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은 양력으로, 우리는 음력으로 날짜를 본 이유

늦었던 2026년 설날을 생각하며

by 명욱


벌써 설날이 지났다. 그런데 이번 설은 유독 늦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작년인 2025년 설날이 양력 1월 29일이었던 것에 비하면, 올해 2026년은 2월 17일에야 설을 맞이했으니 무려 20일 가까이 차이가 난다. 매년 음력으로 1월 1일을 쇠면서 날짜를 찾아봐야 하는 번거로움에 투덜대기도 하지만, 사실 이 불규칙해 보이는 날짜의 이면에는 해와 달의 발걸음을 맞추려는 인류의 고도화된 지혜가 숨어 있다.


음력의 매력

인류가 처음으로 시간을 측정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태양이 아니라 달이었다. 태양은 매일 뜨고 지지만 그 형태가 변하지 않아 오늘이 며칠인지 직관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반면 달은 매일 밤 자신의 몸을 정교하게 깎아내며 밤하늘에 '오늘의 날짜'를 숫자가 아닌 형상으로 써 내려간다.


unnamed (1).jpg 우리는 달의 모양을 보고 날짜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1년 12달의 달은 하늘의 달을 뜻하는 것이었다.


눈썹 같은 초승달이 차올라 쟁반 같은 보름달이 되고, 다시 사그라져 그믐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9.53일이다. 여기서 음력의 가장 큰 매력이 드러난다. 달의 모양을 보는 것 자체가 곧 날짜를 읽는 행위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밤하늘 정중앙에 완벽한 원형의 보름달이 떴다면 그것은 곧 음력 15일, 즉 한 달의 정중앙에 도달했음을 의미했다. "달이 꽉 찼으니 오늘이 15일이구나"라는 자각은 별도의 도구 없이도 온 공동체가 시간을 공유하게 해주었다. 이처럼 한 달이라는 기간은 말 그대로 '달의 모양 변화'가 완성되는 주기였으며, 동양 문명권에서 달은 단순한 야간 조명이 아니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하늘의 장부'였다.


왜 음력은 생존이었나

음력은 단순히 날짜를 세는 도구를 넘어 지구의 물리적 변화를 읽어내는 열쇠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조수 간만의 차다. 달의 인력으로 발생하는 이 현상은 특히 어민들에게 황금어장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침서였다.


조수 간만의 차이가 크면 바닷물의 흐름인 '조류'가 강력해진다. 이 강한 물살은 바다 저층에 가라앉아 있던 영양염류(플랑크톤의 먹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이른바 '용승 현상(Upwelling)'을 일으킨다. 영양분이 풍부해지면 플랑크톤이 모이고, 이를 먹으려는 작은 물고기와 다시 그들을 사냥하는 큰 물고기들이 연쇄적으로 몰려들며 어획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사리(조석 차가 큰 시기) 때 바다가 뒤집혀야 고기가 잘 잡힌다"라고 말한 것은 과학적 근거가 충분한 경험론이었다.


대부도.jpg 대부도 탄도항. 조수 간만의 차이로 물길이 열리고 닫힌다. 사진 명욱


또한, 썰물 때 물이 빠지는 길목을 지키는 '어살'이나 '죽방렴' 같은 전통 어구는 달이 만든 조류의 힘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수위가 낮아질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거둬들이기만 하면 되는 이 방식은, 달의 주기를 정확히 읽지 못하면 불가능한 경제 활동이었다. 즉, 동양의 해안가 사람들에게 음력은 단순히 '날짜'가 아니라 '언제 배를 띄워야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생존 도구였다.


음력이 결정한 것은 비단 어획량뿐만이 아니었다. 엔진이 없던 시절, 바닷길을 오가는 배들에게 음력은 절대적인 ‘운항 시간표’이자 '내비게이션'이었다. 특히 우리 서해안처럼 조수 간만의 차가 극심한 곳에서 물때를 모르는 항해는 곧 조난이나 물류의 중단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수많은 달의 위상 중 뱃사람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린 날은 언제였을까? 답은 명확하다. 밤하늘에 가장 크고 둥근 보름달(음력 15일)이 뜨는 시기다.


해안가에서 보름달을 최고의 축복으로 여긴 이유는 단순히 달빛이 밝아서가 아니다. 보름은 태양과 달, 지구가 일직선상에 놓이며 인력이 극대화되는 ‘사리’의 정점이기 때문이다. 이때 바다는 항해자들에게 두 가지 거대한 기회를 선사한다.


첫째는 물류를 완성하는 ‘수심의 확보’다. 평소 수심이 얕아 대형 화물선이 접근조차 못 했던 육지 깊숙한 포구나 강 하구까지, 사리 때의 높은 밀물은 무거운 쌀배와 소금배를 안전하게 인도해주었다. 아파트 3~4층 높이(약 9m)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은 수백 톤의 화물을 실은 배들이 포구 문턱까지 깊숙이 닻을 내릴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즉, 보름달이 뜨는 시기는 포구에 상인이 모이고 물자가 쏟아져 들어오는 '물류의 대목'이었다.


