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함께 한 강화도 역사 여행

술 이야기 아닌 번외 스토리

by 명욱


며칠 전 아이에게 급한 부탁을 하나 받았습니다. 방학숙제로 브이로그 만들기가 있는데,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어딘가에 여행을 가서 그곳을 찍는 숙제인데, 방학 내내 학원이다 뭐다 하면서 실은 시간을 전혀 내지 못했죠. 그래서, 급고민 끝에 가깝기도 하면서 관광지이기도 하고, 바다가 있는 곳, 저희 집에서 60km 정도 떨어진 강화도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테마는 '거꾸로 가는 강화도 역사 투어'로 정했죠. 역사적 사건을 옛 것부터가 아닌 최근 것부터 찾아가는 형식을 빌렸죠. 뭐 결국은 놀러 가는 것이지만요.ㅎㅎ


지금의 강화도는 간척지로 완성된 섬

나름 아이에게 아는 척을 하기 위해 강화도를 조금 공부해보니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지금의 강화도와 1000년 전의 강화도는 지형이 매우 달랐다는 것입니다. 바로 고려 시대부터 간척 사업을 진행했다는 것이죠. 지도에서 보면 평야가 나오는데 대부분 간척 사업으로 생긴 지형이라고 합니다. 마니산조차도 다른 섬이었는데, 조선 숙종 때 간척사업을 진행, 지금과 같이 이어졌다고 하네요. 그래서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입니다.

강화군 관광지도. 산악 지대 이외의 평야 지역은 대부분 간척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출처 강화군청

그림을 보면 '녹색의 평지'는 간척 사업으로 생긴 곳으로 이해하시면 대략 맞을 듯합니다. 지금의 인구 구성은 한국 전쟁 당시 황해도 분들이 월남을 많이 해서 황해도 사투리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하네요. 강화 대교에서 북한이 보일 정도로 북한과 가까운 곳이기도 합니다.


방송에서도 워낙 많이 나와서 잘 알고 계시겠지만, 강화도는 천연 요새이기도 합니다. 한강으로 들어오는 길목도 아주 좁고, 그래서 물살이 정말 셉니다. 소용돌이도 많이 치고요. 김포와 마주한 강화대교와 초지대교가 있는 바로 그 바다죠. 마치 명량대첩의 격전지인 울돌목(해남과 진도 사이)과 같은 회오리가 치는 바다였죠.


갯벌이 많아 배를 대기가 어려웠고, 결국 항구가 몇 개 없어서 그곳만 지키면 되었다고 합니다. 산과 절벽이 많아 적의 움직임을 간파하기도 좋았죠. 물론 적들은 들어오기 어려웠고요. 그래서 외세의 침략이 많았던 곳이며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강화도 조약) 등이 여기서 일어났죠. 그래서 딸내미와 아들내미가 함께 하는 '거꾸로 가는 강화도 역사 투어는 이 신미양요 격전지부터 가기로 했습니다.


이번에 방문한 강화도 역사 코스는 아래와 같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시간 반대 순서로 방문해 봤죠.

꼬막한상=> 광성보(신미양요 격전지)=>동막해수욕장(밤바다)=> 고려궁지(고려 시대 왕궁터 및 병인양요 외규장각)=>전등사(병인양요 격전지)=>마니산=>해변도로 달리기=>조양방직=>강화대교=>집


금강산도 식후경. ㅎ 식당은 광성보와 가까운 '꼬막한상'에서 시작했습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괜찮았습니다. ^^


광성보 입구.
신미양요의 격전지, 슬픈 역사가 있는 광성보


tvN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시작인 곳이기도 합니다. 원래는 고려 무신정권 시대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진 요새죠. 북벌로 유명한 조선 효종 때 재건했고요, 유명한 곳은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등이 유명합니다. 돈대(墩臺)는 성곽 시절의 하나로 해안에 있는 요새와 같은 뜻이죠. 용두돈대는 형태가 용의 머리와 같다고 한 곳인데, 원래는 사두돈대였다고 하네요. 뱀 머리와 닮았다는 뜻인데, 제일 앞쪽은 정말 머리가 넓은 뱀 같습니다.

