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마무리하며 한 해 동안 있었던 일을 돌아봤어요.
매 순간 지나간 일보다 다가올 일을 쫓느라 마음이 분주했는데, 올해는 뜻밖의 상황이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것도 소홀히 했던 관계에 관한 일이었어요. 무척이나 불편했고,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어 혼자 노래방에 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누구나 겪는 일이니 감당해야 한다는 스스로 다독였지만, 마음은 뜻대로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물지 못하는 고약한 성미를 내려놓지 않고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조금씩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지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해야 할 일을 잠시 내려놓는 것도 필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일은 소홀해졌고, 외부수업과 개인상담 위주로 일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신없는 흘러간 시간 속에서, 작년부터 준비했던 청소년상담 2급자격증은 조용히 도착해 있었고요. 이 종이 한 장으로 무엇을 더 해볼 수 있을지 고민할 틈도 없이, 또 다른 일이 찾아왔습니다.
GS칼텍스에서 의뢰한 예술프로그램을 대한민국교육봉사단을 통해 제안받았습니다. 마음톡톡 치료사로 14년을 함께해왔고, 언제 중단될지 모르는 사업이라는 걸 알기에 마음 속에 작은 불꽃이 일었습니다. 후원 기업의 승인에 따라 한 해의 사업이 시작되는 구조라, 올 해는 그 소식이 유난히 늦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마음톡톡은 지난 14년 동안 전국의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심리지원 사업을 이어왔습니다. 저는 1기 치료사로 원주와 부산에 파견되어 개인, 집단 예술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사업 초기에는 예술치료사를 슈퍼바이저로 성장시킨다는 목표 아래 매주 서울로 올라와 미술·연극·음악·무용 치료를 배우고, 집중적인 임상감독을 받았습니다.
각 지역의 상주 치료사들은 전문성을 쌓아갔고, 연 7~8회 여수 예울마루에서 캠프를 운영하며 예술을 통한 자존감 향상과 또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였습니다. 이후 자리를 옮겨 현재는 서울·경기 지역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실힐링' 예술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심리·정서 지원 사업이 사회공헌의 흐름 속에서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도, GS칼텍스의 꾸준한 후원 덕분에 지금의 마음톡톡이 이러지고 있음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사업이 마무리되더라도 아쉬움이 덜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마음처럼 쉽지 않더군요.
저는 마음톡톡 안에서 스스로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낀 순간이 많았습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부딪혔던 기억들, 능숙하지 못했던 장면들이 결과에 따라 더욱 또렷해지며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지금도 그 말들은 제 뒤를 따라 다닙니다.
"너 그거 맞아?"
"이렇게 했어야 되는거 아냐?"
"준비를 잘했어야지."
제 원동력은 늘 저 자신을 향한 채찍질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잘 해냈다는 감각을 얻고 싶었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예술 프로그램에 제대로 된 마침표를 찍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여수에서 진행되는 이번 프로그램은 약 3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기획되었습니다. 핵심 키워드는 '연결감'. 늘 다뤄오던 주제라 접근은 비교적 수월했지만, 날짜와 장소, 대상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획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어떤 최종 그림을 그려야 마음톡톡을 잘 담아내고, 내년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큰 그림은 계속 그려가고 있었지만, 운영에 필요한 구체적인 조건들이 부재한 상태에서 일을 놓지도, 온전히 붙잡지도 못한 채 여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여름의 끝자락, 여수의 세 개의 여자고등학교가 모집되며 일정이 확정되었고, 그에 맞춰 구체적인 기획안을 빠르게 완성해 나갔습니다.
