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해 지는 일본의 술 산업을 바라보며
획일적인 맛은 버려라! 크래프트 맥주를 지향해가는 일본의 사케 산업과 문화
최근 1,2년간 일본에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주류가 있다. 하나는 일본산 포도로 만든 일본 와인, 그리고 기존의 보리, 맥아, 홉이란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크래프트 맥주이다. 일본 와인은 일본의 야마나시, 나가노 및 북해도 등에 있는 와이너리가 관광지로써 주목을 받으며 자국의 포도라는 농산물 특유의 프리미엄이 붙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크래프트 맥주는 기존의 대기업과 다른 기업 오너가 소비자와 메일 및 SNS 등으로 소통을 함으로써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다.
특히 나가노 현의 ‘얏호 부루잉’이란 크래프트 양조장은 그 성장세가 엄청나게 뚜렷하다. 2015년 매출로 아사히, 기린, 삿포로 맥주 등에 이어 일본 내 맥주 매출 6위까지 올라갔다. 최근에는 업계 2위인 기린맥주와 자본 업무제휴를 맺어 일정 부분 투자를 받기도 했다. 회사 설립 이후 불과 20년 만에 이룬 성과다. 일본 맥주 업계의 터줏대감 기린 맥주는 일본의 가로수길이라 불리는 다이칸야마(代官山)에 거대한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을 통해 도쿄의 트렌드 세터들을 유혹하고 있다.
여기서 크래프트 맥주란 일반적으로 소규모 양조장을 뜻하기도 하지만, 크래프트란 어원 그대로 보자면 기교, 공예, 예술 등 기존과 다른 자신만의 색깔을 넣은 맥주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기존의 맥주가 보리, 맥아, 홉을 고집했다면, 크래프트 맥주는 다양한 허브 및 과실을 넣었으며, 기존의 고정관념에 얽히지 않은 자유로운 주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다양성에 트렌드 세터들은 열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전통주에 해당하는 사케는 새로움을 요구하는 시장의 요구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늘 심플의 미학을 추구했던 사케에도 변화의 바람은 부는 것인가? 이러한 시장을 직접 확인하고자,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술을 빚는 일본 토치기현의 양조장 ‘니시보리 슈조(西堀酒造)’을 다녀왔다.
다양한 맛을 추구하는 작은 양조장. 도치기 현의 니시보리 양조장
방문한 곳은 약 150년의 역사를 가진 도치기 현의 니시보리(西堀酒造) 주조장. 도쿄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술 빚기 용 쌀을 찔 때 거대한 수증기가 발생하는데 이를 배출하기 위한 양조장 한가운데의 굴뚝이 국가 유형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등, 문화적으로도 가치 있는 곳이다. 때마침 방문해 보니 가을에 수확한 쌀로 열심히 술을 빚는 기간이었다. 덕분에 다양한 술 발효 모습 및 여과 과정도 볼 수 있었는데, 양조장 전체가 술 익는 향으로 가득했다.
이곳에서는 기존에 일본식 청주와는 다른 양상의 술을 빚는다. 기본적으로 일본식 청주는 물과 같은 부드러움과 심플하게 떨어지는 맛, 일본말로 하면 탄레이(端麗)란 맛을 추구하는 곳이 많은데, 이곳은 완전히 다른 맛을 추구한다. 바로 진득한 쌀 맛과 새콤한 후미. 이유는 다양한 음식에 맞는 술을 만들기 위함이다. 기존의 술은 너무나도 담백한 일식만을 추구했다는 것이 양조장의 총괄 매니저 INAMI KENJI 씨의 설명이다.
붉은색의 홍미를 이용한 붉은색의 사케
그렇다면 어떤 술을 만들었을까? 가장 특이한 것은 바로 붉은 쌀, 홍미를 이용한 술이었다. 기존의 일본식 청주는 무조건 맑고 투명한 색만을 추구했다. 그래서 일본 시음용 잔을 보면 파란색 선이 보이는데, 이것이 얼마나 투명하게 잘 보이냐에 따라 해당 사케의 수준이 결정 났다. 하지만 홍미로 만들고 나니 일본 특유의 투명함을 추구하는 색은 절대 나오지 않았다. 맛 역시 신맛이 도는 맛으로 부드러움을 추구하는 맛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신맛이 식욕을 자극했다. 철저하게 음식과의 매칭을 중요시한 제품 기획이었다. 최근에는 녹색 쌀, 녹미를 사용하여 또 다른 맛을 만들어 내고 있다.
