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삽시다

by 숨치

선중이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아침부터 선중이와 티격태격했다.


무슨 일로 그랬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기분이 안 좋았고,

선중이도 심사가 뒤틀려서 학교로 향했다.


그런데 밖을 보니 비가 온다.

우산을 주려고 나갔더니 보이질 않는다.

할 수 없이, 차를 타고 학교로 갔다.


교문 앞에 도착해서야

선중이를 따라 잡았다.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불렀다.


“비가 오면 우산을 가져가야지.”

짜증스럽게 말했다.


선중이가 차로 다가와 우산을 받으며

한마디 하고 쏙 가버린다.


“거. 대충 좀 삽시다.”


그 순간 머리가 띵했다.

집으로 오는 내내 생각을 했다.


‘대충 좀 삽시다.’


집에 와서

‘대충 산다는 게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모르겠다.

인터넷 사전을 열었다.


대충. ‘대강을 추리는 정도로’

대강. ‘자세하지 않게 기본적인 부분만 들어 보이는 정도로’


그럼 대충이란

올바른 방향으로 가되

나머지는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거구나.


내가 알고 있던 의미와는 다른 것이었다.

대충은 그냥 아무렇게나 하는 걸 뜻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넉넉한 뜻이 담긴 표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선중이가 그 뜻을

정확하게 알고 말하지는 않았을 거다.

잔소리 듣기 싫어서 했을 테지.


그래도 덕분에 좋은 말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많이 써먹었다.


지도하면서 도반들이 어떻게 수련해야 하느냐고 물을 때마다,

그냥 대충 하시면 됩니다라고 했다.


뭐.

차후에는 방향만 올바르게 잡고,

나머지는 진행하면서

상황에 따라 하면 된다고 설명하긴 했지만.


처음 그 말을 들은 도반들은 순간 멍해지는 걸 자주 봤다.

하긴 어디에서나 잘해야 한다,

바르게 해야 한다 이런 말만 들었을 테니까.


요즘도 난 그 말이 좋다.

대충 한다는 거.


공부도 대충 하고,

삶도 대충 살고.


대충 살다 보니

그래도 길은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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