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을 다녀와서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말하면 사람들은 좋은 동네 산다며 부러워한다. 주변에 산책코스가 다양하고, 슬리퍼 신고 교보문고와 스타벅스를 갈 수 있고, 교통편도 좋아 별 불편함 없이 지낸다. 망원, 홍대입구, 상수역 근처라 문화시설, 유흥시설도 도처에 깔려있다.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멀리 나가지 않고, 동네로 끌어들여 편하게 사교생활(?)를 할 수 있다. 이런 나도 서소문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을 다녀오고나서 부러운게 생겼다.
최근에 생긴 신조어 중에 0세권이라는 말이 자주 눈에 띈다. 환경적인 측면으로 고려해 집을 구할 때 쓰는 말이다. 주변에 숲과 공원이 있으면 숲세권,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으면 슬(리퍼)세권, 다양한 문화공간이 있다면 문(세권)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행동반경에 따라 빠(살사바)세권, 도(서관)세권 등으로 자신의 바람을 담는다. 나는 미(술관)세권에 살고 싶다.
국립, 시립 단어가 붙은 문화시설은 시민들을 위한 문화혜택이 골고루 갖춰있다.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에는 무료전시와 체험형프로그램이 잘 소개되어 있다. 현재 키키 스미스, 강석호 작가와 최민 미술평론가의 전시가 진행중이다. 준비하고 있는 수업과 연계될 만한 전시를 찾던 중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서둘러 갔다. 미국의 여성작가 키키 스미스는 신체를 소재로 회화, 공예, 조각 등의 다양한 매체로 작품활동을 한다. ‘자유낙하’라는 주제로 다각도로 통찰한 작품세계를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번 전시관람은 예상치 못한 신박한 발견의 연속이었다. 키키 스미스의 개인전은 작품수가 많다보니 전시장의 한층 반을 채우고 있었다. 1층을 모두 돌고 2층으로 올라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한작품 한작품 과몰입해 감상하다보니 금세 에너지가 떨어졌다. 다행히 전시장 밖에 앉을만한 자리가 있어 무거운 다리를 옮겨 갔다. 벤치 근처의 코너를 흘깃보니 의외의 공간이 숨어 있었다. 미술관 옆 동물원이 아니라 '미술관 안 도서관'이 있다니!!
2층 구석의 위치한 도서관 입구에는 지금 전시되고 있는 작가의 다양한 도록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한 사람정도만 앉아있었고, 텅텅 비어있었다. 다른 작가의 자료, 구하기 힘든 최근 발간한 잡지 등이 책장에 가득 차있었다. 키키 스미스의 도록 하나를 가져와 빈자리에 앉았다. 이 작가를 시작으로 수업을 이어나가도 좋겠다며 아이디어를 하나 건져낼 수 있었다. 쉼과 동시에 영감을 받으니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3층 예술서점으로 올라가 보았다. 최민 평론가의 컬렉션 전시는 대충 훑고 강석호 작가는 다음을 기약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리가 없다. 나는 미술관을 가면 아트샵을 꼭 방문한다. 작가의 대표작이 프린트된 엽서, 노트, 컵, 가방 등의 화려한 굿즈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 기대는 와르르 무너졌다. 굿즈는 아주 소량 제작되어 구석에 있었고, 매대에는 전시주제와 관련된 도서들로 디스플레이 되어 있었다.
키키 스미스는 신체를 해부학적으로 접근하고, 초월적인 서사로 표현하며 다각도로 탐구하는 예술가다. 예술서점에는 그와 어울리는 몸을 주제로 한 다양한 도서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굿즈 대신 도서가 놓여있는 매대 사진을 담아왔다. 미술관련 자료를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나 싶었다. 아니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제시한 아래의 비젼에 나의 하루가 푹 담궈진 느낌이었다.
“복합적인 동시대성을 구현하는 미술관, 익숙함과 낯섦이 함께 존재하는 오늘의 풍경은 우리에게 다층적인 시간과 공간, 여러 사유와 이념에 반응하기를 요청합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미술 안팎을 넘나드는 문화예술의 풍부한 상상력을 우리 생활 속에 불어 넣습니다.
주말마다 많은 관람객이 드나드는 영화관처럼 미술관도 복합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내가 가본 서울시립미술관은 여러작가의 전시를 동시에 관람하고, 관련자료들을 탐색할 수 있고, 무료로 언제든지 재방문이 가능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사립 미술관도 이와 결을 같이 한다면 미세권이란 단어가 생길 것이다. 미술관 근처의 상권이 부활하고, 네트워크가 활성화되어 작가와 교육가의 살림이 나아지고, 문화예술이 우리의 삶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