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의 대가(2025), 세 가지 진실

진실, 그 피할 수 없는 비용에 대하여

by 슴도치


자백에 白이라는 글자는 양을 본뜬 글자로 보아 '밝다'는 의미로 출발해 '희다'는 의미로 확장된 것이라는 설(나무위키)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사실을 전달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자신 안에 어둠을 몰아내는 밝힘을 의미할 수도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자백의 대가’(2025)는 그 자백에 대한 작동 방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누가 범인인가’하는 질문보다 진실은 언제, 누구에게, 어떤 조건에서 성립되는가를 묻는다. 그래서 인물들은 저마다의 진실에 대한 정의를 들고 등장하며 그 각각의 진실은 독립적이면서도 서로를 옭아맨다.



안윤수(전도연)의 진실은 말 그대로 자백의 진실이다. 그녀에게 거짓은 낯선 것이다. 따뜻하고 순수하고 자신을 위해 타인을 해할 수 없다. 이야기 내내 나오듯 안윤수는 그런 사람이다. 그녀의 진실은 ‘공적 승인’을 필요로 하는 진실이다.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으면 자신에게 허용된 진실은 작동되지 않는다. 그녀의 자백은 개인의 진실로는 해결될 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진실을 거짓으로 강요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자백만으로는 진실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그녀는 타인의 인정이 있어야만 자백이 진실의 증거로 효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진실은 사회적 윤리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일 수도 있다.



모은(김고은)의 진실은 숨겨진 진실이다. 그녀는 이 이야기에서 안윤수와 가장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자신을 믿어달라고 하지 않는다. 진실만으로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에게 진실은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감내해야 될 성질의 것이 된다. 그녀는 거짓을 강요받는 안윤수와 달리 자신만의 진실을 위해 기꺼이 거짓을 선택한다. 거짓 신분, 거래한 자백, 조작된 관계. 그녀의 진실은 타인의 ‘공적 승인’이 아니라, 본인의 ‘사적 허락’으로서만 성립된다. 이것은 철저한 내면의 진실이며 동시에 가장 위험한 형태의 진실이다. 외부의 견제가 없는 진실은 도저히 혼자서는 멈출 수가 없다.


동훈(박해수)의 진실은 믿고 싶은 진실이다. 그것은 대중의 진실과 닿아있다. 그는 자신의 신념과 경험 그리고 법이라는 테두리를 믿고 사는 인물이다. 또한 자신이 믿고 싶은 진실인 선택된 진실만을 바라보려고 한다. 그것은 보통의 진실과 비슷하다. 그는 진실을 재검증하지 않고 정당화한다. 그리고 그 정당화된 진실을 단단히 붙잡아 두기 위해 조작과 삭제도 서슴지 않는다. 만약 그 진실이 거짓으로 인정된다면 그 진실을 믿은 만큼 자신도 부정당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믿는 진실이 거짓일 거라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믿던 진실이 무너지고 공정한 진실이 현실이 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그는 이 이야기에서 가장 허무한 인물이다. 그는 진실의 공백을 알게 되었고 앞으로 어떤 것이 진실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



진실은 말하면 되는가, 숨기면 지켜지는가, 타인의 믿음이 거짓을 진실로 만들어주는가. 색다른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였지만 서사의 개연성에 있어 분명한 아쉬움도 존재한다. 일단, 살인 동기의 단순함과 설명의 근거 부족하다. 모욕감과 자존심이 살인의 발단이었다면 진영인(최영준)과 최수연(정운선)의 관계, 그들의 집착적인 광기에 대한 배경 설명이 있어야 했다. 중학교 교사 출신인 안윤수와 의사 출신 모은의 전문적인 도주와 탈출, 살인 후의 침착함 등의 모습 또한 전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차라리 안윤수를 체육 교사, 모은을 파병 나간 군의관 정도로 설정했다면 설득력이 더 있었을 것이다. 안윤수 주변의 인물, 장정구(진선규)와 배순덕(이상희)의 헌신적인 도움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특히 장정구의 ‘혹시 저건 사랑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의 개입도 명분이 약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스토리텔링의 연속성과 완성도가 떨어지며 그나마 좋았던 배우들의 열연 또한 빛을 바라게 만들었다.



이 드라마의 한 가지 흥미로운 패턴은 사과 없이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파국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무례에 대한 타인의 사과 요구를 거부하고 갈등을 키운 이기대(이하율)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끝까지 덮어두었던 고세훈(남다름). 그 둘의 비극적인 결말은 자백의 대가가 단순히 사실을 밝히는 비용 이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고동욱(이세희)은 마지막에 백동훈에게 묻는다. 만약에 세훈이 잘못을 인정하고 제대로 벌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백동훈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답한다. 선택된 자백만을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자백의 대가를 깨닫게 되는 장면이다.



자백은 단순히 진실을 말하는 행위가 아니다. 누가 말하고, 누군가 듣고, 어디까지 인정하느냐에 따라 진실 혹은 거짓이 되기도 한다. 그 불편한 질문에 관한 이야기. ‘자백의 대가’(2025)였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