둘째는 거대한 ‘천연 엔진’으로서의 조류다. 사리 때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양이 많은 만큼 물살(조류) 또한 가장 빠르고 강력하다. 뱃사람들은 이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에 배를 얹었다. 조류의 방향에 맞춰 돛을 올리면 배는 인위적인 힘을 들이지 않고도 평소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보름달이 뜨는 며칠 동안 바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천연 고속도로'가 열리는 셈이었다.


반면, 인력이 분산되어 물살이 잔잔해지는 반달(조금, 음력 8일과 23일경) 시기에는 물류의 속도가 잠시 잦아들었다. 대신 이때는 암초가 많거나 물살이 너무 험해 평소에 지나기 힘들었던 좁은 해협을 통과하는 신중하고 안전한 항해가 이루어졌다.


또한, 인공조명이 없던 시대에 보름달은 야간 항해를 가능케 하는 유일한 등대였다. 그믐에는 밤눈이 어두워 포구에 묶여 있어야 했지만, 보름에는 달빛 이정표를 따라 밤늦게까지 배를 부릴 수 있었다. 이처럼 옛사람들에게 달의 모양은 곧 바다의 깊이와 속도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최첨단 데이터였다.


지중해의 정적과 서양의 '태양' 선택

그렇다면 서양은 왜 이토록 유용한 음력을 멀리하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흥미로운 지리적 요인이 숨어 있다. 서구 문명의 발상지인 지중해는 조수 간만의 차이가 극히 적다. 대서양과 연결된 유일한 입구인 지브롤터 해협이 너무 좁아 바닷물이 드나드는 양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동양의 해안가 사람들에게 달은 바다의 높낮이를 결정하는 신령한 존재였지만, 지중해 사람들에게 바다는 늘 잔잔하게 그 자리에 있는 거대한 호수와 같았다. 바다의 변화를 보고 날짜를 가늠할 실익이 적었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서해는 조수 간만의 차이가 크게는 9m정도 난다면 지중해는 10~50cm정도다. 거의 변화가 없다고 봐야 한다.


Mediterranee_02_EN.jpg 지중해 지도. 실질적인 호수라고 할만큼 잔잔한 것으로도 유명하며 조수 간만의 차이가 지극히 적다. 출처 위키피디아


유럽도 고대시대에는 음력을

유럽 역시 고대 초기에는 달을 기준으로 한 역법을 사용했다. 초기 로마력(Roman Calendar)은 1년이 10달뿐인 엉성한 음력 체계였다. 하지만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음력의 1년(약 354일)은 태양의 주기보다 11일이 짧아, 매년 계절과 날짜가 어긋났기 때문이다. 광활한 영토를 관리하고 세금을 걷어야 하는 제국 입장에서는 모든 지역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예측 가능한' 시간이 절실했다.


결국 기원전 46년, 줄리어스 카이사르는 이집트의 앞선 천문학을 도입해 '율리우스력'을 공표했다. 이는 달의 주기 대신 태양의 주기를 따르는 파격적인 개혁이었다. 태양력은 특히 군사적 목적으로 빛을 발했다. 대규모 병력을 이동시켜야 하는 전쟁에서 기후 예측은 승패의 전부다. 여름의 우기를 피하고, 강이 얼어붙는 겨울의 동장군에 대비하기 위해선 매년 같은 날짜에 같은 계절이 찾아오는 '태양의 질서'가 필요했다. 서양의 양력은 자연을 관찰하는 도구를 넘어, 자연을 통제하고 제국을 운영하려는 합리주의적 사고의 산물로 진화했다.

그래서 지금의 태양력으로 날짜를 보면 달의 모양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달을 보고 날짜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날짜는 실은 하리브리드

다시 우리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동양은 음력의 오차를 보완하기 위해 '태음태양력'이라는 정교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운용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24절기(입춘, 우수, 경칩 등)다. 놀랍게도 24절기는 달의 모양이 아니라,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를 15도씩 24등분 하여 만든 철저한 양력 시스템이다. 일상생활의 리듬과 바다의 일은 달(음력)을 보고 챙겼지만, 농사를 짓고 계절의 변화를 대비할 때는 해(24절기)를 참고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음력 1년은 태양력보다 11일이 짧기에, 이를 방치하면 몇 년 지나지 않아 한여름에 눈이 내리는 달력의 오류가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상들은 약 3년에 한 번꼴로 '윤달(Intercalary Month)'이라는 보너스 달을 끼워 넣었다. 인위적으로 한 달을 더해 해와 달의 발걸음을 강제로 맞춘 것이다. "올해는 윤달이 들었다"는 말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속도에 맞춰 달력을 재조정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결국 서양은 동양처럼 정교한 '윤달'이라는 보정 시스템을 끝내 운영하지 못해, 아예 태양력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을 택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양의 윤달은 달의 리듬과 태양의 주기를 모두 살리기 위해 33개월마다 한 달을 통째로 새로 만드는 고도의 천문학적 계산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했다. 반면, 로마를 비롯한 서양의 권력자들은 이러한 복잡한 보정 과정을 번거롭게 여긴 듯하다.


