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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Mar 24. 2022

일본 사케 세계문화유산 등재 전략 및 우리 막걸리 대응

2024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한 일본의 사케

저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입니다. 길게 보면 1995년부터 2009년까지 15년을, 잠시 다른 해외에서 거주한 것을 포함하면 적어도 13년은 살았죠. 21살부터 36살까지 살았던 것이니 어떻게 보면 중요한 2030 시대를 일본에서 보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마냥 좋아했던 과거

그런 와중에 일본 문화를 참 좋아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지역마다 음식과 술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동네 술, 우리 동네 음식, 그리고 그것과 연결된 역사와 문화 이러한 것들이 하나가 되어 고부가가치를 이루기도 했죠. 그래서 일본은 국내 여행이 무척 잘 발달된 곳입니다. 단순히 인프라뿐만이 아닌 국내 여행조차 고급스러운 느낌을 가진 것이죠.


한국의 명소를 아직 덜 가본 제 입장에서는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여행지로는 '일본이 최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한국은 뭔가 다 비슷하고 깨끗하지도 않고, 음식도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가졌었죠.


일본 사케가 최고라고 생각했던 사람

창피한 이야기지만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일본의 사케(SAKE 일본식 청주)가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국 막걸리는 일본 사케를 따라오려면 100년이 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사케를 좋아해서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까지 따게 되죠.


하지만 이러한 편견을 없애 준 것이 바로 '막걸리'였습니다. 우연히 접한 전국의 다양한 막걸리를 접해보고, '이렇게 맛과 향이 다른 막걸리는 나는 왜 몰랐지?'라는 부분이었죠.


사케는 사케대로 좋은 것이고, 막걸리는 막걸리대로 좋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괜한 쓸데없는 문화 사대주의라는 착각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막걸리 및 전통주 콘텐츠 사업을 담당하게 된 저는 400 종류의 막걸리를 마셔보며, 그것을 DB 화하여 포털사이트 지식백과에 콘텐츠로써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국의 다양한 막걸리 및 전통주를 비롯, 우리 농산물로 만든 다양한 술을 소개하며, 그 속에서의 사회적 가치, 역사적 가치, 그리고 농업적 가치, 문화적 가치, 그리고 인간적 가치를 발견하여 이렇게 다양한 활동도 하게 된 것이죠. 오히려 다양성을 본다면 우리 전통주가 훨씬 더 풍부합니다.


그러면서 일본 주류 동향 리포트란 것을 발간하면서 일본의 다양한 주류 시장의 움직임 및 트렌드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글은 이러한 맥락에 정리를 해 봤습니다.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하는 일본의 사케


지난 15일, 양재동 aT센터에서는 색다른 주제의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주제는 막걸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전략. 이동필 농림축산식품주 전 장관 등이 막걸리의 가치와 중요성을 언급하였고, 각계의 전문가가 등재를 위한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였죠. 여기에 '막걸리 빚기'는 이미 작년 4월 국가무형문화재로 선정, 이미 세계 무형문화유산 등재에 사전 포석을 마쳤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일본의 전통 누룩인 고우지를 만드는 모습. 고두밥을 식히고 균 배양 작업을 하는 수작업이다. 사진 명욱


이미 10년 전에 나라의 술  '국주(國酒)'로 지정한 일본

일본의 사케는 일본은 10년 전에 사케 및 쇼츄(焼酎・しょうちゅう)를 나라의 술이라는 국주(國酒)로 지정, 전략적으로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작년 10월  일본식 누룩균인 코우지(麹こうじ)를 사용한 전통 사케 제조 방법이 국가 무형문화재에 등록한 것이죠. 그리고 올해 3월에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신청할 예정입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은 우리보다 한 발 빠른 셈입니다. 우리는 빨라봐야 내년에 신청하게 되니까요.


줄어드는 일본 사케 양조장 개수
지방 경제를 살려라. 그 핵심 속에 있는 일본 양조장

일본이 이렇게 자국의 술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목적은 간단합니다. 바로 대도시가 아닌 지방 경제를 살리기 위함입니다. 현재 일본에 등록된 일본식 청주 양조장은 약 1400곳, 그리고 약 800곳은 증류식 소주(전통 소주) 양조장입니다. 이 양조장 대부분이 대도시가 아닌 지방 소도시에 위치, 지방의 경제 및 문화를 이끄는 중요한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출로 거의 20년 연속 상승 중인 일본 사케


단순히 술을 만드는 곳이 아닌 다양한 역사, 문화, 농업, 다양한 지역의 경제는 물론 공익적인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지방의 관광 산업 촉진 및 경제 활성화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죠. 프랑스의 와이너리, 영국의 스카치위스키 양조장처럼 다양한 문화관광산업으로 변모해 가고 있습니다.


