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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기덕희덕 Aug 29. 2022

제3의 도구 ‘유연함’

조형미술재료에 꼭 필요한 마음도구


우린 소망을 이루기 위해 내 삶을 기획을 하고, 구체적인 설계를 한다. 비현실적이고 막연한 소망은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지금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받으면 ‘어쩌다보니’로 설명을 시작하게 되지 않는가? 그런 경우 주변상황, 관계 속에서 수동적으로 살고 있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혹은 '~할껄, ~별루야'라는 말을 자주 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유를 외부세계에서만 찾으려고 한다면 곧장 불만이 많은 ‘투덜이’가 되고 만다. 요즘 내가 그렇다.


나는 쉽게 접하지 못하는 재료를 통해 다양한 조형미술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 중 입체 조형미술수업에서는 한 강의 내에 세 가지 재료를 제공하고 각기 다른 방식의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첫 번째는 주물성형(casting)을 경험할 수 있는 ‘손 본뜨기’, 두 번째는 점토를 뭉치고 붙이면서 형태를 잡아가는 플러스 기법인 ‘소조’, 세 번째는 비누를 깍고 파면서 형태를 잡아가는 마이너스 기법인 ‘조각’ 작업이다.


첫 번째 ‘손 본뜨기’작업은 치과에서 사용하는 인상재료인 알지네이트를 활용한다. 가루가 물과 섞이면 점액성 sol 상태가 되고, 시간이 지나면 탄성을 가진 gel 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 안에 석고물을 부어 주물성형을 한다. 나는 수업을 준비하면서 여러번 내 손을 실험삼아 본떴는데 처음에는 기포가 생겼고, 두번째는 가루가 제대로 섞이지 않아 울퉁불퉁했고, 세번째는 재료가 모자랐다. 재료를 담는 그릇의 크기와 깊이가 적절히 고려가 되고, 공간 안에서 취할 수 있는 포즈를 미리 시뮬레이션을 하고 준비된 상태에서 손을 넣어야 원하는 작품을 얻을 수 있다.


컥~ 소리를 내게 하는 기포



반죽실패가 자초한 울퉁불퉁 손



재료가 모자라 일부분만 나온 결과물

    

재료를 1분 안에 섞어야하는 조건은 더욱 긴장하게 되고, 기포를 빠른 시간에 빼야한다는 조건은 마음을 급하게 만든다.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정, 보완을 할 수 없어 다시 제작해야 한다. 그만큼 재료의 물성을 잘 이해하고 다뤄야한다. 이는 전적으로 재료의 물성에 의존해야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신이 직접 형태를 구상하고, 제작하지 않아도 손쉽게 내 손과 같은 조형작품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눈에 띄는 기포자국, 석고상 틈새에 낀 알지네이트 조각, 내 예상과 다른 낯선 손을 마주할 수도 있다. 알지네이트가 섞인 통 안에 손을 넣으면 순간 방금 전까지 내 마음대로 움직이던 손이 몸에서 떨어져나가는 기분마저 든다.


두 번째 시간에 하는 ‘소조’작업은 점토를 반죽하고 조물조물 형태를 덧붙이며 만든다. 재료가 가진 물성에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손에 느껴지는 감촉을 느끼며 손이 가는대로 하다보면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예상한 대로 작업이 되지 않을 때는 그 부분을 떼어내고, 다시 만들어 붙이면 그만이라 수정, 보완도 쉽다. 그리고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작품에 애착이 생기고, 섬세한 표현을 소조도구를 이용해 하다보면 몰입의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세 번째 ‘조각’ 수업에서는 재료를 깎고 잘라내며 원하는 형태를 만든다.단단한 성질의 대리석, 나무에 비해 내가 제공하는 비누는 구하기 쉬운 대신 탄성이 약해 칼이 움직이는대로 부드럽게 깎여 나간다. 그러다보니 이 연약함이 작업하는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한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실수에 대한 각기 다른 반응을 볼 수 있다. 자칫 칼날이 잘못 나갈까 조심스러워 작업이 느리게 진행하는 사람, 내 생각보다 잘 만들어지지 않아 하는 내내 실망감을 표현하는 사람, 각 면을 미리 꼼꼼히 스케치하고 차분히 자신의 속도를 지키는 사람, 실수에 동요하지 않고 유연하게 생각을 바꿔 작업을 이어가는 사람, 계획없이 되는대로 밀고나가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작업하느라 지친 모습이었고, 미완성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단, 성격대로 밀고나간 사람만 완성을 보았고, 자신의 작품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소심하게 깍여져 살이 쩌버린 내 토토로 / 목판에 저부조로 판 연잎]

             

세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 강의에 대한 소감을 학생들에게 물었다. 각각 다른 물성을 가진 재료를 다른 방식으로 작업한 경험이 어땠는지 궁금했다. 첫 번째는 자신의 기대만큼 손이 잘 본떠지지 않아 실망했다는 피드백이 대부분이었다. 두 번째는 점토가 가진 물성이 마음을 차분하게 했고, 재료가 빨리 굳지 않아 강의시간 내에 수정이 가능해 마음이 편했다고 했다. 세 번째 수업은 실수할까 조심스러웠지만 평면작업만 하다가 입체작업을 하니 여러 면을 살필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고 했다. 또 제대로 되지 않아도 다른 방법을 찾아나갈 수 있었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성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세 작업의 차이는 과정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손 본뜨기'는 기획, 설계, 작업과정이 없이 재료의 물성에 의존하여 내 손을 그대로 복사한다. ‘소조와 조각’은 기획, 설계, 작업과정이 잘 전개가 되어야 원하는 결과물을 얻는다. 자신의 머리와 손의 감각, 내면의 대화를 통해 적당선에서 타협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있다. 결과물이 좋지 않더라도 내 수고가 힘겹더라도 내 결과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작업을 수행하며 갖게 되는 작가의 유연한 태도가 자신이 낸 산물, 노력의 결과에 대한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도 모르게 주어진 상황에 묻어가는 혹은 끌려가는 수동적인 사람이 되었다면 모든 일에 흠이 먼저 들어오고, 만족스러운 일이 없다면 지금 삶을 점검해  필요가 있겠다. 나는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에 있는가, 나는 내가 지금 바라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는가, 그것을 위해 나는 주도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내가 기대한 결과물에 대한 가치가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내가 어렵게 키워온 마음의 불씨를 끄고 있는지 살펴보자. 


누군가에게 빌어본 간절한 내 기도와 소망은 나를 비껴갈 확률이 더 높다. 그럴 때는 절망 대신 '유연함'이라는 마음의 도구를 꺼내기 바란다. 정해진 길이 조금 벗어나도 원하는 그림의 모습이 조금 달라져도 유연하게 움직이는 몸과 마음이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만족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행복' 이모티콘을 붙일 수 있는 일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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