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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기덕희덕 Jul 20. 2023

쉿! 비밀이야!!

친구가 가장 소중한 시기.. 중1

오늘따라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00야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묻지만 아이는 굳은 얼굴로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꽝 닫습니다. 그런 표정이 하루이틀 계속 되면 부모의 맘은 속이 탑니다.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걸까?



중학교 학부모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한 장면입니다. 마음톡톡 교실힐링 프로그램은 이런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갓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올라온 아이들은 바뀐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를 합니다. 친한친구가 같은 학교, 같은 반이 되는 것만큼 운 좋은게 없습니다. 친구가 가장 중요한 시기를 뽑으라고 하면 저는 중학교 1학년이라고 하겠습니다. 학교적응을 또래관계로 어떻게 잘 하는지가 2, 3학년까지 원만한 학교생활을 보장합니다.



이번 1학기의 집단은 서로 경계없는 분위기가 계속되었습니다. 언어, 신체적 자극이 첫시간부터 오고가느라 무척 산만했습니다. 이성친구에 대한 관심도 높아 누가 누구랑 사귄데.. 사귀자했다 차였대 등의 소문이 거침없이 오고갑니다. 그럴수록 여학생들의 입은 굳건히 닫힙니다. 저는 이럴 때 비밀서약서 작성을 목적으로 ‘진실게임’을 제안합니다. 우리가 얼만큼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지 논의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약속을 했음에도 끝까지 자신의 선을 지키는 친구들도 있고, 아닌 친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은 불안한 마음을 숨긴 채 가벼운 놀이처럼 즐깁니다. 진실게임은 내가 얼마나 친구들에게 진실할 수 있나, 나는 얼마나 친구들의 비밀을 지켜줄 수 있나를 실험해 볼 수 있습니다. 진실게임이 잘 진행되었는지는 다음 주에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활동실에 들어오자마자 누가 얘기를 하는지 지켜봤는데 안하더라.. 나도 비밀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등 활동실에 들어오자마자 치료사에게 먼저 보고합니다. 저는 이렇게 집단의 문화를 잡는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지 판단하고, 아이들의 유쾌한 상호작용 장면을 기쁘게 바라봅니다.



회기가 진행됨에 따라 집단의 신뢰가 쌓이면 아이들은 슬슬 자신의 고민을 꺼내놓습니다. 그래서 저는 ‘억울배틀’을 제안했습니다. 산만한 친구들이 가진 억울함의 역사는 대서사를 이룹니다. 자신의 욕구가 충분히 해소되지 않고, 타인과 사회에 자신이 수용되지 못할 때, 선입견에 저항하지 못할 때 우리는 억울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한 친구가 이 얘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이라며 망설였습니다. 더욱 궁금해진 집단은 어서 말해보라고 졸랐고, 그 친구는 어렵게 입을 뗐습니다. 그 고민은!!!! 죄송합니다. 저도 그 친구를 지켜야하기에 자세히는 못쓰겠습니다. 요지는 친한 친구에게 상처를 받았음에도 친구관계는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기는 밀착된 절친의 필요가 제일 높을 때이기도 해서 얼마나 고민일까 공감이 갔습니다. 그리고 관계의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상처받은 마음은 회복할 시간이 필요함을 전하며 친구와의 마음거리를 조금 떼서 지내보도록 권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회기에 ‘나의 소우주’ 작업으로 주변과의 관계도를 입체조형물로 만들어 건강한 관계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실힐링은 대단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미술시간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시각화하고, 은유적 표현으로 변형을 시도해보고,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수용하며 보다 자신이 나은 사람이 되어감을 인지하도록 합니다.

나의 소우주


이번 학기에 만난 아이들을 미술재료로 설명해보라고 하면 단연 '유토'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술재료도 고유의 물성이 있습니다. 그림재료의 물성은 습식재료, 건식재료, 합성재료로 구분합니다. 만들기 재료의 물성은 거기에 고유의 성질에 저항성도 부여해서 구분합니다. 재료가 사람의 힘을 얼마나 받아들이냐에 따라 만드는 이의 마음을 몰캉하게 만들기도 하고 힘을 충분히 쓰게 만들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유토는 정교한 모형을 제작할 때 쓰는 재료로 단단하면서도 저항성이 낮아 만드는 이의 손길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거기다 기름성분이 있어 굳지 않아 시간이 흘러도 수정, 변형가능한 재료입니다. 이번 아이들은 유토처럼 제 손이 가는대로 잘 만들어지는 단단한 친구들이었습니다. 유토의 가장 큰 매력은 '실수를 하더라도 다시 만들면 된다'입니다. 포기라는 단어가 통하지 않는 재료입니다. 가능성이 많은 재료이지요.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유토'로 만든 작품

어른들에게 말할 수 없는 내 마음, 친구들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내 마음, 나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내 마음을 12번의 만남에서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실힐링 예술치료사들의 과제입니다. 그 과제를 2015년부터 8년째 치르고 있습니다. 매번 그 과제가 술술 풀려 즐거우면 좋으련만 우리 아이들은 절대 그렇게 놔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수히 치뤘던 과제의 현장에는 이런 의미있는 순간도 반짝이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받아들이는게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뭐 제 할일은 주어지는 과제를 치르는 일이니 다음 아이들을 만날 날을 기다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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