 열매가 자라고 있다 


전주 배로 만드는 조선 3대 명주 이강주
현재 이강주 양조장이 위치한 곳은 전주시 덕진구 원동. 이강주 양조장 입구는 평범해 보이지만 양조장 뒤로 가면 넓고 넓은 5천평 규모의 배 과수원이 있다. 이강주의 가장 큰 원료 중 하나인 배가 재배되는 곳. 전라도 지역에서 배로 가장 유명한 곳은 나주를 생각하지만 전주 역시 배로 무척 유명하다.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재배되면서 1999년도에는 전주를 대표하는 5대 특산물에 선정 된 것이 그 이유이다. 이강주에 사용되는 원동의 배 과수원은 일조량이 좋은 능선에 있고, 주변에 햇볕을 가릴만한 요소가 전혀 없으며, 일교차가 커서 튼실하고 당도 높은 배를 생산한다. 전주의 배 주산지는 바로 이 원동과 중인동 일대에 있으며 총 180ha의 규모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전주와 황해도가 기원지라는 이강주, 지금은 전주 한양조씨 현주공파 조정형 명인이 빚어
이강주는 다양한 문헌 속에서 그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유증림의 증보산림경제 등 농업서적이 대표적이다. 이후 1925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그리고 육당 최남선이 조선의 상식을 문답식으로 정리해 놓은 조선상식문답(1946년)에도 기록이 남아있다.


이강주의 기원은 두 곳이라고 전해지는데 한 곳은 지금 만들어지는 전주, 또 하나는 황해도 봉산이다. 이강주에는 배와 생강 외에도 울금과 계피, 그리고 꿀이 들어가는데 전주는 왕에게 진상하는 울금이 유명했고, 황해도 봉산은 배로 유명했다. 이강주가 전주에 정착한 배경에는 태조 이성계와 동고동락을 같이 한 개국공신 조인옥의 영향이 컸는데, 바로 동방사현 중 한 명인 조광조를 배출한 한양조씨 가문이다. 구한말에는 그 후손이 전주(완산)의 부사로 오게 되는데, 그러면서 집에서 담그는 약소주로 이강주를 빚게 되고, 이 전주 부사의 손자가 지금의 이강주를 빚는 조정형 명인으로 이어지게 된다.

숙성중인 이강주. 이렇게 6개월을 숙성시키고, 여과 후 다시 1년 이상 숙성작업을 진행한다

전북무형문화재 지정은 1987년. 집안의 반대에도 이어진 이강주 복원사업
이강주가 세상에 다시 등장한 것은 1987년. 이 해에 이강주를 빚는 조정형 명인이 전북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강주의 복원프로젝트가 조정형 명인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무엇보다 집안의 반대가 엄청났다. 이유는 술 빚는 것은 여자가 할 일이지 남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 유교적인 집안에서 술 빚기는 여자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요리는 남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옛 생각과 비슷하다. 하지만 조정형 명인은 이러한 반대를 무릅쓰고 가사를 탕진하면서도 전국의 토속주와 가양주, 도서관 등을 직접 다니며 더욱 연구에 매진했다.


홀로 제주도로 내려가 그 동안 채집한 전통주 비법으로 수백여 가지의 술을 직접 빚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로 1989년 ‘다시 찾아야 할 우리술’을 발간했고, 1990년 이강주를 복원할 양조장을 세웠으며, 1996년에는 농식품부 식품명인 9호로 지정, 2003년에는 ‘우리 땅에서 익은 우리 술’이란 서적도 발간하였다. 이강주에만 매달린 것만 30년, 그리고 다른 술의 연구까지 포함하면 50년 이상을 전통주와 보낸 것이다.

포장을 기다리는 이강주. 25도 제품이다

증류 후 배를 넣어 6개월 숙성, 여과 후 다시 1년에서 3년 숙성
현재 이강주는 쌀과 누룩 그리고 배와 생강과 계피 그리고 꿀로 만들어진다. 잘 발효된 술덧을 증류하여 소주를 뽑아내고, 이후 각각의 발효주에 배와 생강 등의 재료를 넣고 숙성을 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발효 통에 재료를 다 넣고 발효하는 것이 아닌, 각각의 통에 원료를 따로따로 넣어가며 발효시키고 있다. 이유는 배나 생강은 늘 같은 맛일 수 없기에, 따로 관리해 가며 맛과 향을 철저하게 분석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숙성이 이루어지길 6개월. 그리고 이렇게 각각 숙성을 시킨 술은 하나의 통으로 옮겨 져 1년 이상의 숙성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상황에 따라서는 3년 이상의 장기 숙성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강주를 시연중인 조정형 명인(75)


마실 때마다 그 맛이 달라지는 이강주
현재 시판되는 이강주는 증류식 소주입장에서는 비교적 낮은 도수의 19도에서 3년 이상 숙성한 38도까지 다양한 제품이 있다. 19도의 이강주는 원래 수출용으로 만들어졌으나, 최근에는 서울 강남이나 홍대, 광화문의 전통주 레스토랑에서 여성들이 선호하는 부드러운 맛의 전통 소주로 알려져 가고 있다. 25도는 역시 19도에 비해 맛이 진하고, 역시 목넘김에서는 배의 달콤함과 생강의 향긋함, 그리고 진한 알코올 맛이 목넘김을 따뜻하게 해 준다.

재미있는 것은 첫 잔에는 배맛이 두 번째 잔에는 생강이 세 번째에는 계피가 마지막에는 꿀 맛이 느껴진다. 마실 때마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색다른 맛을 주는 것이 이강주가 가진 매력이기도 하다. 특히 얼음을 넣어 언더락으로 마시면 얼음이 그 맛을 하나씩 배겨 내 준다 조정형 명인은 말한다.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닌 맛을 음미하는 전통주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에는 가루로 만든 이강주도 개발하고 있다. 어디까지 발전할지 궁금해 지는 이강주의 모습이다.

다채로운 전통 소주를 찾아보는 여행도 매력 있어
전주의 이강주를 이번에 다녀왔지만, 한국에는 이강주를 포함해서 좋은 전통소주들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러한 양조장이 문호를 개방하며 체험, 견학, 그리고 짧은 강연까지 들을 수 있는 모습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양조장이 문호를 개방하면 실은 득보다 손해가 크다. 이유는 늘 사람이 모자란 상황에서 누군가 손님이 오면 정작 중요한 술빚기를 못하기 때문. 하지만, 이렇게 개방하는 양조장이 늘어나는 이유는 빚는 이와 소비자와의 소통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서로 알 수 있게 되고, 무엇보다 신뢰를 통한 전통주의 격이 높아진다고 관계자들을 말한다.

최근에는 스코틀랜드나 프랑스로 위스키나 코냑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전에 우리 전통 소주 양조장을 한 번씩 들러보면 더욱 가치 있지 않을까?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우리 것을 알아야 남의 것도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문헌에 기록된 전통주의 종류만 해도 수백 가지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은 10%에도 못 미친다. 전통주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지역의 농산물과 문화, 그리고 역사로 인해 우리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압축성장을 통해 술의 맛 보다는 취하는 것에 집중했던 우리 술 문화, 이강주와 같은 술로 이제는 하나씩 맛을 음미해 가는 문화로 변모해 가길 더욱 기대해 본다.


written by 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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