용두돈대. MBC방송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도 나왔죠. 머리가 뱀처럼 생겼는데, 용으로 이름을 바꿔서 용두돈대가 되었습니다.
용두돈대로 가는 길입니다. 이쪽에서 포격전이 일어났다고 하죠.

한강으로 들어가는 해협과 바로 인접한 곳에 있어서 이쪽에서 포격전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나라 대표의 최대 사거리는 300~800m. 미군의 대표 사거리는 900~1,200미터였으니 미군이 함포 사격으로 피해를 입을 일은 없었던 듯합니다. ㅠ 광성보 입구에서 걸어서 500m 전후가 되는 듯한데, 절벽을 다니는 것이라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모두 있습니다. 날이 더우니 걷기에 좀 땀 좀 났습니다.

용두돈대 아래는 이렇게 절벽이죠. 바다가 정말 잘 보이는 위치에 있습니다.
광성보에서 가장 슬픈 곳. 신미양요에서 백병전이 일어났던 손돌목 돈대


신미양요에서 가장 슬픈 곳은 손돌목 돈대입니다. 손돌목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뱃사공 이름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바로 억울하게 죽은 그의 넋을 기리는 것이죠. 하나는 고려 때 몽고의 난을 피해 이곳에 도착한 왕이 바다를 건너고자 하는데, 바람이 세니 쉬웠다 건의했다가 모반자로 보고 그를 처형하니 광풍이 불어 바다를 건널 수 없었다는 것, 이후 왕이 후회하여 제사를 지내니 바람이 잔잔해졌다고 하고요,


또 하나는 왕이 탄 배를 급류 쪽으로 몰자 위협을 느낀 왕이 그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 그러자 손돌이 자기가 죽은 뒤 바다에 바가지를 띠워 그 바가지가 가는 대로 배를 몰면 안전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정말 손돌을 죽인 뒤 그의 말대로 했더니 배가 무사히 바다를 건넜다고 합니다. 왕이 크게 뉘우쳐 손돌의 무덤을 만들고 크게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음력 10월 20일경에 겨울의 북서풍이 불면 그 바람을 손돌풍(孫乭風)이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광성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손돌목 돈대. 이곳에서 미군과의 백병전이 일어났다고 한다

여하튼, 이 손돌목돈대에서 미스터 선샤인에서도 등장하는 미군과의 백병전이 있었던 곳이죠. 이 광성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요새입니다. 이 곳을 점령하면 광성보를 점령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죠. 당시 여재연 장군 휘하 군사 500명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결국은 어재연 장군, 그의 동생 어재순을 비롯 대부분 전사 또는 자결을 하게 됩니다. ㅠ 그리고 그 유명한 대장의 깃발인 수자기를 빼앗기게 되죠. 이 수자기는 100년을 넘어 2007년 미국과의 대여협정을 통해 돌아오게 되죠. 지금은 강화역사박물관에 있다고 합니다.


<강화도를 지키던 대표와 소포. 대표는 사거리 800m 전후, 소포는 300m 전후. 다만 대표는 폭약이 터지는 구조가 아니라서 파괴력이 약했다. 미군의 대표 사거리는 900m~1.2km. 이길 수가 없는 전투였다.>


처참했던 신미양요 당시의 시신.
미군에게 빼았긴 장군의 깃발인 수자기. 2007년 다시 돌아온다. 빼앗긴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 100년이 지나 2007년 미국과의 대여협정을 통해 돌아오게 된다.

참고로 이 광성보에는 당시 죽임을 당한 병사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너무 시신들이 훼손되어 신원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7개의 무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참 뭔가 엄숙해지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주변에는 해안이라서 볼거리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동막 해수욕장 등을 언급할 수 있는데, 저는 밤에 갔는데, 밤바다가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프랑스에 빼앗겼던 외규장각 의괘가 있는 '고려궁지'
고려궁지에 있는 외규장각. 외규장각은 왕실의 외부 왕립도서관이라고 볼 수 있다.

