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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Nov 22. 2018

1000일 발효, 1000일 숙성의 오미자 브랜디 고운

경북지역에는 대한민국의 배꼽이라 불리는 장소가 있다. 백두대간이 충북을 거쳐 경북을 만나며 1,000m가 넘는 험난한 산세를 이루는 곳, 그러면서 서울과 부산 모두 두 시간 반 남짓이면 도착하는 문경이다.

특히 문경은 충주의 남한강 뱃길로도 이어진 과거 길로도 유명한데, 대표적인 곳이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관광 100선’ 중 1위인 문경새재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옛길 중 하나로 이기도 하며, 정상인 제3 관문을 제외하고, 제1, 2 관문까지는 완만한 등산로가 이어져 가족동반으로 가볍고 편한 산행도 가능하다.


아름다운 옛길과는 달리 역사를 좋아하는 마니아에게는 문경새재는 두고두고 진한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400여 년 전의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선봉대였던 코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에게 너무 쉽게 한양을 내주며 당시의 왕인 선조는 명나라 국경 코앞인 의주까지 몽환가게 된다. 이렇게 단기간에 밀렸던 이유는 천혜의 요새인 문경새재(조령)를 지키지 않고, 드넓은 평야인 충주에서 싸워서 패했다는 것. 그만큼 문경새재는 지리적, 역사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

이러한 배경을 가진 문경에는 각광받는 특산물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사과와 오미자는 문경을 대표하는 최고가 과실인데, 최근에는 이러한 지역의 농산물을 사용하여 부가가치 높은 지역 술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단맛, 신맛, 매운맛 등 5가지 맛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문경의 오미자를 사용한 와인은 호텔 소믈리에 및 식문화 연구가, 기자, 유명 연예인까지 인정하는 한국의 대표 와인 중 하나이다. 오늘은 이러한 오미자와 오미자 와인, 그리고 더불어 사과 브랜디까지 체험할 수 있는 오미나라 와이너리를 방문해본다.

오미나라의 오미자 밭. 방문객이 체험할 수 있는 오미자 밭을 운영하고 있다


문경새재에서 차로 3분 거리, 옛 주막터에 위치한 오미나라 와이너리

오미나라가 위치한 곳은 문경새재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옛 주막거리 터.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주막 터지만 멀리 죽령산(1,106m), 주흘산(1,106m) 등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자연의 정취가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오미자 와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7년. 스코틀랜드, 프랑스 샹파뉴에서 양조학을 공부하였고, 30년 동안 대한민국 대표 고급 주류를 만들던 마스터 블렌더 이종기 씨가 영남대에 양조학을 개설하면서부터이다. 이내 2010년에는 오미자를 이용한 와인 제조방법에 대한 특허를 취득, 2011년에 세계 최초의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 ‘오미로제’가 탄생을 하게 된다.


세계 최초 오미자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 ‘오미로제’. 계기는 90년대 한국 술에 대한 악평

오미자 와인을 만들게 된 계기는 이종기 씨의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의 헤리옷 와트 대학원에서 양조학을 공부하고 있었을 때, 당시 주임교수의 제안으로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자신의 나라 대표 술을 가져와 모두 다 같이 비교 시음을 했는데, 오직 그가 가져온 한국의 술만 악평이었다는 것. 지역의 문화를 품은 것도, 원료의 풍미도 없기에 악평이 붙는 것은 당연하였다. 이에 그는 한국의 지역 농산물로 문화를 품고 있는 가치 있는 술을 만들겠다고 결심, 그리고 선택된 것이 한반도가 주산지인 오미자였다. 이것은 이전에 누구도 하지 않았던 새로운 재료의 새로운 방법이었으며, 세계 최초의 오미자 와인은 이렇게 지역의 농산물로 최고의 술을 만들겠다는 소박한 꿈에서 시작되었다.

(위)오미로제 숙성 실. 와인 침전물을 병 입구로 모으기 위해 거꾸로 끼워놓고 계속 돌려야 한다. 현재는 자동화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프랑스 용어로 르뮈아주(Remuage)

<병 끝에 모아진 와인 침전물. 거꾸로 있는 병목 부분만 액화질소에 통과시켜 얼리는데, 이때 뚜껑을 열면 병 안의 압력에 의해 얼려진 침전물만 밖으로 나가게 된다. 프랑스 용어로 데고르쥐멍(Degorgement)이라 하며, 이렇게 나간 만큼 추가 보당을 진행한다. 도자쥬(Dosage)라고 한다>


1,000일 발효숙성의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 2,000일 숙성의 오미자 브랜디

막상 오미자로 와인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만들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 많았다. 이유는 오미자의 복잡한 맛과 성분. 포도는 주로 당분과 수분 위주로 되어 있어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만드는 효모가 생육하기에 좋은 조건이지만,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짠맛이 모두 있는 오미자는 효모가 살기에 불편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적인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 단순한 알코올 발효에는 2주~4주 정도의 시간을 소요하지만, 오미자로 발효해 보니 일반 과실주와는 달리 발효에만 15배 이상, 즉 1년 반이나 시간을 소요되었다.


