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서 트렌디로, 트랜디에서 독창성으로
일본 사케(일본식 청주)의 수출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며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5일 일본경제신문 발표에 따르면 수출이 155억 엔(약 1,500억 원)으로 7년 연속 최고 행진이며,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10배 가까운 성장이라고 한다. 이것은 일식(和食)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해외 일식 레스토랑의 증가와 함께 자연스레 사케 수요도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일본의 문화융성 정책인 쿨 재팬(Cool Japan) 사업의 지원으로 해외에서 다양한 사케 업체들의 프로모션이 가능해진 이유도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활성화에 힘입어 일본의 사케 업체들도 기존의 단순한 디자인을 탈피해,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런 의미로 디자인적으로 높이 평가를 받는 제품 사케 3종을 소개해 본다.
겨울의 후지산을 그대로 품은 모습의 '비룡승운(飛竜乗雲)'
단일봉으로는 세계 최대의 크기이자, 일본에서 가장 높은 후지산(3,776m)은 일본을 대표하는 명승지이다. 그래서 일본의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것이 후지산 그림이다. 목욕탕을 가도 심지어 라면 집을 가도 걸려있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상징을 사케가 품을 수 있게 만든 제품이 바로 비룡 승운이라는 제품. 후지산 모양으로 병을 제작한 것도 아니며, 그림을 넣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병 속에 후지산을 입체적으로 넣음으로써, 소장용 가치도 만들어 냈다. 비룡 승운(飛竜乗雲)의 의미는 용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의미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영웅이 현자를 만나 재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쌀을 50% 도정한 고급 사케가 들어있으며, 술을 싸는 보자기 역시 일본 전통판화의 선구자인 혹사히(北斎)의 작품으로 고를 수 있다. 일본 소비자가 23만 원 전후이며, 알코올 도수 16도, 도정률 50%이다.
귀한 잉어를 상자로 그려내다 '코이'
중국의 후한서(後漢書 )에 보면 황하강의 급류에 있는 용문(龍門)이라는 폭포가 있다. 이 폭포를 많은 물고기가 넘으려고 하는데, 오직 잉어만이 넘어서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전해져 등용문(登龍門)이란 말이 생겼고, 일본에서는 잉어가 이 폭포를 넘는 모양으로 연을 만들어서 날리는 등 잉어는 일본 사회에 있어서도 귀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잉어에 대한 마음을 담아 만든 술이 바로 ‘코이’, 일본말로 잉어다. 재미있는 것이 상자에 넣어져 있을 때는 완벽한 비단잉어. 하지만 열고 보면 병 모양을 그대로 하고 있다. 이 디자인이 높은 점수를 받은 이유는 어렵게 금형을 하지 않아도, 상자만 기획하여 새로운 디자인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 줘서다. 오히려 밖에서만 비단잉어 모습을 하는 것은 소비자에게도 편리한 요소다. 병 자체가 비단잉어 같다면 뚜껑 여는 것 자체부터 힘들고 식탁 위에 놓기도 모호했을 것이다. 니가타에 있는 이마요츠카사(今代司酒造) 주조장에서 만들고 있으며, 알코올 도수 17도, 일본 소비자가 5만 원 전후이다.
사진 출처 오미네주조 홈페이지
술의 원천인 쌀을 강조하기 위한 디자인, '오미네 준마이다이긴죠'
쌀은 일반적으로 흰색인데 오히려 검은색을 통해 흰색을 강조한 사케가 있다. 제품명은‘오미네 준마이다이긴죠’. 흰 바탕에 검은색 쌀알을 넣음으로써, 단순함과 깨끗함이 강조된다. 이 술이 만드는 오미네란 양조장은 백도와 같이 풍부한 과실향와 단맛, 그리고 무엇보다 계약재배를 통해 야마구치 현 최고급 양조용 쌀 ‘야마다니시키’를 사용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쌀 모양을 트렌디하게 넣었다고 전한다. 술에 대한 설명도 모두 알파벳으로 처리했다. 알코올 도수 14%, 60% 도정에 일본 소비자 가격 5만 원 전후이다.
프리미엄 사케 시장이 커지고 있는 일본, 한국의 전통주는 어디로 가야 할까
일본의 사케 수출시장이 꾸준히 늘고는 있으나, 일본 국내 사케 시장은 실질적으로 내림세를 타고 있다. 이유는 조직의 문화에서 가족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 단체로 과음하는 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내림세를 타는 것은 사케뿐만이 아니라 맥주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를 접목한 프리미엄 주류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주로 고급 제품을 만드는 니가타 지역은 오히려 사케 매출이 늘었다고 하며, 지역의 문화를 담은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은 일본 맥주 업계 6위까지 뛰어올랐다. 모두 음미하는 문화가 커지고 있다는 증거다. 수출 역시 프리미엄 제품이 주도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제품을 만드는 업체가 대기업이 아니란 것이다. 지역의 오래되고 작은 양조장이 그 프리미엄 문화를 이끌고 있다. 대기업과 같은 제품을 만들면, 가격경쟁에서 소모전을 하게 되기 때문에, 차별화를 통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팬 층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전통주 시장이 커지기 위해서는 작은 양조장이 브랜드적으로 강해져야 한다고 본다. 브랜드적으로 강하다는 이야기는 지역의 가치를 품고 있으며, 그러한 가치를 제품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을 알리기 위해 소비자와의 적극적인 소통도 필요하다.
대기업과 가격경쟁을 해야 하는 저가의 제품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생각이 듬뿍 든 기존 제품과 다른 제품을 만들고 팬 층을 확보하며,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가야만 그 팬 층에게 다양한 맛을 보여줄 수 있으며 매출도 늘 수 있다. 당장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준비해 간다면 우리도 일본처럼 수출증대로 이어지지 않을까? 한국의 술이 다매 박리로만 가기에는 우리가 가진 문화적 유산이 아깝기 때문이다.
written by 명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