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많은 선택이 겹쳐지는 시간이다.
말이 없던 동안에도
관계는 멈추지 않았다.
다만
아무도 쉽게 결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조용히 흘러갔을 뿐이다.
침묵하는 쪽은
아직 말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꼈고,
기다리는 쪽은
아직 선택되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같은 시간 안에서
서로 다른 하루를 살았다.
한쪽은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는 시간을 보냈고,
다른 한쪽은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를
혼자 확인했다.
침묵은
누군가를 밀어내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쉽게 망가질 말을
잠시 붙들어 두려는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
그 침묵 덕분에
당장 꺼냈다면 부서졌을 말들이
잠시 살아남기도 했다.
하지만 기다리는 쪽에서는
그 차이가 잘 보이지 않는다.
말이 없다는 사실만 남고,
그 안에 담긴 이유는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다림은
점점 불안해진다.
기다리는 사람은
침묵 속에서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말하지 않는 이유,
늦어지는 시간,
조금씩 벌어지는 간격.
침묵은
곧 공백이 되고,
공백은
각자의 경험으로 채워진다.
그때부터 침묵은
하나의 선택이 아니라
각자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침묵하는 쪽에게는
아직 남아 있으려는 방식이었고,
기다리는 쪽에게는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이 된다.
그래서 침묵은
회피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게 사실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느껴졌다는 사실이
이미 관계의 온도를 바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침묵하는 쪽은
아직 떠나지 않았고,
기다리는 쪽도
당장 떠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서로 다른 속도로
같은 자리에 서 있었을 뿐이다.
침묵은
선택일 수도 있고,
유예일 수도 있다.
문제가 되는 건
침묵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만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을 때다.
회피였는지,
기다림이었는지는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인다.
그리고 그때 사람은
침묵을 평가하기보다
묻게 된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같은 자리에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