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ooltory teller
Jul 19. 2020
눈과 귀와 맞바꾼 술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와 <압생트>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느낌의 빛이 끝없이 엄청나게 쏟아지는 아래 무겁고 타는 불꽃같은 분위기에 불안을 조성하는 이상한 모습의 자연이 있다.
한 순간 완전히 현실적이지만 거의 초 자연적이기도 한,
자주 과장된 자연 안엔 존재와 사물, 그림자와 빛, 형태와 색이 격렬한 의지와 함께 솟구쳐 오르다가 가장 격양되고 높은음으로 자신의 본질을 부르짖듯 노래한다.
소재와 자연의 모든 것이 열광적으로 뒤틀려 있다.
형태는 악몽이 되고, 색은 불꽃이 되고, 빛은 큰 불이 되고, 삶은 끓어오르는 열이 된다."
혹시 떠오르는 화가가 있나요?
아직 떠오르지 않았더라도 다음 대사를 보면
우리는 단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요. 그러다 귀까지 잘랐잖아요."
빈센트 반 고흐
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우리에게 그동안의 고흐는 인간보다 신적인 존재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인간 고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고흐를 1인칭의 관점에서 서술합니다.
그래서 고흐의 삶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고흐 내면의 감정에 집중시켜 줍니다.
불안한 카메라 앵글과 뒤죽박죽 뒤섞이는 색을 통해 고흐의 불안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해 주기도 합니다.
특히 테오의 품에 안긴 아기 같은 고흐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고흐가 더 이상 박물관에서만 보는 사람이 아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흐의 불안을 달래주는 것은 비단 테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테오가 없을 때 고흐를 위로해 주는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고흐는 그 덕분에 감각을 직접 자극하는
특유의 작품을 만들어 냈지만
그 때문에 자신의 귀를 잘라내야 했습니다.
로맨틱한 이야기 같지만
고흐를 위로해준 것은 바로 "압생트".
술이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압생트가 있는 카페 테이블>
영화에서 고흐가 압생트를 마시는 장면은 자주 등장합니다.
여러 화가들과 술을 마실 때, 고갱과 함께 이야기를 할 때 항상 테이블에는 옅은 초록색을 띄는 술이 있습니다.
특히 고흐 혼자 술집에서 손바닥만 한 셰익스피어의 책을 읽는 장면은 이 술이 압생트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압생트는 40도에서 85도에 이르는 독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물에 희석시켜 먹습니다.
하지만 압생트를 마시는 특별한 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압생트와 각설탕을 함께 먹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영화에서 고흐가 압생트를 즐기는 방법입니다.
압생트는 전용잔과 구멍이 뚫린 전용 스푼이 있습니다.
이 전용 스푼을 전용잔 위에 걸쳐 둔 후 그 위에 각설탕을 하나 올리고 물이나 압생트를 한 방울씩 떨어뜨립니다.
녹은 각설탕은 구멍으로 떨어져 압생트를 희석시킵니다.
더 극적인 효과를 위해 각설탕 위로 떨어진 압생트에 불을 붙이기도 합니다.
이런 특별한 방식 덕분인지
압생트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압생트가 정말 사랑받던 시절은
바로 고흐가 살던 그 시절이었습니다.
압생트는 고흐뿐만 아니라, '드가'와 '마네' '톨루즈' 그리고 '피카소'등 같은 시대를 함께한 화가들 뿐만 아니라 그 시대 모든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술이었습니다.
아일랜드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오스카 와일드'는 불타는 압생트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프랑스의 시인 '랭보'는 압생트의 취기를 "가장 하늘하늘한 옷"이라고 표현했으니 가히 예술가의 술이라고 불릴만합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압생트에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가 단지 독특한 방식 때문이었을까요?
아쉽지만 그 이유는 그렇게 로맨틱하진 않습니다.
예술가들이 압생트를 사랑한 이유는 그 가격에 있었습니다.
사실 처음 압생트는 포도주보다 비싼 가격으로 부르주아들이 소비하던 술이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말, 유럽에 '필록세라'라는 해충이 유행하면서 포도나무가 모두 죽어가자 포도주 가격뿐만 아니라 포도주를 증류한 브랜디까지도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이에 반해 쑥을 이용한 압생트는 대량생산에 성공하며 가격이 한없이 낮아졌습니다.
낮은 가격도 좋은데 압생트는 독주라 쉽게 취할 수 있었고 물에 희석시키면 그 양이 두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가난한 예술가들에겐 압생트는 분명히 지금의 소주와 같은 술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압생트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심지어 술집들이 문을 여는 5~7시를 압생트의 색을 빌어 "Green Hour"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전역에 1000여 개의 압생트 상표가 있었다고 하니 그 인기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파블로 피카소 <압생트 마시는 사람>
빅토르 올리바 <압생트 마시는 사람> 하지만 압생트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05년 스위스의 한 노동자가 술을 마시고 부인과 두 딸을 총으로 쏜 후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람은 압생트뿐만 아니라 다른 술도 마셨지만 죄는 모두 압생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압생트의 원료인 '향쑥'에 포함된 '투존'이라는 성분이 환각작용을 일으킨다는 연구결과가 나왔고
1906년 벨기에, 1907년 스위스, 1909년 네덜란드, 1912년 미국, 1915년 프랑스까지 전 세계가 압생트의 생산을 금지시켰습니다.
고흐가 귀를 자른 이유와 불타는 듯한 그림을 그린 이유, 유난히 노란색이 집착해 노란 그림을 그린 것이 바로 이러한 환각작용 때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1981년 압생트에 포함된 '투존'이 환각작용을 일으키기엔 부족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이후 압생트는 2005년 스위스, 2007년 미국에서 생산이 재개되었습니다.
압생트의 생산은 재개되었지만
압생트가 독주임은 여전히 틀림이 없습니다.
예술가의 낭만을 위해 압생트를 찾는 것도 좋지만 뭐든지 과한 것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