그들은 달의 모양이 날짜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12개의 달에 며칠씩을 강제로 배분하여 1년을 365일로 고정해버리는 방식을 택했다. 즉, 동양이 자연의 두 시계(해와 달)를 모두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면, 서양은 행정적 편의를 위해 하나의 시계(달)를 태양에 종속시켜버린 셈이다. 이러한 차이가 오늘날 우리가 음력을 '찾아봐야 하는 번거로운 날'로 느끼게 된 근본적인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것을 통해 달을 보고 날짜를 아는 것은 이제 동양만의 문화가 되어버렸다.


서양의 숨겨진 음력

하지만 서양에서 음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기독교 최대 축제인 '부활절(Easter)'이다. 부활절 날짜는 매년 바뀌는데, 그 기준은 철저히 음력에 기초한다. "춘분(양력 3월 21일경) 이후 첫 보름달이 뜬 후 첫 번째 일요일"이 부활절이다. 만약 서양이 양력만 사용했다면 부활절 날짜는 고정되었겠지만, 그들은 '보름달'이라는 달의 주기를 여전히 종교적 시간의 핵심으로 간주하고 있다.


또한 서양의 농업 민간 신앙에서도 달의 영향력은 강력했다. 중세 유럽의 농부들은 달이 차오를 때(상현달) 씨를 뿌리면 식물이 위로 뻗어가는 힘이 강해지고, 달이 이지러질 때(하현달) 뿌리 채소를 수확하면 보관성이 좋아진다고 믿었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에 이르러 '비오디나미(Biodynamie)'라는 이름으로 부활하며 와인과 맥주 산업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와인 속에 담긴 달의 철학: 비오디나미 농법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핫한 키워드는 단연 비오디나미(Biodynamic) 농법이다. 이는 1920년대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가 제창한 농법으로, 단순히 유기농을 넘어 "우주의 기운, 특히 해와 달과 별의 움직임에 맞춰 농사를 짓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특히 비오디나미 와이너리들은 달의 주기에 따라 포도나무를 관리한다. 달의 인력이 액체(수액)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수액이 위로 올라가는 '차오르는 달'의 시기에는 전정(가지치기)을 피하고, 수액이 뿌리 쪽으로 모이는 '지는 달'의 시기에 작업을 진행한다. 심지어 와인을 병에 담는 날짜(Bottling)까지 달의 위상을 보고 결정한다.


맥주 양조에 쓰이는 홉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 비오디나미 맥주 양조장들은 달의 주기에 맞춰 홉을 수확하고 발효 기간을 조절한다. "달의 기운이 액체의 발효 리듬을 결정한다"는 이 믿음은 과거에는 미신 취급을 받았으나, 최근에는 토양의 생명력을 극대화하고 술의 풍미를 깊게 만든다는 평가를 받으며 프리미엄 주류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처럼 서양에서도 가장 합리적이고 상업적인 영역인 주류 산업에서 다시금 '달의 시간'을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2026년 설날이 유독 늦었던 과학적 이유

이제 우리가 가졌던 궁금증, "왜 2026년 설날은 2월 중순에야 왔는가?"에 대한 답이 나온다. 바로 작년(2025년)에 있었던 윤달 때문이다.


작년 2025년에는 음력 6월 뒤에 '윤 6월'이 붙어 있었다. 즉, 2025년 음력 한 해는 12개월이 아니라 13개월이었으며, 날짜로는 384일이나 되는 긴 해였다. 하늘의 시계를 맞추기 위해 지구가 한 달을 더 쉬어갔으니, 그다음 해인 올해 2026년의 첫날(설날)이 양력 달력상에서 뒤로 약 20일 정도 확 밀려나게 된 것이다.


만약 2025년에 윤달을 넣어 조절하지 않았다면, 올해 설날은 1월 중순쯤이었을 것이고,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 보면 결국 몇 년 뒤엔 설날이 크리스마스보다 빨라지는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늦어진 설날만큼 우리는 겨울의 끝자락을 조금 더 길게 누리며 봄을 준비할 여유를 얻었다.


우리는 여전히 스마트폰에 흐르는 양력의 숫자에 묶여 살아가지만, 동시에 추석과 설이라는 음력을 고수하고 있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음력을 유지하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날짜를 세는 법이 아니라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맞추던 오래된 철학이기 때문일 것이다.


달을 보고 날짜를 알아갔던 우리, 앞으로 더욱 밤하늘을 자주 볼 듯 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중세의 예배는 어땠을까? 와인이 지배하던 시대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