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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기덕희덕 May 12. 2024

Connection

연결감에 대하여


2020년 12월 22일 새벽..


뒷골목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의 어두움과 상관없이 덩그러니 켜있는 가로등이 좋았다. 스마트폰을 가져와 사진을 찍었고, 드로잉, 수채작업으로 반복해 그렸다. 사진으로 보이지 않던 전선이 이집저집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림으로 옮기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코로나로 각자의 집에 고립된 생활을 하던 때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나갔던 모임은 뚝 끊겼다. 프리랜서로 하는 일도 당연히 모두 멈췄다. 그 막막함을 떠올리면 아직도 등골이 서리다. 해가 뜨지 않아 어두운 전경에는 이른 새벽에 일어난 혹은 밤을 샜을지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각자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어둠 속에서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리적으로 전선으로 우린 서로 빛을 나누고 있는대도 말이다. 나에게 ‘연결감’이란 키워드는 이렇게 코로나가 만들어줬다. 


4년이 흘러 코로나가 언제 있었냐는 듯이 지내고 있는 요즘이 낯설다. 여전히 누구는 코로나로 격리되어 있다는 소문이 들렸지만 전처럼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격리되서 쉬고 싶다는 농담을 주고 받는다. 진짜 우리는 괜찮은 것일까?


치료사작품 / connection - 나무판넬, 아크릴, 잡지, 실,  72.7x60.6, 2024.5.5


작년부터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작업에 촛점을 둔 치유프로그램인데 올해부터는 ‘관계’ 주제를 다뤄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청년들의 고립이 너무 심각해지고 있어 어떻게든 이들이 문화예술프로그램을 통해 안전한 관계를 경험하고 지속적으로 후속모임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집단의 관계를 위한 작업이 추가적으로 요구되어 프로그램을 전면 수정해야할 지경이다. 다행히 자신과의 관계에 집중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대부분이라 미술작업을 통한 성찰과 치유작업은 무리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관계에서 턱 걸려 넘어가지 않는 느낌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청년들은 수업에서 이런 말들을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잊어버렸어요. 그냥 주변 눈치보며 잘 맞추는데 너무 익숙해졌어요. 오로지 스펙을 위한 일에만 매진할 뿐.. 쉬는 시간도 사치예요.”, “마음 나누는 친구? 고민을 털어놓으면 약점잡히는거 같아 말안해요.”, “실수라고 할까봐.. 완벽하지 않을까바 전 시작도 못해요.”, “회사에 열심히 다니고 있지만 요즘은 길을 잃은 느낌이예요. 물 속 바닥에 누워 어른거리는 바깥세상을 보는거 같아요.” 이런 말을 듣고 있으면 속이 너무 상한다. 내가 닦아온 세상이.. 버텨온 시간이 그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거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대신 수업시간에 당신이 좋아하는건 이거였네요. 이 재료는 무언갈 하려고 하면 말을 듣지 않으니 의도를 포기하고 그냥 재료가 움직이는걸 보고 받아들이며 쉬어요. 감정은 마음 안에 머물면 병이 되요. 그러니 그림으로 풀어요. 그래도 되요. 당신만 그런건 아니랍니다.. 열심히 위로의 말을 전한다. 


아트퍼스트 '재료와 나' 시즌3 참여자 공동작품 / 새로운 경로로 안내합니다 - 나무판넬, 아크릴물감, 아이클레이, 혼합재료, 90.9X65.1, 2024. 4.26


며칠 전 아트퍼스트 '재료와 나' 시즌 3 수업이 끝났다. 전시제목은 '경로를 이탈했습니다'라고 정했는데 서로 다른 우리들이 자기만의 경로에서 이탈해 미술로 자신을 만났다는 의미였다. 지난 4월 28일, 우리들의 마지막 의식을 공동작품 만들기로 진행되었는데 각자의 공간에 있는 자기캐릭터들이 한 곳에 모여 새로운 관계를 형성했다는 의미를 작품에 새겼다. 나무판넬에 바탕색을 함께 칠하고, 자신이 원하는 위치를 정하고, 자신만의 편안한 공간을 꾸몄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했다는 느낌을 갖기 위한 작업을 제안하자 한 참여자는 '붉은 실'이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사람들은 모두가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연결되었다는 내용이었는데 대부분 들어본 적이 있다며 각자의 공간을 붉은 실로 연결하는 것을 동의했다. 그리고 '새로운 경로로 안내합니다'라는 제목이 지어졌다. 나는 이들 간의 연결감이 생기길 간절한 마음이었기에 이들의 제안과 수용, 협력하는 작업이 너무 멋졌고, 흐뭇한 마음으로 관찰하였다. 그리고 위의 내 작업에도 붉은 실을 덧붙여 이미지 사이사이를 옮겨다니며 연결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바라고 있다. 소원한 관계를 회복하는데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나와의 연결감이겠다. 나와의 관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선행되어야 타인과의 연결감을 회복하는데 에너지를 낼 수 있다. 나와의 관계, 너와의 관계 그리고 우리의 관계는 함께 살아감에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그 조건이 척박한 이 생활에 하나의 희망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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