아시다시피 강화도는 30년 넘게 고려의 수도였죠.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고자 강화도에 무신정권 시절에 수도로 마련한 것인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금 터가 남아있습니다. 규모는 작은데 광아의 명칭을 개경과 같이 하고, 뒷 산의 이름도 송악이라고 칭했다고 합니다. 39년 간 고려 왕궁으로 사용했다가, 1270년, 몽골과 화친 후, 고려왕이 환도하자, 궁궐과 성곽을 모두 파괴하였습니다. 지금의 공간은 당시 공간의 일부이죠.



조선시대에는 행궁, 유수부 건물과 함께 민가까지 들어섰고요, 인조 9년에는 행궁을 건립, 1782년 정조 시절에는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외규장각을 건립했죠. 하지만, 신미양요 5년 전에 있었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외규장각 안에 있던 서적과 의궤를 약탈해갔죠. 지금은 다시 돌아와 있습니다.


이 주변이 강화도에서 번화한 곳이라고 볼 수 있어요. 레트로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강화도 관광 1번지 카페 '조양방직'이 있고, 또 운치 있게 강화도 성벽도 복원되어 있습니다. 강화도령으로 불리던 철종이 19세까지 살았다는 용흥궁도 있었고(재위에 오른 후 보수 및 단장), 김구가 오갔던 고택인 '김구 고택'이라고도 있습니다.

내가 본 대한민국 비주얼 No1 사찰 '전등사'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라고 불리는 곳이죠. 서기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 시절 아도화상이라는 승려가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17세기 초 광해군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원래 이름은 진종사인데, 충렬왕의 왕비였던 정화궁주(왕의 제2비)가 절에 대장경과 함께 옥으로 된 법등을 기증하면서 전등사(傳燈寺)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참고로 정화궁주는 원래 제1 비였는데, 원나라의 제국대장공주를 왕비로 맞이하면서 제2비로 밀려났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슬픈 시기를 많이 보냈다고 합니다.


걷는 길 조차 아름다웠던 전등사. 정족산 안에 있다.


병인양조의 격전지 정족산


이 전등사가 있는 곳이 바로 정족산이고, 이곳에 잇는 산성이 바로 정족산성이죠. 바로 병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입니다. 정족산성은 원래 이름은 삼랑성으로 단군의 세 아들이 정족산에 쌓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요,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 600여 명을 조선에 파병, 김포의 문수산성에서 전투를 벌이고, 이후 강화도에 상륙했다죠. 당시 지휘했던 인물은 양헌수라는 장군인데, 사거리가 짧은 조선군의 조총을 알고, 프랑스 군이 성에 가까이 오면 쏘게 하는 근접사격을 도입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 작전은 성공을 했고, 전사가 6명에 부상자 35명이 생기는 피해를 입고, 강화도에서 철군했다고 하죠.


여하튼, 이 전등사는 정족산 속에 폭 담겨 있는 모습입니다. 거의 정상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는데(1차선이라서 반대편 차량이 오면 골치 아파집니다 ㅎ) 그곳에서 돌구멍을 지나 천천히 내려가면 이 전등사가 보이죠. 나무와 꽃도 정말 이쁘고 600년이 넘은 거대한 은행나무도 있습니다. 사찰 스타일의 카페도 있으며, 조선 시대에 다시 재건한 대웅전도 있는데,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평지에 있는 것이 아닌, 오밀조밀한 곳에 건물들이 있다 보니 길과 건물 모두가 자연과 일치된, 자연과 하나가 된 사찰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연을 지배하지 않는, 인간과 자연이 조화된 모습이랄까요?