누룩(고우지) 함유량을 높인 사케. 진득한 맛이 마치 한국의 약 청주와 같은 느낌도
일본 한국 모두 누룩의 함유량이 적은 것이 고급술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 잘 알려진 소곡주란 전통주도 어원을 살펴보면, 적을 소(少), 누룩 곡(麯)자를 써서 누룩을 적게 쓴다는 어원 그대로를 가지고 있다(한산 소곡주의 경우는 흴 소(素)를 쓴다). 한국과 일본의 전통적인 술의 가장 큰 차이는 한국은 메주와 비슷한 밀 누룩이 주류를 이룬 것에 비해, 일본은 흩임 쌀누룩(粒麹:낱알이 흩어져있는 쌀누룩)을 쓴다는 것. 각국의 상황이 다른 것은 있지만, 고급 형태의 술에는 확실히 누룩을 적게 넣고 심혈을 기울여 빚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곳은 일반적인 사케 양조장에 비해 약 50%나 누룩을 추가로 넣는다. 일반적인 사케는 약 15% 정도의 누룩 비율. 그렇다면 이곳은 25% 가깝게 넣는다는 계산이 된다. 이렇게 많이 넣게 되면 맛이 진득하고 묵직하며 발효 시 발생하는 오미(五味)가 좀 더 선명해진다는 것이 양조장의 설명이다. 대신 기존의 사케가 추구하던 물 같은 깔끔함은 적어진다. 짧은 식견이지만 일본 술에서 안 느껴지는 진득한 한국의 약 청주의 맛도 보였다. 이렇다 보니 일반적인 사케의 안주인 생선회나 조림 등이 생각나는 것이 아닌 김치찌개나 감자탕이 안주로 떠올랐다. 맛이 진한 음식과의 매칭도 해당 양조장은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맛도 개성 있어야 소비자가 찾는다.
변화에 유연히 대처하는 일본의 사케 시장
일본의 청주 시장은 최근 5년 사이에 급변했다. 저도수, 탄산을 추가한 스파클링 사케의 대두에 맛의 변질을 우려해 판매를 꺼려했던 생사케 등도 프리미엄을 붙여 적극 판매 중이다. 젊은 층과의 소통을 위해 애니메이션을 결합하기도 하고, 귀여움을 추구하는 모습으로도 갔다. 휴대를 위한 캔 사케 등도 등장했으며, 백미에 도정률에 고집을 부렸다면 이제는 현미로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늘 전통에만 얽매이기보다는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아저씨의 술로 인식되어 점점 국내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일본 사케 시장의 몸부림이라고도 볼 수 있다.
크래프트 맥주와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 주류
크래프트 맥주와 견준 일본의 사케 이야기를 했지만, 정작 우리에게 크래프트 맥주와 비슷한 문화적 의미를 가진 술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자신의 기교와 생각, 그리고 얽매이지 않은 방법으로 만든 술. 만약 한국에 이런 술이 있다면 그 술은 바로 가양주 문화를 기반으로 한 전통주란 확신이 들었다. 늘 고두밥으로만 빚는 일본의 사케에 비해 떡과 죽으로도 빚는 자유로운 문화, 뒷산에서 딴 솔잎을 술 속에 넣어주던 늦봄의 술 빚기, 흩날리는 송홧가루를 모아 만든 낭만 속의 황금색 술 이야기. 모두 전통주 문화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한국의 전통주는 산업화가 덜 되었다, 맛이 일정하지 않다, 대량생산이 어렵다 등 칭찬보다는 과제만 나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소비자가 추구하는 진짜 술의 모습은 천편일률적으로 취하기만 하는 술이 아닌 이렇게 각각의 모습이 드러나는 개성 있는 모습이다. 그것을 통해 소통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잘 못하는 것을 잘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하는 것을 더욱 잘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빚는 이의 기교와 생각이 들어가는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성장, 늘 같은 맛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일본 사케의 니시보리(西堀) 주조장을 통해 가양주 문화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한국 전통주의 문화적 가치, 그리고 성장의 가능성을 본 가치 있는 방문이었다.
written by 명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