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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기덕희덕 Sep 16. 2022

그리기는 달리기

예술이 일상이 되는 날까지

지금 6개월째 격일로 달리기를 하고 있다. 비가 오면 비가오는대로 나갔고, 뜨거운 햇빛과 숨이 막히는 더위에도 나가서 무조건 달렸다. 처음에는 나이키런에 하나하나 평균페이스, 시간, 거리를 체크하며 기록을 단축시켜보겠다고 다짐도 해봤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기록만 쫓아 욕심을 낼수록 몸에 힘이 들어가고, 무릎과 정강이에서 위험신호가 왔다. 


그래서 1개월정도 되었을 때 전략을 바꿨다. 


단, 2키로라도 즐겁게 할만하다고 느낄 때까지
거리를 늘리거나 속도를 올리지 말자!



대신 일주일에 2-3회는 꼭 몸에 붙을 수 있도록 짧은 코스로 꾸준하게 달리는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1키로를 계속 뛰지 못해 숨을 헐떡이며 걷다뛰다를 반복했는데 몸이 적응하고 나니 중간에 쉬지않고, 편한 호흡으로 뛸 수 있게 되었다. 무언가를 시작해서 눈에 띄게 빨리 개선되고, 할 만하다고 느낀게 또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고질적인 정강이 통증은 쉽게 낫지 않았다. 검색으로 알아보니 예전에 접질렸던 발복의 안정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었다


예전에 다니던 체육관 샘이 가르쳐주었던 주법이 기억났다. 병원에 가서 진단받고 치료하는 것도 좋겠지만 아직 부상정도는 아니니 주법을 개선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 기억은 강렬했는지 달리고 있으면 귓가에 샘들이 우리에게 외치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시선은 앞으로 멀리! 가슴은 펼치고! 상체를 숙이면 속도가 붙어요! 
그리고 앞 발바닥으로 힘차게 밀어내야 앞으로 나아가져요!!  




코어에 숨을 가득 담고, 다리없이 발만 있다고 상상하며 오로지 '발'에만 집중을 했다. 그리고 한쪽에만 무게중심이 실리지 않도록 골반을 중심으로 두고, 상체도 같이 움직이며 균형을 잡았다. 그랬더니 그동안 괴롭히던 통증이 느껴지지 않기 시작했다.  


집중할 포인트를 찾고, 한 곳에 쏠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고,
피할 수 없는 부담은 감내해고 밀어내야 안정감있게 달려나갈 수 있었다.



어느 날 다른 상황에서도 이 문장이 통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진행하던 '어반드로잉' 수업이 종강하는 날이었다. 그림을 학창시절 이후 처음 접하시거나 평소 그림을 그리지만 '어반드로잉'이란 특별한 주제에 관심이 있는 중년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다. 그림의 실력을 두고 강의의 수준을 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우선 '나'를 기준으로 삼아 수업계획을 세웠다. 만약 가정과 자신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일만하다 이제야 한숨 돌리기 위한 수업을 듣는다면 어떤 경험이 기쁘고 좋을까.. 빈 화지를 마주했을 때 기분은 어떨까.. 그림그리고 싶은 장면을 대하거나 사진을 보았을 때 무엇이 가장 막막할까..등을 떠올려보았다. 


'만약에 나라면~ 것이다'로 도출된 문장들을 바탕으로 수강생과 나에게 줄 미션을 이렇게 정리했다. 수강생들에게는 4주동안 진행되는 수업이니 한 강의마다 한 장씩 그림을 그려 총 4장 이상의 그림을 그릴 것(작은 종이, 간단한 재료로 시작하는 그림은 부담감을 줄여준다), 그림의 모든 과정은 자기 손으로 직접 그릴 것(강사가 그림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학생들은 내가 수정해주기를 기다리게 된다)을 제안했다. 


강사인 나에게는 수강생들이 이해하기 쉽고, 시도하기 부담없는 기법을 안내할 것, 잘 그린 그림을 기준으로 삼지 않도록 숨어있는 수강생들의 개성을 열심히 발굴할 것이란 미션을 주었다. 이렇게 해야 그림이 수강생들의 일상으로 쓰윽 흡수될 것 같았다. 


종강을 준비하며 그동안 그린 그림들을 다 모아보니 눈에 띄게 발전한 것이 한 눈에 보였다. 엄두가 나지 않던 그림을 하나하나 그리며 자신감도 높아진 참여자들의 모습이 보여서 너무 흐뭇했다. 내가 제공한 미션 은 수강생들의 '자기와의 싸움'이 바탕이 되어야 했다. 4강의 짧은 과정에서 각자 느꼈던 부담과 스트레스를 자신에게 맞게 끊임없이 에너지를 조절하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기에 성장할 수 있었다. 


나는 '달리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한장 그려내는 과정에서 느끼는 부담을 감내하고 스스로 방법을 익히고, 시도하고 결과물로 확인하는 작업은 필수조건이다. 이 대가로 수강생들이 얻게되는건 '아 그림도 할 만하구나.. 나 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지금도 늦지 않았다'이다. 이 정도면 앞으로도 수강생들의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으로 자리잡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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