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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기덕희덕 May 12. 2024

지금 여기.. Grounding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명지대학교 통합치료대학원 예술심리치료학과의 '아떼 - 연결'


학교 후배의 제안으로 10여년 만에 모교를 방문했다. 명지대학교 통합치료대학원 예술심리치료학과에서는 매년 ‘아떼’라는 이름으로 연극, 미술, 음악, 무용 등 통합적인 퍼포먼스로 우리만의 의식을 치뤄왔다. 코로나 시기에 열지 못하다가 이번에 오랜만에 다시 열렸다. ‘아떼 연결’이란 이름을 내걸고, 예술치료사의 자긍심을 갖고,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적 관계로 연결하자는 취지로 뜻깊은 행사를 치뤘다.


행사 중 ‘선배 Q&A’가 있었고, 초청된 세 명의 선배 중에 내가 나가게 되었다. 나는 15기로 졸업한지 12년이 되었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싶고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들의 온도를 내가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뾰족한 대안이 없고,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이야기가 나올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바깥에서 들어오는 접촉의 신호가 반가운 터라 참여하게 되었다.


비오는 날 학교의 정문은 반가우면서도 낯설었다. 주변환경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 잘못왔나 착각할 정도였다. 행사장에 들어가보니 여기저기서 밝게 웃으며 서로를 환대하는 후배들이 있었다. 얼마나 준비를 알차게 했는지 학생회관의 좁은 로비에 다양한 코너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도 선뜻 참여해 집단만다라에 그림 하나를 슬쩍 밀어넣고, 나에게 쓰는 엽서를 써보고, 에너자이저 후배와 하는 게임베틀에도 도전했다.


우리들의 의식 - 집단만다라


행사를 이끄는 학생회장과 진행을 담당한 샘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안내해주었고, 후배들이 붙여놓은 Q&A보드를 보여주었다. 몇 장 안되는 포스트잇에는 후배들의 현재 고민이 담겨있었다. 가벼운 질문이 더 난처한 경우가 있어 웃으며 넘기지 않고 마음에 새겼다. 저 질문들에 내가 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힘든 대학원 시기에 힘이 될 만한 이야기여야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내 고민에 충실한 사람이다보니 낙관적인 내용보다 경험을 통해 후배들이 어려운 상황을 조금이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헤쳐나가길 바랐다.


모든 질문에 답하고 싶었지만 시간관계 상 두 개만 허락되었다.


‘이 직업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5학차 번아웃 온 학생입니다..)’라는 질문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언제나 직업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포기하지 않는 것보다 포기하지 못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미술치료사로 버텨온 터라 이 질문에는 솔직한 내 경험을 전하고 싶었다. 졸업 후 사회에 나와서 경험한 미술치료 현장은 내가 알지 못하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과의 사투를 벌이는 곳이었다. 그리고 사업에 참여하면서 생각지 못한 도전상황이 많았기에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 노력은 나를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원동력이 되었다. 포기하지 못하는 그 성미가 나를 지금까지 이끈 것이다. 후배의 질문으로 내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포기’보다 언젠가는 ‘내려놓음’의 순간이 다가올 수 있겠다.


두번째 질문으로 선택한 것은 ‘미술치료사가 되어가는데 가장 중요한 공부가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이었다. 미술치료사가 되어가는 시점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난 아직도 되어가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질문자의 마음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원 과정에서 어떤 공부가 중요할까.. 전반적인 심리치료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내담자를 만나기 위한 자기탐색과 이해 등이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미술치료사로 일하는 동안 공부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대학원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해서 고된 교육과정을 잘 받아들이고, 자기동력으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마이크 잡고 주절주절 떠들다보니 제대로 전달이 안되었을 것 같아 이렇게 글로 정리해 남긴다.


졸업 후의 나의 공부는 억울함으로 시작된다. 이 억울함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살 거 같아서 사회심리학 책을 뒤졌고, 집단을 치료적인 관점에서만 보지 않기 위해 보편적인  집단의 역동이 무엇인지 집단역학에 관한 이론서를 뒤졌다. 그리고 통합예술치료사로 성장하게 한다는 사업의 목표에 의해 다양한 매체치료사와 파트너쉽을 해야했다. 그러다보니 무용치료, 음악치료, 연극치료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다행히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그들에게 배우고, 함께 성장했다. 여러 매체 중 연극치료에 매력을 느껴 따로 이론과 실제에 관한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지금은 재료수업을 열다보니 회화를 깊게 탐험하고 싶어 홍익대학교 미술평생교육원을 다니며 ‘현대미술’에 푹 빠져있다.


이 얘기를 전하니 앞에 앉아있는 후배하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난 그 모습을 보고 '언제까지 공부하나 싶죠? 이 일을 하는 동안, 아마 죽을 때까지 이렇게 있을지도 몰라요. 이게 답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님말구입니다.’ 이렇게 툭 내뱉었다. 이 시크한 말이 그들에게 어떻게 전해졌을지 끝나고 나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대학원 생활이 녹록치 않을텐데 바깥 상황은 척박해서 불안한 마음이 들텐데 내가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나.. 나도 무한긍정과 화이팅을 외쳤어야 했나.. 하지만 나는 그럴 성질이 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하란 기회가 주어졌다. 질문 중에 ‘좋은 치료사가 되려면 우선 한가지를 뽑는다면?’이 있었다. 나는 옛기억 하나를 꺼냈다. 논문을 쓰고 졸업하면서 마지막으로 교수님들과 식사하는 자리가 있었다. 졸업을 앞둔 우리에게 교수님은 ‘어떤 치료사가 되고 싶나요?’라고 질문을 하셨다. 나는 ‘행복한 치료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교수님은 ‘그럼 유능해야겠네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뒤로 10여년간 내가 유능한지 아닌지 실험하는 시간을 보냈다. 내 뒤통수에는 그 말이 늘 따라다녔다. 아직도 그 유능해야 한다는 조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신 그건 나에게 필요한 능력의 일부라고 축소시키고 내가 되고 싶은 치료사를 바꿨다. 나는 ‘자기돌봄을 하는 치료사’가 되고 싶다. 타인을 만나기 위해 나를 기술을 연마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도구인 나를 잘 다룰 수 있도록 보살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번아웃에서 나를 지켜낼 수 있다.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은 이것이었다.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하고, 과정 속의 나를 아끼고 지지하고, 지친 몸과 마음의 회복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지금 여기..Grounding, oil on canvas, 64.7X52.9


얼마 전 작업한 작품이다.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는 불안을 마주하고, 경쟁에 치여 나를 잃어버리고 만다.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무력해지기만 하는데 과거의 후회,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은 지금을 상실하게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는 몸부림,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나로서 바로 서겠다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매 순간이 도전되는 상황이지만 조금의 공간일지라도 내 발 밑을 의식한다. 발에서 전해지는 땅의 느낌은 딱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바탕재이다. 그 위에 관절 하나하나를 세우고, 뼈를 감싸고 있는 근육을 의식한다. 그리고 중심을 잡아주는 코어에 집중한다. 감정과 생각 나의 욕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린다. 이것이 지금 나를 살게 하는 방식이다.


지금 여기 Grou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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