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가장 깊은 상처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온다.
한때는 믿었고,
때로는 기대했고,
언젠가는 설명조차 하지 못한 채
마음을 닫아야 했던 관계들.
멀리 있는 사람보다,
늘 곁에 있었던 그 사람의 말이 더 오래 아프다.
가까울수록 우리는 쉽게 기대하고, 쉽게 다친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존재 전체가 부정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함께한 시간이 길수록
왜곡된 기억조차 내 탓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런데 상처란,
반드시 누군가의 악의로만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 경우가 많고,
그 믿음 안에서 우리는
이해받지 못한 채 자라난 감정을
스스로 외면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가장 아픈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 말보다
말하지 못했던 내 마음 안에 남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감정을 꺼내지도 못한 채
‘지나간 일’이라는 이름으로 봉인해 둔다.
나도 그랬다.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다는 말보다
용서해야 한다는 말이 더 아프게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왜 나에게 그 말을 하느냐고,
왜 나더러 먼저 풀어야 하느냐고,
왜 그 상황을 ‘좋게 넘어가자’는 말로
정리하려 하느냐고.
용서가 누군가에게는 화해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정당한 분노조차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참아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먼저 풀어야만
모든 것이 원만해진다는 그 논리가
더 단단히 묶고 있었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고,
이제야 알게 되었다.
용서는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다.
그 말을 했던 사람을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고,
지나온 시간을 모두 정리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더는 그 기억에
나의 오늘을 걸지 않겠다는 다짐이면 충분하다.
용서는 마음이 착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강해서 하는 일도 아니다.
살아가기 위해, 나를 풀어주는 방식일 뿐이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건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보다 내 감정을 더 우선하겠다는 선언이다.
더 이상 그 장면 앞에 주저앉지 않는다.
그때의 감정을 기억하고도
미워하지 않고,
그 순간을 꺼내보고도
다시 그 안으로 침잠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용서한 것이 아니라,
나를 그들로부터 돌려받은 것이다.
그리고 오늘,
그때보다 훨씬 단단하고 고요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나로서
온전히 나아갈 수 있다.
당신은 누구를 아직도 붙들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