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전에 관한 허락
예전에는 자동차마다 고속도로가 그려진 전도가 있었다. 여행을 할 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지도는 필수적이었다. 운전보다 지도를 더 잘 보는 사람이 유용했던 시절이었다. 바른 방향으로 간다는 것은 빠르고 비싼 차보다 중요했다. 그 가치는 지금도 유효하다. 차별이 노골적이었던 미국의 1960년대에도 흑인이 안전하게 여행하도록 그린북이라는 여행 책자가 있었다. 어떤 이에게 그 책자는 어두운 길에서 빛나는 초록색 신호등이었을 수도 있다.
토니 발레롱가는 현실에 붙어 있는 인물이다. 뉴욕의 나이트클럽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대식가이며 도박꾼이다. 내기로 핫도그를 26개씩 먹으면서 돈을 벌 정도로 생활력이 강한 것은 가족이라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토니는 허풍쟁이에 수다스럽고 언제나 육체가 먼저 반응한다. 그는 삶을 관조하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혀 나아간다. 그에게 있어 인생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들이박는 것이다. 현실에 뿌리내린 사람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신념도 기꺼이 변한다. 처음에는 흑인을 혐오하지만, 자신의 이익에 따라 흑인 밑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흑인이 자신의 보스인 것을 부정하며 짐을 들 것을 거부하다가도, 나중에는 스스로 돈 셜리가 자신의 보스라며 기꺼이 슈트 케이스를 들어준다. 그는 누구보다 현실의 유동성을 이해하고 있으며 관계에 있어 본능적이고 직감적이다. 허풍과 도박에 있어서 진 적이 없다는 토니의 말은 판을 짜고 흔들어본 사람만의 세상과 사람을 읽는 방식이다.
반대로 돈셜리 박사는 음악가이면서도 박사라는 타이틀을 더 선호하는 인물이다. 그것은 흑인이기 때문에 어디 가서도 음악가로 인정받지 못한 데 따른 반발의 표현일 수도 있다. 토니가 현실이라는 땅에 붙어사는 사람이라면 돈 셜리는 허공에서 현실을 딛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는 이성적이며 도덕적이다. 그는 인간이 더 좋은 기회를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에게 현실은 대체로 고정적이다. 돈 셜리는 흑인이라는 존재의 미약함을 알기에, 자신을 내던져야만 세상이 조금이라도 꿈쩍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작은 몸짓이라도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유형의 인물이다. 돈의 외로움은 부동적이다. 백인은 그를 흑인이라고 무시하고 같은 흑인도 백인처럼 보인다며 혐오한다. 그는 변화를 위해 남부까지 내려가지만, 적극적으로 말하기보다 연주하고, 열렬히 싸우기보다 조용히 증명하려고 한다.
영화 초반 토니와 돈의 대립의 이유는 그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토니는 돈의 우아함과 규칙을 버거워하고 돈은 토니의 육체적인 언어와 단순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토니는 돌아갈 공동체가 있고 백인이며 원하는 것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돈이 지속적으로 토니를 교육하고 싶어 했던 이유는 ‘자신이 만약 토니였다면’이라는 가정을 통한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돈 셜리는 사랑을 오아이오주 너른 들판의 아름다움으로 비유하지만, 토니는 사랑을 '예쁘게 불이 켜져 있고 사람들이 행복한 집'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돈 셜리가 끝내 도달하고 싶었던 사랑의 경지였을 것이다. 돈은 존경과 멸시를 받는 현실의 이중성에 안주하지 못한다. 그는 높은 왕좌에 앉은 사람처럼 현실에 붕 떠 있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연주가 끝나면 발 없는 유령처럼 이곳저곳을 방황한다. 돈은 마지막에 가서야 토니에 의해 부당한 곳에서 연주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그것은 남부로 내려가서 처음으로 보인 적극적인 행동이었다. 그는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토니의 선택을 빌어 부당함에 대항한다.
그린북의 녹색은 그저 색깔이 아니다. 그것은 허락된 안전을 뜻한다. 신호등의 초록불처럼. 그들은 녹색 책의 안내를 받으며 녹색 자동차로 이동하고 녹색 돌에 행운을 빈다. 그러므로 그린북은 여행 책자를 넘어 차별이라는 국경선을 통과하고자 하는 여권이 된다. 토니와 돈의 관계는 서로를 발전시키는 관계가 아니다. 그들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관계로 완성된다. 상처받고 모자라지만 함께 있음으로 자신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존재. 진정한 친구란 그런 것이 아닐까. 위험한 곳에 함께 가줄 수 있는 그 든든함. 초록불은 서로에 대한 이해의 노력이 가능할 때 켜진다. 그린북(2019)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