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욱 Mar 02. 2019

우리는 원래 어떤 잔에 술을 마셨을까?


다양했던 우리의 술잔

애주가들의 표현 중에 술맛은 잔 맛이라는 표현이 있다. 어떤 잔에 마시느냐에 따라 분위기와 술맛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이야기를 증명하듯, 서양에서는 술잔 문화가 무척 많이 발달했다. 최대한 얇고 가볍게, 그리고 색과 향을 최대한 즐길 수 있게 만든 와인잔부터, 튤립 모양으로 향을 담아주는 싱글몰트 위스키, 중세 시대의 흑사병을 예방하고자 만든 뚜껑 달린 맥주잔까지 주종은 물론 나라별, 회사마다 다른 잔을 개발 및 만들어 왔다. 그것에 비해 현대의 우리 술 문화는 막걸리는 사발, 소주는 투명색 소주잔에 획일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술잔은 원래 이렇게 단순하고 획일적이었을까? 


실은 계절과 풍류, 그리고 사랑, 그리고 과음의 경고까지 담았던 것이 한국의 술잔 문화였다. 수능에도 자주 등장하는 술을 의인화시킨 최초의 가전체 소설 국선생전을 집필한 이규보는 여름에 특별한 방법으로 술을 마셨다. 바로 연꽃잎에 술을 담고, 연대로 빨아 마신 것이다. 연꽃잎은 항균효과가 있어서 밥을 넣고 찌기도 하는데, 술도 이러한 방식으로 빚기도 했는데, 잔에 따라 마시지 않고, 바로 연대로 마신 것이다. 

<연꽃잎의 표면은 실은 아주 작은 크기의 돌기로 덮여 있고, 이 돌기들은 나노 크기의 발수성 코팅제로 코팅되어 있다. 연꽃잎 위의 물방울은 돌기 위에 떠 있기 때문에 표면에 접촉하는 면적이 크게 줄어들어 표면장력이 떨어진다. 한마디로 물방울이 떠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연꽃잎은 물에 젖지 않고 아무리 이물질이 묻어도 비 한번 오면 다 씻겨 내려간다. 그래서 여기에 술을 넣고 마신 것이다 >


이렇게 마시는 방법을 가지고 푸르를 벽(碧), 대통 통(筒) 하여, 푸른 대롱으로 마신다는 벽통음(碧筒飮)이라고 불렀다. 고려시대의 이규보뿐만이 아닌, 다산 정약용도 이 방식을 애용했다. 그는 다산시문집에 연대로 술을 마시는 것은  하삭음(河朔飮)이라고 불렀는데, 피서를 하기 위해 즐기는 술 문화라는 의미다. 


혼인식에는 더욱 특별한 잔이 등장을 했다. 표주박 잔이다. 일반적으로 표주박 잔이라고 하면 그저 물을 뜨거나 막걸리를 마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혼인식에는 달랐다. 이 표주박을 두 조각으로 깬 다음, 그 깨진 조각에 술을 넣고 신랑, 신부가 나눠 마셨다. 즉, 세상에 합쳐서 하나가 될 수 있는 잔은 이 표주박밖에 없는 것이며, 서로 그만큼 사랑하고 아끼라는 의미로 귀결된다. 이러한 문화는 현대의 연인들이 쪼개진 하트 모양의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문화와 일치한다. 계급이 높은 양반층 또는 궁중에서는 상징성을 담아 은으로 된 표주박 잔을 사용하기도 했다. 연인끼리 사랑을 고백하는 경우에는 복종의 의미로 새로 산 고무신에 술을 넣어 마시기도 했는데,  꽃신에 따라 마신다고 하여 화혜배(花鞋杯)라고도 불렀다. 이것이 발전되어 신발 모양의 토기도 만들어졌다. 

<은제 표주박 잔. 혼신식에 등장했던 표주박 잔. 궁중이나 상위 사대부층에서는 이렇게 표주박 잔을 은으로 제작해 사용했다. 국립 고궁박물관 소장>


과음을 경계하는 잔도 있었다. 경계할 경(戒), 가득 찰 영(盈) 하여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한다는 계영배(戒盈杯)다. 이 계영배의 특징은 술을 가득 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적당히 7부 정도만 넣어야 한다. 많이 담으면 닌 술이 세어버리게 구조를 짜 놨다. 이것은 사이펀의 원리라고 하여 대기압과 수압의 차이를 이용, 기울이거나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 있는 액체를 위로 끌어올려 더 낮은 곳으로 옮기는 원리다. 이 방식은 단순히 계영배뿐만이 아닌, 싱크대, 커피 추출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쓰이고 있다. 계영배는 원래 고대 중국에서 시작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실학자이자 과학자인 하백원과 도공 우명옥이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계영배는 단순히 술을 가득참을 경계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욕심이 너무 과하면 안 된다는 과유불급의 의미가 가장 큰다고 볼 수 있다. 

<경계할 경, 찰 영, 가득 참을 경계한다는 계영배. 수압 차이를 이용, 가득 차면 수분이 아래로 빠진다>


이것 외에도 동물의 뿔로 만든 뿔잔, 말을 탄 채로 마시는 마상배, 은잔, 옥술잔 등 다양한 잔이 있었다. 아쉽게도 현대에 우리의 전통주를 담을 이러한 잔 문화는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잃었던 문화는 찾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 외세에 문화의 정체성이 흔들렸다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단순히 전통문화이기에 찾아야 한다는 국수주의적 의미가 아니다. 우리 것을 즐길 수 있는데 몰라서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최대한 숙취를 줄이기 위해서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