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왜 자꾸 미래형이 되었을까

by soom lumi

약속은 원래

지금을 함께 견디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약속은

현재를 비워내는 말이 되었다.


“나중에.”

“조금 더 지나면.”

“상황이 정리되면.”


그 말들은

확신이 없어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확신을 지키기 위해

현재를 미뤄둔 선택에 가까웠다.


미래형 약속은

지금의 불안함을 바로 마주하지 않아도 되게 해 준다.

지금 결정하지 않아도,

지금 책임지지 않아도

언젠가는 괜찮아질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약속은

점점 현재형을 잃었다.


지금의 마음을 말하는 대신

나중의 상태를 이야기하고,

지금의 관계를 확인하는 대신

언젠가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약속이 미래형이 될수록

현재는 설명되지 않는다.


“지금은 이런 상태야”라는 말 대신

“나중엔 달라질 거야”라는 말이 놓이고,

그 사이에 있는 감정들은

자리를 잃는다.


누군가는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고,

누군가는

그 약속에 기대어

지금을 건너뛴다.


그래서 같은 약속을 두고도

서로 다른 시간을 산다.


한 사람에게 약속은

지금을 견디게 하는 말이 되고,

다른 한 사람에게 약속은

지금을 유예하는 말이 된다.


미래형 약속이 반복될수록

현재는 점점 더 조용해진다.


지금의 질문은 미뤄지고,

지금의 불편함은

언젠가 해결될 문제로 남는다.


하지만 관계는

미래에서 살 수 없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은

지금을 대신 살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속이 계속 미래형으로만 남아 있을 때,

관계는

천천히 현재를 잃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미래를 지키기 위해 미뤄둔 현재가

가장 먼저 사라진다.


약속이 필요한 이유는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잠시 붙잡아 두기 위해서다.


그래서 약속은

미래형일 때보다

현재형일 때

더 단단하다.


“지금 나는 여기 있어.”

“지금 이 마음은 진짜야.”

“지금의 선택을 피하지 않을게.”


이 말들이

약속이 될 때,

미래는

따라오는 결과가 된다.


약속이 자꾸 미래형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미래를 너무 사랑해서가 아니라,

현재를 감당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사람은 처음으로 묻게 된다.


우리는

미래를 약속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현재를 미루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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