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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기덕희덕 Aug 22. 2023

대단한 시절인연

중년들의 덕질


나는 싱어 송 라이터 이승윤의 팬이다. 그는 우리를 ‘삐뚜루’라고 부른다. 아이돌문화에서 시작된 팬명은 이승윤의 ‘우주 like 섬띵 투 드링크’ 가삿말에서 따왔다. 애매한 선상에서 대중이 좋아하지 않는 음악을 한다고 말하는 그는 가사에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마름모야
심지어 삐뚜루 서 있지


우리 삐뚜루들은 마름모인 그를 사랑한다.
그리고 함께 삐뚜루있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난데없는 덕밍아웃으로 시작하는 이 글을 쓰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공적인 직업과 역할이 있는 사람이 사적인 내 취향을 드러내는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 대한 이야기보다 나처럼 중년을 맞아 덕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내 얘기로 시작하자면 2020년은 코로나로 심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때마침 무명가수를 발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인 ‘싱어게인’이 인기였는데 첫눈에 대상감이라고 점찍은 이가 방구석 음악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승윤’이었다. 그의 1등은 쭈그러져있던 내가 상을 받은 것 같았다. 방구석 은둔자들의 희망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 그의 행적을 쫓는 팬이 되었다.  


애매한 선상에서 남몰래 그를 응원하고 있는데 멀리서 메시지 한통이 왔다. 제주에 사는 옛동료 언어치료사 샘(이하 제주샘)이 자신도 이승윤 팬이라고 연락이 왔고, 즉시 우리는 덕메(덕질메이트)가 되었다. 덕질의 영향력은 강력하기에 연대를 맺기 시작하면 그 세계로 쑥 빨려들어가기 마련이다. 제주샘과 나는 이승윤의 성지인 합정에서 만나 이승윤의 첫 단독 콘서트를 갔다. 덕질에 주도적이고 열정적인 샘은 이미 여러 팬들과 안면이 있었다. 그때 제주샘의 소개로 만난 제주언니는 몇달 뒤 피켓팅에 실패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 그 공연을 계기로 제주, 영주, 광양, 부산, 마산, 서울 각지의 삐뚜루들과 하나로 맺어지게 되었다.


바쁜 일상을 살다 마음을 쉬어가고 싶을 때 덕주(연예인)들은 치유제가 되어준다. 그들이 만들어 준 세상은 내가 원하는 삶을 대리만족할 수 있게 하고, 또 그곳에 뛰어들어가 맘껏 즐길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가슴을 어루만지는 음악, 가삿말은 고난한 삶을 돌아보고 그동안 잘 살아왔음을 스스로 위로할 수 있도록 해준다. 동경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있다. 같은 결이 있기에 그를 통해 열정과 용기를 얻고,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할 수 있다. 그러나 덕후들의 세상은 우리의 꽁꽁 숨겨왔던 어두운 면을 그대로 투사하기도 한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탈이 나는 것을 알기에 현생과의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8월 3째주 주말은 우리만의 축제기간이다. 우리들의 덕주 이승윤의 생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승윤을 알기 전에는 생일카페를 지날 때마다 줄서있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봤는데 이제는 내가 그러고 있다. 참 사람사는 일은 모를 일이다. 팬들은 자발적으로 마음을 모아 카페를 빌리고, 음료와 굿즈를 팔며 삼삼오오 모여 남들에겐 쉽게 꺼내지 못하는 덕주에 대한 진심과 정보를 폭발적으로 나눈다. 또 덕주를 향한 마음을 그림으로 그려 갤러리를 빌려 전시를 하기도 한다. 그동안 내가 호스트가 될 생각은 못해봤었는데 나라고 못할까!


중년은 자기실현의 시기이다. 중년들은 그동안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살아내느라 나를 잊고 살았다. 자녀의 독립, 주변관계의 변화, 내 안에 일어나는 마음의 역동은 ‘나로 살아가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그런 이들에게 예술은 안전한 중간세계가 되어준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이 중간세계는 놀이의 장이 된다. 덕메들의 끈끈한 연대감이 강력한 촉매제가 된다. 인생에서 해볼 일 없을거라 느낀 것들도 이젠 뭔들! 도전정신이 생긴다. 덕주에 대한 애정은 나에 대한 애정으로 연결된다. 나의 삶으로 되돌아 오는 길은 그렇게 열린다.


덕주 이승윤이 자기 생일날 팬들에게 커피차를 쏘신단다. 이걸 역조공이라고 부르는데 평소 팬들과 거리를 두던 덕주라 모두 흥분하였다. 다들 그럼 마시러가야지!! 새벽 6시부터 간다는 사람이 있다고? 우리도 빨리가자!! 나도 거기에 가담해 새벽 4시에 깨 잠설치다 일찍 나갔다. 도착하니 7시 반이었다. 한 30명 정도가 먼저 와있었고, 우왕좌왕 끝에 가방줄로 순서를 정하기로 했다. 11시 정도가 되니 200명 넘은 듯했다. 4시간을 기다려 담당자의 번호표를 받고나니 이게 참 할 일인가 싶었지만 간 보람이 있었다. 덕주님이 손수 커피프린스 복장을 하시고 직접 쿠키를 나눠주고 셀카를 모두 찍어주셨다. 나의 주책은 이날 끝판왕이었다. 최고의 흥분상태를 경험한 나는 덕메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 말이 툭 튀어나왔다.


참 대단한 시절인연이네요!!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는 나와의 만남이 중요하다. 과거의 나, 지금의 나, 미래의 나가 세상 속을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가의 질문은 나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킨다. 하지만 분명 내가 모르는 나도 존재한다.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우린 끊임없이 타인과 세상과 접촉하며 나를 이해하고 수용한다. 이 안에는 지금 내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 덕주를 통해 나의 결핍을 충족하고, 사랑을 느끼고, 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동기를 얻는다. 그리고 그 마음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동료는 그 과정을 더욱 뜨겁고, 따뜻하게 해준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는 모든 관계에 필수인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지만 말이다.


올해 8월 3째주는 유난히 덥고 습했다. 열대야가 이렇게 오래 갔었나... 아님 갱년기 증상일까... 그것도 아님 덕질의 향연에 푹 담궈져서일까... 내년 8월 3째주는 어떨지 모르겠다. 내년은 내년의 내가 또 즐거운 한 때를 보낼 것이다. 그 시절의 인연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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