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목적지를 지나쳐 간 자들
어릴 적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는 언제나 직업이 따라붙었다. 과학자, 의사, 경찰, 선생님. 그 질문은 꿈을 묻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직업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는 법을 배웠고, 어느 순간부터는 직업이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되어버린다. 살아갈수록 이름보다 직업으로 한 인간을 설명하는 일은 더 쉬워진다. [브레이킹 배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는 범죄극이 아니라, 직업과 최고라는 욕망이 한 인간을 어떻게 잠식하는지에 관한 기록이다.
월터 화이트(브라이언 크래스턴)는 인생에 있어 정직원, 더 나아가 임원과 운영자가 되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는 한때 유망한 화학자였지만 결혼과 생계라는 현실 앞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접고 교사가 된다. 그 후 오랜 시간, 가정적이고 성실한 남편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그러나 그 억눌린 시간은 겉보기에 안정적일 뿐, 그 내면에서는 갖지 못한 성공과 부의 후회가 발효되고 있었다. 말기 암 선고는 그를 끝장내기보다, 오히려 그 성공을 만회할 수밖에 없는 계기가 된다. 표면적으로는 가족을 위한 돈을 이유로 들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를 붙잡은 것은 돈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화학이었다. 그것의 결과물이 백신이든 마약이든 솔직히 월터에게는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는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어 했고, 되었고, 바로 그 순간 멈출 수 없게 된다. 월터가 욕망하는 것은 생존이 아니라 최고의 자리다. 그는 자신이 잘하는 일을 통해서만 존재를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 멈추지 못한다.
제시 핑크맨(아론 폴)은 그와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제시는 인생에 있어 파트타이머, 비정규직 같은 인물이다. 그는 뚜렷한 욕망이 없다. 월터라는 직장에 취직하듯 끌려 들어와 이용당하고 실패한다. 그의 목적은 단순히 돈이었고, 직업적 성공은 애초에 그의 언어가 아니었다. 제시가 원했던 것은 안정과 애정,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감각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월터에 의해 파괴되고, 망가지고, 반복해서 희생양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드라마에서 가장 직업관이 없었던 제시만이 끝내 살아남는다. 거스와 월트와 달리 제국과 권력, 최고라는 개념을 끝내 내면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황제가 될 수도, 되고 싶지도 않은 소시민이었을 뿐이다. 월터는 제시를 무엇보다 아끼지만, 그것은 단순한 애정이 아니라 유일한 직원을 대하는 상사의 책임감 비슷한 감정이었다. 그리고 이야기 마지막에 이르러서 밀린 퇴직금을 주듯 제시를 구원한다.
거스 프링(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은 월터가 되고자 했던 완성형의 모습이다. 월터가 지역의 맛집이라면, 거스는 프랜차이즈 회장이다. 거스는 시스템을 만들고, 규칙을 세우고, 브랜드를 유지하며 자신의 왕국을 건설한 자다. 그는 언제든 멈출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오히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의 규모와 영향력 때문에 멈추지 못한다. 거스에게 규칙과 통제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며, 질서는 신념이다. 거스는 정확한 자리에서 멈출 수 있는 사람이지만, 멈추는 순간 자신이 끝날 것도 아는 인물이다. 그는 월터가 원하는 미래이자, 끝내 도달하지 못한 자리를 만든 자다.
스카일러 화이트(안나 건)는 월터의 도덕심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이야기 초반 내내 월터의 급격한 타락을 늦추는 심리적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그러나 돈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자본과 풍요라는 유혹에 의해 그녀는 월터의 양심에서 월터의 회계사가 된다. 그것은 그녀가 도덕적 판단자에서 재무적 관리자로 변모한다는 의미다. 세탁소는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한 게 아니라 범죄를 직업화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였고, 그 사업에 그녀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은연중에 월터를 지지하게 된다. 그녀는 월터를 막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범죄를 관리하는 사람이다. 스카일러의 타락은 가족의 생존을 위한 결과다. 그녀는 악해진 것이 아니라, 체제에 적응하고 결국 월터라는 회사의 경영진이 된다. 그녀는 그 사실을 괴로워하며 떨쳐내려고 했지만 끝내 완벽하게 도피하지 못한 인물이다.
행크 슈레이더(딘 노리스)는 삶의 정직원 같은 인물이다. 그는 말 그대로 DEA(마약단속국) 요원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자신만의 제국이나 영역 확장보다는 조직과 신념을 위해 일하는 전형적인 성공하는 직장인 타입. 그는 직업에 자부심이 있고, 능력이 있으며, 정의를 믿는다. 문제는 모든 직장인이 앓고 있는 회의감이다. 그는 동료를 잃고 자신마저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이 반복되자 내적 갈등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러한 갈등도 승진과 ‘하이젠 버그’라는 집착으로 인해 옅어진다. 행크는 정의로운 인물이지만 그 정의는 개인적인 집착으로 변해간다. 하이젠버그를 잡는 일은 업무적 성취의 실현이자, 동시에 무력함을 증명하지 않기 위한 싸움이 된다. 그는 하이젠버그의 정체를 알고 자신의 나약함을 느끼지만 그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행크 역시 얼마든지 멈출 수 있었으나, 자신이 일이라는 관성에 밀려 멈출 타이밍을 놓친 사람이고, 그래서 끝내 퇴근하지 못한다.
브레이킹 배드를 관통하는 것은 악과 선의 대비가 아니라 직업관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얼마나 사람을 고립시키고, 타락시키며,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이 드라마에서 살아남는 것은 도덕적으로 가장 옳은 사람이 아니라, 성공의 언어를 끝내 자신의 언어로 삼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스카일러는 포기하고, 제시는 도망치고, 월터는 미완성된 자리에서 멈춰 선다.
어릴 적 장래희망을 말하던 순간으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어쩌면 너무 이른 나이에 한 가지 질문을 강요받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고 싶은가. 그 질문은 결국 얼마나 성공할 것인가.라는 물음일 수도 있다. 브레이킹 배드는 이렇게 답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디서 멈출 수 있는가’라고. 최고의 자리를 위해 목적지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이야기. 브레이킹 배드(2012-2013)였다.