일본 국내 사케 시장. 줄어드는 일반 사케, 늘어나는 프리미엄 사케 시장


줄어드는 일본 국내 사케 소비, 프리미엄 제품과 수출은 상승 중

다만, 이러한 문화산업은 커지고 있지만 양조장의 개수 및 소비 자체는 현저하게 줄고 있습니다. 1970년 3,500 곳이었던 일본 청주 양조장은 지금은 1,400여 곳으로 줄었고, 소비 역시 매년 줄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상승하는 품목이 있는데 특정 명칭 주(特定名称酒)라고 불리는 프리미엄급 제품입니다. 쌀의 품종, 도정, 숙성, 발효방식에 따라 차별화를 이뤘고, 이러한 것들로 마니아층을 생산해 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프리미엄급 제품들은 거의 20년 연속으로 수출성장을 이뤄내고 있죠. 다매박리 전략에서 고부가가치 마케팅으로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프리미엄 제품을 찾는 층은 점점 두터워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프리미엄 사케 생산지로 유명한 니가타에서 열리는 사케노진(酒の陣)이라는 축제를 보면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전국 각지의 사케 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약 20만 명이 수십만 원의 교통비를 내고도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팬층을 두텁게 하고, 꾸준한 관리를 해 나가는 것이 일본 프리미엄 사케들의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와쇼크. 출처 일본 문화재청


일본은 와쇼크가 2013년 세계 문화유산 등재가 된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에 주요 핵심 스토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자연에 대한 존중

2. 다양하고 신선한 식재료와 그 맛에 대한 존중

3.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하는 영양 밸런스

4. 자연의 아름다움과 계절의 변화를 표현

5. 정월 등의 전통적 문화행사와의 밀접한 관계


그리고 이번 사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콘셉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일본 사케의 콘셉트


1. 일본인의 세심함, 정중함, 그리고 기다림이라는 인내를 담은 문화

2. 일본의 전통술을 둘러싼 문화 및 제조 기술

3. 인권, 공동체와의 관계, 지속 가능한 개발 등에 대한 대응

4. 상업화에 대한 유네스코의 경계

5. 비즈니스 및 시장 확대는 제도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


일본식 탁주, 청주, 소주, 그리고 미린까지 품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그리고 이러한 콘셉트를 모두 품은 것이 '일본식 누룩을 사용한 술빚기(伝統的酒造り)'입니다. 일본의 전통술에는 모든 공통분모로 들어가는 일본식 누룩인 고우지를 사용한 제조 방법이죠. 이렇게 되면 일본식 막걸리인 니고리슈(濁り酒), 도부로크(どぶろく), 청주, 소주 그리고 미린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모든 술을 망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일본 문화부에서 등재 개요를 발표했는데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명칭: 전통적 사케 빚기


일본의 전통적인 코우지를 사용한 술 제조 기술


내용: 전통적인 코우지균을 사용

근대과학이 성립, 보급하기 이전부터 토우지(일본의 전통적 사케 제조 장인)등의 경험의 축적에 의해 찾아내어 수작업의 기술로 쌓아 올린 술빚기 기술. 일본 각지에서 그 토지와 기후 및 풍토에 맞게 다양한 모습으로 전래되고 있음. 의식 및 제사 등 지금의 일본인의 생활에 여러 방면에서 불가결한 것으로 일본의 여러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술을 만드는 근거가 되는 기술임


분야 : 전통공예기술, 사회적 관습, 의식 및 행사, 자연 및 만물에 관한 지식 및 습관


구성 : 국가의 등록 무형문화재


제안요지

500년 전 원형이 확립, 발전하면서 전해지는 일본의 전통적 술 빚기는 다양한 곡물을 원료로 하는 흩임 코우지의 사용이라는 공통의 색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본 각지에 있어서 다양한 기후풍토에 맞게 발전해 왔다.


전통적 술 빚기는 쌀 및 깨끗한 물을 많이 사용하고 자연 및 기후에 관련된 지식, 경험이 깊게 연결되어 이어왔다. (중략)


이러한 술을 만드는 프로세스는 토우지(일본의 전통적 사케 제조 장인) 및 양조장 장인뿐만이 아닌 지역사회 및 관련된 산업과 연관된 사람들에게 유지되어 왔으며, 이러한 기술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재 등록으로 진행되는 것은 술 빚기를 통한 다층적인 커뮤니티 내의 끈끈함을 높임과 동시에 세계 각지의 술빚기에 관련된 기술과 교류, 대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이 기대되며, 무형문화유산 보호, 전승의 사례로 국제사회에 있어서의 무형문화유산의 보호에 크게 공헌을 한다.


아직 정체성이 모호한 막걸리

사케는 이렇게 정리가 되었는데, 우리 막걸리에 대한 정리가 아직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일본의 모든 전통술이 적용이 되지만 '막걸리 빚기'라는 하나의 주종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한국의 청주, 약주, 전통 소주는 이번 무형문화유산 등재와 관련이 없어 보일 수 있다는 것이죠. 여기에 잘못하면 막걸리라는 단순한 술 하나만 돋보이게 되면 상업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자세히 보면 한국의 모든 술은 막걸리에서 나오게 됩니다. 맑은 부분만 분리해서 잘 숙성 후에 마시면 좋은 약주, 청주가 될 수 있고, 또 증류를 하면 맛 좋은 전통 소주가 나오게 된다. 결국 막걸리는 한국 모든 술의 뿌리라는 것이죠. 또 어릴 적 어머님, 또는 할머님이 집에서 술을 빚던 이 가양주 문화를 절대로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국인의 혼이 담긴 술이죠.


한국 술 그 자체의 격이 오르길 기대하며

이러한 것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한국의 술 그 자체의 격이 오르길 기대해 봅니다.  한나라의 전통술은 단순히 먹고 마시고 취하는 것이 아닌 문화의 격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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