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대화는
같은 말을 해서 반복되는 게 아니다.
같은 자리에 머문 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반복된다.
처음엔 조금씩 달랐다.
표현도 달랐고,
톤도 달랐고,
서로의 얼굴도 아직은 선명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화는
결론 없이 익숙해졌다.
“그 말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게 아니야.”
“왜 자꾸 그렇게 받아들여?”
말은 바뀌었지만
닿지 않는 감각은 그대로였다.
우리는
같은 질문을 다른 문장으로 반복했고,
같은 답을 다른 표정으로 피했다.
그래서 대화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를 맴돌았다.
한 사람은
지금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고,
한 사람은
지금의 마음을 확정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느꼈다.
그래서 질문은
늘 지금을 향했고,
대답은
항상 다음을 향했다.
“지금 어떤 상태야?”
“조금만 더 기다려줘.”
이 대화는
싸움이 아니었다.
의견 차이도 아니었다.
시간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였다.
한 사람에게 대화는
현재를 붙잡는 도구였고,
다른 한 사람에게 대화는
현재를 유예하는 장치였다.
그래서 같은 말을 해도
서로 다른 의미로 들었다.
확인하려는 말은
압박처럼 느껴졌고,
미루는 말은
회피처럼 들렸다.
그때부터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자기 입장을 지키는 자리가 되었다.
그래서 말은 늘 많았지만
남는 건 적었다.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전 대화의 연장선 위에 서 있었다.
같은 감정이
다른 날에 다시 등장했고,
같은 질문이
다른 상황에서 다시 꺼내졌다.
그리고 그때마다
“또 이 이야기야?”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그 말의 진짜 뜻은
‘이야기가 반복된다’가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였다.
같은 대화가 반복된 이유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서로 다르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대화의 끝에
현재가 오기를 바랐고,
다른 한 사람은
대화의 끝에
미래가 오기를 바랐다.
그래서 대화는
항상 중간에서 멈췄다.
우리는
같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화는
닿지 못했고,
반복되었고,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같은 대화가 반복될 때,
그건 소통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서로가
서 있는 시간이 다를 때,
대화는
아무리 많이 해도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차릴 때에야
사람은
말을 더 붙이기보다
자기가 서 있는 시간을
조금 더 정확히 바라보게 된다.
대화를 멈춰야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옮겨야 끝나는 대화도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