전등사 대웅전. 조선 광해군 시절에 다시 세워진 건물로 충분히 세월의 멋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또 은행이 나지 않는 600년 수령을 가진 거대한 은행나무가 유명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탄압을 많이 받던 중, 조정에 은행알을 계속 바쳤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은행알을 양을 더 크게 늘리겠다고 하자, 전등사는 난리가 났었다고 해요.

전등사 내부에는 이렇게 운치있게 즐길 수 있는 찻집도 있습니다.

그런 끝에 승려들은 단을 쌓고 3일 기도를 했는데, 이것이 은행알을 더 많이 맺어달라는 기도가 아닌, 그 반대였습니다. 하나도 열리지 않게 기도한 것이죠. ㅎ 결국 세찬 비바람과 천둥소리가 나고, 은행나무에서 은행은 다 떨어지고, 더 이상 은행도 맺기 않으니 관과의 탄압도 사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도했던 승려들은 사라지고, 그래서 오늘날 은행을 맺지 않은 은행나무들은 사라진 노승 나무와 동승 나무로 불리고 있지요. 이 주변도 갈 곳이 참 많은데, 저는 일단 여기서 강화도 음식은 젓국갈비(새우젓으로 맛을 낸 돼지갈비 전골)와 돼지갈비를 함께 즐겼습니다.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마니산

저는 중 2 때 보이스카우트 활동으로 이 강화도를 왔고, 당시 한 여름에 마니산(해발 467m)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바로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을 보기 위함이었는데.... 정말 오르고 후회했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만, 당시에 이 마니산 등반은 그늘 적고, 오직 계단(918계단)만 오르는 정말 힘들고 재미없는 코스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번에는 등반을 하지 않았습니다. 입구만 들어갔죠. ㅎ 다만 뷰는 정말 아름다웠던 기억은 있습니다.


강화도 마니산 정상에 있는 참성단. 출처 강화군청

원래는 고가도라고 불리는 다른 섬이었는데, 앞에서 설명했 듯이 1706년 숙종의 간척 사업으로 지금의 본토와 하나가 되죠. 마니산은 화강암 바위들이 많고 기암괴석들이 산꼭대기를 향해 치솟아 있어 마치 하늘로 통하는 관문인 듯하다고 전문가들은 또 이야기를 합니다.


마니산에 제단을 만든 것은 한반도의 배꼽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하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기를 폭포수처럼 뿜어낸다는 참성단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쌓은 하단은 하늘을 상징, 네모 반듯하게 올린 상당은 땅을 나타낸다고 하고요.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신동국여지승람에는 단군왕검이 참성단을 마니산에 쌓았다는 기록이 있고요.

이날의 점심 식사는 강화도의 식사로 즐긴 젓국갈비. 새우젓으로 맛을 낸 맑은 돼지고기 전골입니다. 강화도 대표 유명음식이죠.

아쉬운 것은 강화도 고인돌 유적을 가보지 못했다는 것이었어요. 한 5곳은 있는 듯한데, 역사의 시작을 보기 위해서는 고인돌을 봤어야 했는데 말이죠. 1박 2일이 짧긴 하더라고요.


다음에 한 번 더 가볼 예정이고요, 그때는 고인돌과 강화역사박물관, 전쟁 박물관, 철종이 살았다는 용흥군, 김구 고택, 고려 최고의 애주가였던 이규보의 묘, 강화 평화전망대 등도 가보려고 합니다.

동막 해수욕장. 밤바다가 참 좋았습니다. 특히 왼쪽의 달빛과 샛별이 매력적이더군요.


음식으로는 점심은 꼬막비빔밥(꼬막한상. 광성보 차로 10분), 저녁은 바베큐, 아침은 호텔 식사=>점심은 젓국갈비(원두막 가든, 전등사 주변) 동막해수욕장은 밤에 달빛 보이는 밤바다가 주는 운치가 정말 매력있었고요.


고려궁지를 가실 때에는 조양방직 바로 옆이니 같이 용흥궁, 김구고택, 고려궁지 함께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강화도 최고 관광지가 된 카페 조양방직에서는 이렇게 놀아봤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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