여수공장 견학과 예술프로그램을 어떻게 연결할지 머리로는 도무지 그려지지 않아, 먼저 공장을 다녀온 후 제 감각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습니다. 원유가 정제과정을 거쳐 산업, 생활 전반에 쓰이듯, 사람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쓰임으로 사회에 기여한다는 개념으로 확장했습니다. 다양한 촉각 재료를 활용해 감각을 깨우고, 타인과 함께하는 경험 속에서 자신의 코어에너지를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공장 견학 후 예울마루로 이동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정이었기에, 경험이 단절되지 않도록 워크북을 제작했습니다. 감각을 기억하는 웜업부터 강점정제소에서 자신의 강점을 탐색하고, '나의 섬'을 만든 후 모둠 친구들과 나누는 구조로 짰습니다. 초안은 온갖 내용이 가득했고, 맞는 방향인지 끊임없이 의심하며 불안해했습니다. 이후 운영 치료사들과 시연을 거치며 내용을 덜어내는 우리만의 '정제과정'을 거쳤고, 혼자였다면 절대 해내지 못했을 일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일정이 가까워질수록 준비는 더욱 촘촘해졌습니다. 워크북 제작을 맡기고, 사용할 재료를 하나하나 테스트하며 모델링을 진행했습니다. 섬 만들기 작업은 1시간 이내로 끝나야 했기에, 사전 가공이 필요한 재료는 미리 준비했습니다. 작업을 돕는 '재료탐색영상'과 프로그램의 흐름을 설명할 '드로잉'까지 제작하며 숨 쉴 틈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이 생각뿐이었어요.
"나 마음톡톡에서 이거까지 해봤다."
"이건 꼭 해내야 한다."
마침내 그 날이 되었고, 첫 아이들을 맞이하는 순간 울컥 눈물이 올라왔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큰 무리 없이 첫 날을 마무리 했습니다. 제 예상과 다른 반응에 즉각 수정이 필요했습니다. 운영치료사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2박 3일 동안 여수의 세 개 여고와 함께한 '예술로 연결하는 나의 섬, 우리의 섬'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무리 했습니다.
잊지못할 에피소드도 풍성하게 쌓였습니다. 한 팀으로 움직였던 대한민국교육봉사단 팀장님과 간사님들, 운영치료사 샘들은 훗날 두고두고 이야기할 추억이 생겼다며 웃었습니다. 그만큼 협력이 훌륭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여수 프로젝트는 GS칼텍스 사회공헌사업 '마음톡톡'을 알리는 영상으로 제작될 예정입니다. 지역 전시와 주민 참여 프로그램도 염두에 두었으나 여건상 모두 불발되었고, 예울마루에서 짧은 전시만 가능했습니다. 그 순간들을 영상으로 담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다행이었습니다.
전시를 오래 이어갈 수 없어 온라인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작업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의 작품을 미니스튜디오에서 촬영했고, 워크북에 붙여 기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진 자료는 노션에 정리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했고. 전체 작업을 담은 영상도 함께 제작했습니다.
https://www.notion.so/2a8fd24c4d2181959e88c234fd2a1e74
https://youtu.be/6Vkrzuo4om0?si=28HC5un3Sqvc6y3N
6월 말에 시작된 프로젝트는 12월 중순,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후회 없이 모든 것을 쏟아부은 시간이었고, 그만큼 공허함도 밀려왔습니다.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버거웠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대한민국봉사단의 운영 지원과 마음톡톡 선생님들이 참여 덕분에 머릿속에만 있던 기획을 현실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사람들에게 감동받았던 순간이 있었을까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의 기억들입니다. 이제야 올 한해,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를 '마음톡톡'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톡톡에는 여전히 많은 훌륭한 예술치료사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교사를 위한 '교실힐링 클래스', 중학생 대상 '교실힐링' 프로그램 등 각자의 자리에서 개인의 일과 함께 묵묵히 역할을 해내고 있는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와 응원을 보냅니다. 우리는 종종 웃으며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마음톡톡에 미친 사람들이지."
강사비가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는데도, 주어지는 일마다 미친 듯이 열정적으로 해내는 우리가 참 욱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사업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하죠. 새해에는 한번 모여 진지하게 이야기 해봐야겠습니다.
"우리, 이제 진짜 마침표 찍어야 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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