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은 날

by 숨치

“끼익~.”


발이 먼저 움직였다.

머리가 알기 전에.


아침 8시 반경.

사거리에서 우회전하기 위해

횡단보도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10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횡단보도로 뛰어들었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뛰어든 것 같았다.


속도를 많이 내고 있지는 않았다.

멈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심장은 평온했다.

차는 횡단보도 중앙에 걸쳐 있었다.


누가 조수석 창문을 두드린다.

5,60대 정도의 아저씨.


생각이 났다.


횡단보도에 다다르기 전

멀리서 봤던 아저씨다.


학생들 안전을 위해 서 있는 분위기였는데,

복장은 일반 복장이라

잠깐 갸우뚱한 기억이 난 것이다.


“사고 나요. 차 뒤로 빼세요”

“네.”

짧게 대답했다.


신호가 바뀌고,

우회전을 했다.

커피수업을 받으러 가는 길.


갑자기 뛰어든 아이.


'아이들이 대개 그렇지.'


횡단보도 신호를 못 보다니.

왼쪽엔 출근길 차량으로 가득 차 있어서,

볼 수가 없긴 했지만...


어쨌든 내 부주의였다.




조금 가다 보니,

기분이 안 좋았다.


횡단보도 통제하는 사람이라면

신호가 바뀐 후에

약간 여유를 둔 후에


차량을 살피고

사람들을 인도해야 했었다.


그 책임도 가볍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나만 잘못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잠깐 억울함이 올라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운 좋은 날이네.'


나도,

학생도

그리고 그 아저씨도.




그 한순간이

조금만 달랐더라면


학생은 크게 다쳤을 것이고,

나는 미안함이 컸을 것이다.


아저씨는

그 역할을 계속하기 어려워졌을 것이다.


순간의 멈춤.

머리보다 먼저 움직인 몸.


그 덕분에

세 사람의 삶은 그대로 흘러갔다.


일등 공신은

나도 모르는 내 무의식.


우리 세 사람,

모두에게 운 좋은 날이었다.


삶의 흐름이 막히지 않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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