발효된 이후에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탄산이 필요했다. 비용절감만을 위한다면 인공 탄산 주입기 등 다양한 방법은 있었으나, 그가 선택한 것은 고집스러운 정통 샴페인 발효방식이었다. 와인을 넣은 병 하나하나에 추가적인 보당(補糖)을 함으로써, 효모로 하여금 2차 발효를 끌어내고 부산물인 탄산이 자연적으로 와인 내 용해될 수 있게 만드는 방식이다. 발효 이후에는 또다시 1년 반을 숙성, 결과적으로 3년 이상, 1,000일을 발효 숙성하여 만드는 와인 ‘오미로제’가 탄생한다. 최근에는 이 1,000일을 발효 숙성한 오미로제를 증류, 또다시 1,000일을 숙성한 오미자 브랜디 ‘고운달’도 출시되었다. 결과적으로 ‘고운달’은 2,000일 이상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이다. 현재 이렇게 정통 프랑스 방식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곳은 오미나라가 국내 유일하다. 이러한 배경으로 오미나라는 2016년 농식품부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이 된다.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과 스틸 와인. 모두 시음해 볼 수 있다




오미자로 진행되는 체험, 최고가 브랜디 ‘고운달’도 시음 가능해


오미나라를 방문하면 다양한 오미자 와인 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6월에 가면 오미자 꽃을 볼 수 있고, 8월 말에서 9월에 가면 영글어진 오미자의 붉은 빛깔도 감상해 볼 수 있다. 오미나라의 경우, 아담한 오미자 터널이 있는데, 오미자 하나하나씩 보며 그 향을 맡아보는 것도 매력 있는 체험이다. 와이너리 안에 들어가면 오미자 발효 향이 코끝을 가득 채운다. 봄여름 가을에 이르는 오미자의 달라지는 모습을 사진으로도 감상이 가능하며, 발효와 숙성되는 모습, 그리고 오미자 와인을 숙성시키는 오크통의 모습도 신선한 경험이다.

2,000일 발효숙성의 오미자 브랜디 고운 달. 53도의 높은 도수를 자랑한다. 왼쪽은 백자 숙성, 오른쪽은 오크통 숙성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거꾸로 걸쳐놓은 샴페인 병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더욱 맑은 샴페인을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와인의 침전물을 아래로 집중시킨 후, 급속냉동을 통해 침전물을 얼린 후, 탄산의 압력으로 침전물을 밖으로 튕겨 나가게 하는 정통 프랑스 샴페인 방식의 모습이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코르크 마게도 지렛대를 응용한 장치로 넣어볼 수도 있고, 촬영 후에 나만의 와인을 가져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오미자 샴페인, 오미자 스틸 와인 그리고 이 와인들을 증류한 오미자 브랜디 ‘고운달’을 맛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최근에는 문경 사과를 이용한 브랜디 ‘문경바람’도 출시, 서울의 고급 레스토랑 등에서 호평을 받으며 판매되고 있다.


허기진 배를 채운다면 문경새재의 오미자 석쇠구이 삼겹살

뭐든지 배가 고프면 일이 잘 풀리지도 재미있지도 않다. 배를 채우고 가던지, 끝나고 배를 채우던지 둘 중에 하나는 확실히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문경의 오미자 고추장을 이용한 석쇠구이 삼겹살이 지역의 최고 인기 메뉴다. 직접 석쇠로 굽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붉은 빛깔에 기름이 좔좔 흐르는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입맛을 다시게 한다. 같이 나오는 더덕구이와 산채나물 역시 문경의 자연환경이 그대로 느껴질 만큼 신선한 맛이 살아있다. 오미로제와 함께 즐긴다면 문경새재 내의 문경 식당을 추천한다. 오미로제 와인을 판매도 하지만, 와이너리에서 가져와도 특별한 추가 비용 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미자 막걸리, 오미자 맥주까지 다채로운 오미자 술 투어
최근에 문경시는 오미자 술 투어로 들썩이고 있다. 오미자 와인을 비롯하여 오미자 막걸리, 오미자 맥주 등도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 특히 와인의 오미나라와, 오미자 특구인 동로면의 연결고리는 상당히 인기다. 문경새재에서 차로 40분이라는 다소 긴 거리에도 불구, 장대한 백두대간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고, 프리미엄 수제 탁주 ‘문희’를 만드는 ‘문경주조’와 오미자 IPA를 만드는 수제 맥주 ‘동네터 농원’을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미자는 아니지만, 문경에는 유서 깊은 전통주 역시 만들어지고 있다. 황희 정승의 후손인 장수 황 씨 가문에서 만들어지는 문경 호산춘이다. 서울이던 부산이면 아침 7시쯤 출발해서 부지런히 움직이면 하루 만에 다 들려볼 수도 있다. 9월 9일(금)부터 18일까지는 문경새재 야외공연장에서 오미자 축제도 진행한다. 생오미자를 비롯하여, 오미자 청, 오미자차, 그리고 오미자 와인, 오미자 막걸리, 오미자 맥주까지도 모두 참여하고 각종 공연에 체험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농산물이 주가 되는 술 문화를 기대하며

최근에 음주를 조장하는 방송이 많아져 비판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에는 지역 술이나 전통주 역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로컬 문화를 담고 있는 한국의 술 문화의 본질과는 달리 근대에 들어와서 싸게, 그리고 많이, 그리고 강압적으로 취하게끔 하는 문화가 너무도 팽배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원료가 주는 풍미를 느끼지도, 발효와 숙성이라는 기다림의 모습도 찾을 수도, 찾게끔 만들지도 않았던 것이 이제까지의 술 문화였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의 농산물이 본질이 되고, 기다림의 미학이 있는 지역 술 문화를 찾아보는 여행은 어떨까? 괜히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필요도 없다. 본래 우리에게도 이런 문화가 있었고, 그 문화가 다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written by 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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