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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ltory teller Aug 01. 2020

그 시절 그때 그 소주

드라마 <응답하라 1994>와 <그린>

바야흐로 레트로의 시대입니다.

몇 년 전부터 을지로 골목과 함께 유행한 레트로 열풍이

어느샌가 주류시장까지 장악했습니다.


특별 생산으로 생산된 술들을 제외한

본격적인 주류 레트로의 시작은 '대선'이었습니다.

2017년, 'C1'소주를 생산하던 대선주조는 1965년에 생산하던 대선소주의 라벨을 그대로 적용한 '대선'을 선보였습니다.


청년층에게 대선은 뉴트로의 상징이었고

중장년층에게는 추억 서린 향수의 술이었습니다.

대선은 리뉴얼 1년 만에 무려 2억 병이 판매되었지방 소주업체로는 매우 이례적인 성과입니다.

이러한 흐름에 출시된 진로의 '진로이즈백' 역시 1년 동안 3억 병이 판매되며 뉴트로의 행진을 이끌었습니다.

진로의 '진로', 보해양주의 '보해', 대선주조의 '대선'


뉴트로 열풍은 비단 소주뿐만이 아닙니다.

한국시리즈 첫 우승팀 OB 베어스의 랄라베어를 앞세워 시장엔 다시 OB라거가 등장했고

심지어 밀가루 브랜드인 곰표는 씨유와 합작해 새로운 곰표 밀맥주를 론칭하며 연일 매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렇게 거꾸로 가는 주류시장의 흐름에도 홀로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가장 힙하다는 래퍼들과 합작에 나선 처음처럼 입니다.

처음처럼은 래퍼 염따를 앞세워 '처음처럼 FLEX'를 출시했습니다.

처음처럼은 FLEX 챌린지 등을 통해 가장 최신의 방법으로 레트로의 시대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업계 2위인 처음처럼이 이처럼 대세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물론 업계 1위인 참이슬과 같은 전략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사실 그들은 돌아갈 곳이 매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을 다룬 드라마 <응답하라 1994> 보면

왜 그들이 돌아길 꺼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청춘드라마에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그 사이 술이 있습니다.

드라마에는 푸른색 병에 담긴 진로소주

랄라베어가 그려진 OB맥주 등

뉴트로의 열풍으로 다시 등장한 술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고 어딘가 낯익으면서 어색한 술도 등장합니다.


그 시절 유일하게 초록색병에 담긴 소주.

바로 처음처럼의 전신이자

그 이름부터 푸르른 'Green'소주입니다.


누가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고 했던가요?

소주도 원래는 투명합니다.

소주는 맥주와 달리 도수가 높아 맛이 변할 위험이 없습니다.

따라서 병에 굳이 색을 넣지 않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시장에 그린소주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소주 하면 초록색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94년 1월, 그린소주는

이름과 똑같은 초록색병과 함께 등장합니다.

초록색이 주는 산뜻한 느낌 때문이었을까요?

그린은 순식간에 소주 점유율 20%, 수도권에서는 30%를 달성하며 업계 6 위던 두산을 단숨에 업계 2위로 도약시킵니다.


이러한 초록색 소주의 돌풍에 다른 업체들도 하나 둘 초록병에 소주를 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98년, 업계 1위를 지키던 진로마저 초록색병에 소주를 담기 시작했습니다.


진로는 이 초록색 소주에 새로운 이름을 새겨 넣었는데

그게 바로 참이슬 시작입니다.



진로(참 진眞 / 이슬 로露)에서 참이슬로.

정말 한 끗의 변화였지만 우리가 누구던가요.

바로 국뽕의 민족입니다.

참이슬은 등장과 함께 소주시장을 장악해 버립니다.


그에 반해 두산은 국뽕의 기운을 눈치채지 못했 것인지

Green 한껏 더 새롭게 New Green으로 변시켰습니다.

결국 늦게나마 산으로 변신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꿨지만 이미 점유율은 산으로 간지 오래였습니다.


어디 국뽕이 솟아오르는 신선한 이름이 없을까?

산으로 가버린 두산은 그곳에서 크로스포인트라는 브랜딩 업체를 만나 새 제품의 이름을 정하게 되는데 그 이름이 바로 '처음처럼'입니다.


처음처럼은 신영복 교수님의 작품에서 나온 이름으로

소주에 새겨진 처음처럼 이라는 글자는 바로 교수님이 직접 적어주신 글씨입니다.


처음처럼               신영복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다.


어쩐지 내일도 모레도 매일매일 술을 마셔도 처음마시는 것처럼 술을 마실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드디어 2006년, 두산은 산에서 처음처럼으로 제품명을 변경합니다. 그리고 2009년 마침내 롯데에 인수되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롯데의 처음처럼이 탄생합니다.



한마디로 롯데칠성음료의 첫 소주가 바로 처음처럼입니다.

따지자면 그 시작마저 롯데가 아닌 두산이었습니다.

믈론 롯데가 그린이나 산의 상표권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처음처럼이 왜 뉴트로의 대열에서 이탈해 독자적인 마케팅을 펼치는지 어쩌면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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